고대 호남사람들이 일본어로 말했다고? -이덕일소장
*고대 호남사람들이 일본어로 말했다고?
-이덕일소장
-탁순이 대구라고?
『임나일본부는 없었다』를 쓴 고대사연구가 황순종 선생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 산하의 현들을 찾으려면 일본 열도에서 찾아야지 왜 한반도에서 찾느냐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스에마쓰나 김현구 씨는 무조건 한반도 내에서 찾는다. 한반도 내에서 찾는 것도 좋다. 낙랑군 조선현이 대동강 남쪽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하북성 노룡현에 있다는 중국 사료가 많은 것처럼 그 근거만 확실하면 한반도 내에서 못 찾을 것도 없다. 문제는 그런 사료가 없는데도 한반도 내로 비정하니까 문제다. 스에마쓰나 김현구 씨가 무슨 논리로 임나 속현들을 한반도 내로 비정하는지 살펴보자.
369년에 야마토왜에서 점령했다는 가라 7국 중 탁순(卓淳)이란 곳이 있다. 스에마쓰는 탁순을 지금의 대구로 비정했다. 김현구 씨의 위치비정은 스에마쓰와 일치율 100%이기 때문에 따로 공부할 것 없이 스에마쓰의 논리만 알면 김현구 씨의 논리는 절로 알게된다. 스에마쓰가 무슨 논리로 탁순을 지금의 대구로 비정했는지 살펴보자.
“탁순(卓淳)은 첫째 탁순(㖨淳)에서 만들어졌다(흠명천황기).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일본군의 집결지이자 아래 기술하는 것처럼 백제에서 처음으로 일본에 건너간 사신의 도래지라는 점으로 볼 때, 앞서 말한 달구화(達句火)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대구이다(스에마쓰 야스카즈, 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 길천홍문관(吉川弘文館), 도쿄, 47쪽)”
김현구 씨도 스에마쓰의 논리를 추종해서 탁순을 대구로 비정했다(『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43쪽) 위의 글을 읽는 일반 독자들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는 공부 많이 한 교수가 하는 이야기니 무슨 심오한 뜻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기도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식민사학자들의 사기술이다.
-대구에 가서 일본 가는 길을 물어봤다고?
첫째 “탁순(卓淳)은 첫째 탁순(㖨淳)에서 만들어졌다(흠명천황기)”는 문장은 『일본서기』 「欽明」 5년 3월조에 “신라에서 봄에 탁순을 취해가졌다〔新羅春取㖨淳〕”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이 탁순(㖨淳)이 탁순(卓淳), 곧 대구라는 것이다. 스에마쓰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뿐 다른 근거는 없다.
둘째 『일본서기』 신공(神功) 46년조에 백제에서 사신을 탁순에 보내서 일본귀국(日本貴國)에 조공하러 가고 싶다면서 길을 묻는 내용이 있다. 스에마쓰의 논리는 한강 유역에 있는 해양 제국 백제가 한강이나 영산강을 통하는 뱃길로 일본에 가지 않고 내륙인 대구까지 걸어가서 일본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는 것이다. 몽골 내륙에 가서 바다로 가는 길을 물어봤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나 있다. 탁순은 대구여야 한다. 왜? 스에마쓰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임나 강역을 경상남도에서 경상북도로 확장시켜야 하니까. 식민사학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하는 순간, 이들이 파 놓은 덫에 걸린다. 근거? 없다. “대일본제국은 영원하시다”는 일왕 만세일계 사상이 유일한 근거다.
-침미다례가 전남 강진?
그럼 스에마쓰가 무슨 논리로 임나 강역을 전라도까지 확장시켰는지 살펴보자. 『일본서기』에 침미다례(忱彌多禮)라는 지명이 나온다. 스에마쓰는 전남 강진이란다. 김현구 씨는? 더 물을 것도 없이 전남 강진이다. 왜? 임나일본부에 대해서 ‘고전적 정의’를 내리신 스에마쓰 선생님이 그렇게 비정하셨으니까. 그런데 스에마쓰의 고민이 있었다. 침미다례를 전라도에 갖다 두려고 침미다례와 비슷한 지명을 찾았지만 그 비슷한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일본 열도에서 찾아야 할 지명을 전라도에서 찾으니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자 스에마쓰는 기발한 발상의 전환을 했다. ‘침미다례’를 일본어로 읽으면 ‘トムタレ(토무타레)’라면서 일본어 발음으로 전라도 지역을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삼국사기』 「지리지」에 무진주에 속한 군현 중에 도무군(道武郡)이 있었다. 지금의 전남 강진으로 비정하는 곳이다. 스에마쓰는 쾌재를 부르면서 ‘토무다레’에서 ‘다레’는 마음대로 빼 버리고 ‘토무’만 남겨서 도무군을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침미다례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국사학계(?)의 태두이자 얼마 전까지 살아계시던 인간 1차사료 이병도 서울대 교수께서 황주의 옛 이름 ‘우동어홀’에서 우자와 홀자를 마음대로 빼 버리고 ‘동어’만 남겨두고는 낙랑군 둔유현의 ‘둔유’와 발음이 비슷하다면서 낙랑군 둔유현을 황해도 황주로 비정한 수법 역시 여기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세기에 전라도 사람들은 일본어를 사용했다?
이런 논리로 스에마쓰는 지금의 전남 강진인 고대 도무군을 침미다례라고 비정했는데(스에마쓰, 『임나흥망사』, 47~48쪽), 김현구 씨도 이를 그대로 추종했다(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44쪽). 스에마쓰의 ‘침미다례=전남 강진설’이 맞으려면 당시 전라도 사람들은 지금의 일본어를 사용했어야 한다. 졸지에 전라도 사람들은 그 선조가 일본어를 사용하던 일본인으로 둔갑했다. 일본 극우파 추종하느라 애꿎은 호남분들 환부역조(換父易祖:아버지를 바꾸고 할아버지를 바꿈)까지 시킨 셈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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