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질 친일 경찰 노덕술.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이후 까지 악명 높은 친일파로 손꼽히는 인물
독립운동가를 체포하여 온갖 잔인한 고문을 일삼았던 인물.
해방 직후 한국의 주류세력은 독립운동가들이 아닌 친일파가 되었습니다. 시세에 밝은 이들은 미군정과 이승만의 반공노선에 신속히 합세하면서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로 둔갑하게 됩니다.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했을 때도 이들은 친일이 성공의 길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기회주의적인 유능한 능력이 일제 강점기 이후 해방된 조국에서 또 한번 발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강한 자에 기대어 붙는 것이 출세의 길이란 걸 체질적으로 몸에 익힌 자들이었습니다. 해방이후 일부 노덕술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체포하여 몇 달간 구금했었지만 풀려나 1945년 말에 월남을 하게 됩니다. 노덕술은 이승만 정부의 수도 경찰청 수사과장에 기용되어 또다시 악명을 떨칩니다. 이승만 정권 하의 대부분의 주요 간부는 친일파들이었습니다.
영화 암살에 등장하는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은 오히려 광복이후에 일제 강점기에 악질 친일 경찰이던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무차별 폭력과 고문을 당했습니다.
노덕술(盧德述)과 같은 친일파들은 이승만(李承晩)의 비호 아래 반민특위 위원들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승만(李承晩) 정권은 오히려 친일파들이 좌익 색출에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추켜세우면서 이 친일파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관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런 친일파 등용은 친일파 청산을 하려던 반민특위 타격 계획을 실행에 옮기도록 지원하게 됩니다.
반민특위 습격 사건이 있을 때 반민특위를 주도하던 소장파 국회의원들은 이미 친일파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헌병에게 잡혀가 구속된 상태였습니다.
고문한 자들은 친일파 출신경찰과 군인들이었고 고문당한 자들은 독립운동가 출신들 이었습니다 . 이렇게 한민족 근현대사는 도덕과 정의가 뒤틀린 상태로 출발하게 됩니다. 그 시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치더라도 이제는 백년역사를 넘으면서 불의한 역사를 정의의 역사로 바로 잡아나가야 합니다. 민족을 배반하고 독립운동가를 처벌하던 친일파가 성공할 수 있도록 한 흑역사를 우리 후손들은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도록 독립운동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출세와 명예만 얻으면 성공이란 잘못된 도덕관도 바로 잡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나라가 위기 상황에 빠질 때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 성공이라는 것을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격이 됩니다.
YouTube에서 '민족 반역자 노덕술 - 최고의 악질 친일파 고문경찰' 보기 - https://youtu.be/HZWj_6XF0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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