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우주의 리듬 24절기 이야기 절기 서당
절기서당
김동철·송혜경 지음|북드라망|2013년 10월|280쪽|14,900원
달력 곳곳에 깨알만한 크기로 적혀 있는 입춘, 우수, 춘분, 청명…. 절기력은 태양이 1년 동안 걸어가는 24걸음이다. 이 걸음에 맞춰 하늘의 빛깔과 높이가 달라지고 땅 위의 풍경이 변한다. 만물이 변하는 때를 알려주기에 절기력은 농부들에게 요긴한 달력이었다. 그렇다면 이 자연의 리듬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알려주는 ‘때’란 무엇일까? 이 고민은 ‘절기’라는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잃어버린 시간, 절기로부터의 초대
절기는 태양이 15도씩 움직일 때마다 나타나는 기후적 변화다. 즉 태양은 15일마다 스텝을 달리하며 새로운 사건을 발생시킨다. 태양이 그해의 첫발을 내딛으면 땅속 깊이 봄이 시작되고(입춘), 두 번째 스텝을 밟으면 얼음이 녹는다(우수). 그리고 세 번째 발자국에선 개구리와 벌레들이 튀어나온다(경칩). 그리하여 절기는 농경사회에서 농사력으로 기능했다. 언제 씨를 뿌리고, 모내기를 하고, 추수를 하는지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의역학상으로 가장 잘사는 법은 우주의 리듬과 일치를 이루며 사는 것, 그러므로 절기를 어기지 않고 ‘때 맞춰’ 농사를 짓는 것 자체가 천지자연과의 합일과 다름없었다. 절기력이 농사력이 된 것은 최대한 우주의 흐름에 맞춰 살고자 한 노력의 결과였다.
농경사회가 아닌 지금, 절기는 우리에게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일까? 농부가 절기대로 1년 농사를 해내듯이, 우리 역시도 절기의 리듬을 타면 한 해의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절기의 리듬을 현대의 그것으로 변환시키면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절기란 단순히 세시풍속이나 민속의 영역이 아니다. 절기는 15일마다 새롭게 주어지는 우주의 과제이며 동시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우주의 대답이었다.
때에 맞게, 철에 맞게 자연스럽게 사는 법
옛 농부들은 절기가 바뀔 때마다 몸과 마음을 새로이 하며 〈농가월령가〉로 그 초대에 화답했다. 〈농가월령가〉에는 월령과 절후에 따라 해야 할 일과 세시풍속이 소개되어 있다. 그것은 농부들이 태양과 함께 걸으며 빛, 소리, 습기 등과 관계 맺는 길이었고, 이 세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농부의 삶을 힌트 삼아 지금의 삶을 모색해보자.
【봄】 태양이 첫발을 내딛는 입춘立春에는 땅속 깊은 곳에서 봄이 시작된다. 농부가 종자를 손질하듯 우리는 1년 계획을 구체화시킨다. 얼어 있던 땅이 녹기 시작하는 우수雨水에는 응어리져 있거나 맺혀 있는 내 마음의 앙금도 풀어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겨울에 머물러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경칩驚蟄에는 입춘에 세웠던 계획이 개구리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지 않도록 마음을 잘 잡아야 한다. 춘분春分은 마지막 남은 음기가 빠져나가는 시기, 우리도 묵은 것들을 모두 치워서 주변정리를 잘 해야 할 때다. 자신의 마음을 맑고[淸], 밝게[明]게 표출시켜야 할 청명淸明이 지나면 곡우穀雨에는 암송으로 메말라 있는 정신에 단비를 뿌린다.
【여름】 수승화강水升火降에 문제가 생기는 입하立夏에는 우리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비위脾胃를 튼튼히 해야 한다. 그렇게 해 놓으면 소만小滿에 아무리 욕을 먹는다 한들 끄떡없다. 망종芒種을 지나 양기陽氣가 극에 달하는 하지夏至에는 이제 내려가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가 요구된다. 양기가 정점을 찍었으니 음기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소서小暑에는 느슨해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작은 일에서부터 최선을 다한다. 더위를 떠나보내야 할 대서大暑에는 더위뿐 아니라 그동안 집착하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다.
【가을】 가을을 준비하는 입추立秋가 지나면 더위를 그치는 처서處暑가 찾아온다. 성장이 그친 시기로 어떤 결과든 받아들여야 할 때다. 백로白露는 시선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릴 때, 즉 책을 읽기 가장 좋은 절기다. 그러나 달이 차오르는 추분秋分에는 달맞이로 사람의 정신이 홀린다. 가을걷이의 기적 한로寒露에는 가을의 기운으로 건조해진 몸에 오곡백과의 영양을 충분히 공급해 준다. 가을의 마지막 마디 상강霜降에는 혹독한 겨울을 대비해 냉철한 마음가짐을 갖춰야 한다.
【겨울】 천지가 음기로 가득 차는 입동立冬에는 사람 스스로 양기를 만들어야 한다. 내부의 뜨거움으로 겨울의 음기를 이겨내고 옆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어야 할 때다. 첫눈이 내리는 소설小雪은 위축되는 육체의 활동 대신 정신세계를 활짝 열어 지혜를 키운다. 대설大雪에는 눈이 이불처럼 씨앗을 덮어주듯, 약한 양기를 잘 덮어 지켜야 할 때다. 그러면 동지冬至에 양기가 움튼다. 이 양기를 제일 먼저 맞이할 발을 잘 주물러 주어 양기를 온몸으로 퍼트려야 한다. 그러면 만물이 얼어붙는 소한小寒도 잘 보낼 수 있다. 대한大寒에 이르면 한 해를 무사히 마무리하게 해준 모든 존재에 감사의 제를 올린다. 이때 곳간을 열어 그간 쌓여 있던 재물과 양식을 아낌없이 베푼다. 안을 비워 가벼워지는 것, 이것이 새로운 때를 맞이하기 위한 우리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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