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퍼지라는 낱말이 전자제품이나 각종 제품 선전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나 사실 그 뜻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단지 ‘기계가 스스로 알아서 기능을 조절하는 능력’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그런 찰라에 현대수학개론의 리포트 주제들중 퍼지이론이 들어있어서 퍼지이론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볼겸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일본인이기는 하지만 퍼지이론의 창시자인 미국 버클리 대학의 자디교수를 사사했으며 일본의 퍼지이론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럼 우선 퍼지이론의 탄생에 대해 알아보자.
퍼지이론은 1965년, 미국 캘리포니어대학교 버클리대학의 L.A.Zadeh 교수가 학술전문지 ‘INFORMATION AND CONTROL’에 발표한 ‘퍼지집합(FUZZY SETS)'이란 논문이 그 시초이다. 이 논문에서 자디 교수는 ‘아름다운 여성의 집합’ ‘키가 큰 사람의 집합’등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집합을 ‘퍼지집합’이라고 이름 붙였다. 퍼지 집합은 인간사고의 의미정보의 전달중 추상화라는 부분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여 그것을 수학적이론으로써 전개한 것이다. 지금까지 수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집합은 남자의 집합이라든지 정수의 집합이라고 하는 것처럼 소속여부가 확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 집합이라 부르지 않았고, 수학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같은 의미에서 퍼지집합론은 새로운 제안이었던 것이다.
자디 교수가 퍼지이론을 제안하게된 동기중 중요한 이유는 컴퓨터에 의한 엄밀한 모델의 한계이다. 즉, 컴퓨터에서는 패러미터의 수치를 정확히 결정해 주어야하지만 실제는 패러미터의 수치를 정확히 결정해 줄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어 어떤 시스팀이 온도가 높아지면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으나 몇도에서부터 사용이 안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경우 그 온도를 알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당한 가정수치를 결정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애매함은 애매한 그대로 취급하는 이론이 있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이 퍼지집합론을 생각해낸 커다란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자디교수가 퍼지집합에 생각이 미치게 된 또다른 큰 이유가 있다. 자디교수가 어떤 친구와 그들의 부인들 두 어느 쪽이 미인인지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는데 미인의 척도는 타인의 주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주관에 의해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취급하는 퍼지이론을 생각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퍼지이론이 순탄한 길을 걸어 온 것만은 아니다. 처음 자디 교수가 발표했을 때 학회의 반응은 대단히 냉담했다. 대부분이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지금까지 극히 엄밀한 현대제어이론의 기수였던 자디 교수가 180도 변신하여 애매성을 인정한다는 점이 더 거센 반발의 요인인 것 같다. 도피가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다. 과학기술의 사명은 사물을 정확히 하고 애매성을 배제해 가는 것이며 또 이같은 노력을 꾸준히 계속해 가는 것이 과학자들의 의무라는 것이었다. 그 의무를 도중에서 포기하는 것이며 과학자의 사명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냐는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그러한 역경을 딛고 처음에는 완전히 무시되었던 퍼지이론이었으나 이를 읽어본 학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강한 연구열의를 보이기 시작하여 유럽,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연구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편에서는 여전히 퍼지이론에 대한 강한 반대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면 퍼지집합에 대해 알아보자.
지금까지의 ‘이론’에 적용하거나 컴퓨터에 이를 대입하려면 역시 앞에서 본것처럼 확실하게 수치를 정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본래는 애매하고 연속적인 것을 무리하게 명확한 것으로 해버리게 된다. 다시 말해 본래 애널로그적인 정보를 이론이나 컴퓨터에 입력시키기 위해 디지틀표현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디교수는 종래의 집합을 포괄하면서 퍼지집합을 만든것이다. 여기서 ‘퍼지’란 깃털처럼 경계가 불명확하다고 하는 형용사로써 우리말로는 몽롱하다는 뜻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된다. 즉, 퍼지집합이란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집합이다. 한편 종래의 집합은 경계가 명확하게 퍼지집합과 구분하여 CRISP 집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CRISP이란 빠삭빠삭하다는 뜻이다.
퍼지이론을 그 사람의 주관을 수치화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퍼지이론이 발표된 초기부터 비판의 표적이 된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그러나 퍼지이론의 연구자는 역으로 주관을 그 사람의 주관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며 그 이후의 이론전개를 정확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퍼지이론은 그 이름이 나타내는 것처럼 애매한 이론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애매성을 위한 이론으로서 애매을 인정한 연후에 이것을 적극적으로 수치화해 엄밀히 취급하자는 것이다. 종래의 이론은 객관적인 것 만을 연구대상으로 하자고 하는 데카르트의 정신에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애매한 것은 의도적으로 연구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퍼지이론에서는 애매성의 존재를 허용하여 대략적으로 추론하는 편이 보다 본질적인 결론을 유도할 수가 있다는 것이 퍼지이론의 사고방법이다. 아뭏든 퍼지이론이 탄생하여 방치되어 있었던 주관을 처음으로 취급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애매성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고속도로를 두 사람의 젊은 남녀가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고 하자 여자가 “A씨, 위험하지 않은 속도로 운전하세요”라고 말했을 때 남자는 “알았어”라고 대답하고는 그의 판단에 따라 적당한 속력으로 달린다. 이러한 대화에서도 애매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 애매성이 있음으로 해서 회화가 자연스럽게 진행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여자가 ‘위험하지 않은 속도’라고 한 말에는 시속 90킬로미터 전후의 속도라고 뜻이 담겨 이었고 남자의 생각에는 70킬로미터 전후가 위험하지 않은 속도라고 생각했다고 할때 이것을 살펴봤을때 남자가 시속 70킬로미터로 운전했다몀 여자는 “좀더 속도를 내세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남녀 양측 생각의 중간이 되는 80킬로미터로 주행하고 있었다면 양자 모두 주행속도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을 것이다. 즉 두사람간에 ‘위험하지 않는 스피드’에 대한 생각은 다르지만 애매성이 있기 때문에 공통점을 찾아 낼 수가 있었다는 결론이다. 종래의 컴퓨터처럼 엄밀히 정의하여 전후 5킬로미터 밖에 인정하지 않는다로 정의하면 두 사람 다 만족할 속도는 찾아 낼 수가 없다.
사람간의 대화는 이처럼 애매한 것이라 하더라도 허용의 폭이 있기 때문에 대화가 성립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에는 애매성이 따라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이말을 퍼지집합에 의해 컴퓨터가 표현하도록 시켜보면 컴퓨터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입력 시킬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기다리며 맞이하는 시간도 애매성이 있는 퍼지적인 시간이며 표현도 퍼지집합을 사용하는 편이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종래의 집합을 써서 개념을 표현할 때, 그 개념과 다른 개념과 사이에 공통부분이 있는지 여부가 명백히 가려진다. 퍼지집합을 써서 나타내게 되면 어느 정도는 공통부분을 갖는 것이 된다. 이에 따라 퍼지집합에서는 일치도라고 하는 사고방식을 도입할 수가 있다. 단 양자 모두 크리습의 집합이나 요소의 경우 공통부분이 있느냐 없느냐 또는 일치하느냐 않느냐의 일치도는 맞다, 틀리다의 어느 하나가 되어 버린다.
퍼지집합의 생각하는 법은 이처럼 극히 단순하며 이 퍼지집합을 기초로 하여 퍼지이론이 구성되어 있다. 종래의 수학적이론이 집합론을 기초로하고 있는 것처럼 퍼지이론은 퍼지집합을 기초로 하여 실로 여러가지 분야에서 이론이 전개되고 있다. 또 퍼지이론을 응용한 분야도 최근에 상당히 많다.
그러면 퍼지이론과 확률론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자.
퍼지이론이 제창되었을때 일어난 비판의 하나에 ‘이것은 확률론과 같다. 따라서 확률론으로 바꿔 놓고 생각할 수가 있으니까 퍼지이론같은 것은 필요없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분명히 확률론에서도 0과 1사이의 수치를 사용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취급하는 애매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먼저, 확률론에서 취급하고 있는 애매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주사위의 눈은 1에서 6까지 밖에 없다. 따라서 그 사이의 수는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 된다. 주사위의 눈이 나오는 확률은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각각 6분의 1이며 전부 같이 나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애매성은 던지기 전에 어떠한 숫자가 나올지 모른다는 의미가 된다. 던지고 난 후면 그 결과는 분명해지며 따라서 미래란 알 수 없기 때문에 던지기 전에는 답을 알수가 없다. 이를 바꾸어 말한면 확률에서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애매성만 취급하고 있으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확률의 총합은 1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확률론에서는 엄격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확률론이 퍼지이론이 등장하기 전에는 애매성을 취급하는 유일한 이론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통계학에서는 확률론을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례를 통해서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을 수치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일어날 수있는 확률의 값을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확률론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확률론은 복잡한 계산을 요하지만 앞서 지적한 전체가 분명히 정해진 경우 매우 유용한 방법임이 틀림없다. 또한 지금까지 많은 분야에서 그 유효성이 입증되고 있다. 단 일어날 가능성을 전혀 모른다거나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을 경우에는 확률의 값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복잡한 계산을 하더라도 그다지 유효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한편, 퍼지이론에서 취급하고 있는 애매성. 다시 말해 퍼지니스는 랜덤니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면 내일 대단한 미인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보자. 이에 대한 대답은 내일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여기까지는 확률론의 영역이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어 어떤 여성을 만났다하자. 만난 여성이 미인인지 아닌지를 YES,NO로도 간단히 판단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퍼지이론은 실제로 만나도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문제, 주관에 바탕을 둔 애매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확률론은 집합론을 기본으로 하며 퍼지이론은 퍼지집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퍼지집합의 모임은 통상의 집합이므로 퍼지집합을 대상으로 한 확률론이란 것도 성립된다. 요컨대 양자는 다른 개념을 가지면서도 공존할 수있는 이론이기도 한 것이다.
확률론은 집합론을 기본으로 하며 퍼지이론은 퍼지집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퍼지집합의 모임은 통상의 집합이므로 퍼지집합을 대상으로 한 확률론이란 것도 성립된다. 요컨대 양자는 다른 개념을 가지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 이론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우리의 말에 관련된 애매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인간은 본질적으로 애매한 것이라고 기술했지만 그 원인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시 말해 말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애매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은 연속적이며 애널로그적인 것이다. 이것을 말하고자 하는 디지틀 기호(심볼)에 맡겨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호에 대한 의미는 서로의 머릿속에서 그 기호에 따라 말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과 컴퓨터가 하나의 사회에서 공존하게 되면 컴퓨터에게 언어의 의미를 이해시키는 작업이 필요하게 된다. 컴퓨터가 언어를 기호로 받게되면 언어의 의미를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퍼지집합에 대한 멤버십관수인 것이다. 다시 말해 퍼지집합에 언어 즉 기호이며 맴버십관수가 그 언어의 의미에 해당되는 것이다.
퍼지이론은 이같은 의미의 수치화에 의해 컴퓨터가 의미를 취급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주관에 의한 말의 의미에 대한 에매성을 맵버십관수라고 하는 자유로이 설정할 수 있는 수치에 의해 흡수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을 컴퓨터가 취급하려면 지식의 의미를 컴퓨터내부에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퍼지인론은 그것을 위한 유력한 이론적 도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영어로 AI(Artificial Intelligence)라고 하는 것으로 지금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으리는 여러 분애에서 인공지능이란 말을 듣는다. 이 말을 인공적으로 인간의 뇌와 유사한 것을 만든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과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인공뇌를 만든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전혀 불과능하며 앞으로도 당분간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우월했던 분야에 컴퓨터 응용하는 기술이라는 것이 가장 타당한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인간과 컴퓨터와의 맨-머신 인터페이스를 보다 유연하게 하여 컴퓨터가 인간이 보다 지적인 일을 할 때의 파트너가 되도록 하기 위한 응용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공지능연구가 컴퓨터에게 인간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인간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애매성’을 잘 처리할 수 없는 한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컴퓨터를 인간과 협력하여 문제해결을 실행하는 기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매-머신 인터페이스의 유연성, 부드러움이 중요하며 여기서도 애매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요즘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퍼지제어에 대해 알아보자.
퍼지제어는 퍼지추론의 하나의 응용으로서 퍼지엑스퍼트시스팀을 말한다.
퍼지추론에서는 룰은 퍼지집합에 대응하는 언어로 표기된 퍼지룰이며 그것을 퍼지로 변형해서 사용하였다. 퍼지추론에서는 크리습한 어떤 확정된 값 또는 퍼지집합이 입력되었지만 출력되는 것은 항상 퍼지집합이었다. 그러나 퍼지제어와 같이 출력치에 의해 기계가 제어될 경우는 그 값이 확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입력도 기계로하므로 역시 명확한 하나의 값이 나와야 한다. 더구나 입력은 하나의 수만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둘 이상 있다.
그렇다면 현재 퍼지제어가 실제로 응용되고 있는 예를 몇가지 들어보기로 하자.
(1) 지하철이나 열차의 자동운전
(2) 컨테이너의 자동운전
(3) 엘리베이터의 집단관리
(4) 정수장의 물제어
(5) 로봇의 팔제어
(6) 유리용광로의 온도제어
(7) 쓰레기 소각로의 제어
(8) 냉연 프로세스의 제어
(9) 소결 프로세스의 제어
(10) 아크로봇의 제어
(11) 공급 온수의 온도제어
(12) 자동차 정속주행제어 등이다.
퍼지이론의 제창자인 자디 교스는 현대제어이론 창설자의 한사람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엄밀한 이론을 구성하고 있어도 복잡한 시스팀의 제어에는 대처할 수가 없어 그 좌절감으로 퍼지이론을 연구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자디 교수 자신은 퍼지이론이 제어에 응용될 수 있다고는 예상을 못했었다고 술회하고 있었지만 퍼지이론은 그 이론의 발생토대인 제어이론에 보답을 한 셈이다. 그리고 퍼지제어는 일본에서 많이 개발도어 응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퍼지 컴퓨터에 대해 알아보자.
퍼지 컴퓨터는 퍼지추론을 기초로 이것을 퍼지제어하는 것이며 퍼지추론을 빠른 속도로 실행하기 위한 기계이다. 그러나 사실 현재의 과학으로는 제대로 만들수가 없다.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1) 퍼지논리의 이론적 해명
(2) 퍼지프로그래밍 언어의 개발
(3) 퍼지컴퓨터의 아키텍처(구조)의 구명
(4) 각종 퍼지관수의 회로에 의한 실현
등이 해결되어야 한다. 이것들이 부분적으로 연구되고 있지만 사실 현상태로는 퍼지컴퓨터의 실현은 ‘꿈’이라 볼 수 있다.
퍼지이론은 막 태어났을 뿐이다. 퍼지이론으로 모든 애매성을 취급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책의 필자는 애매이론에는 동양의 향기와 포근함이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퍼지이론은 동양사상을 과학적 입장에서 다시 보게함으로서 인간에게 아름다운 과학으로 인식토록 하며, 또한 주관을 복권시키기 위해 애매성을 참되게 활용하며 생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래사회를 개척하는데 있어서 퍼지이론은 정말로 빠질수 없는 존재라고 보며, 머지않은 장래에 퍼지컴퓨터가 꼭 만들어져 인간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