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론 6 광명이 비치는 땅, 배달국
환웅천왕의 배달국 건국
두 번째 환국이 날씨가 추워지면서 그리고 인구가 증가하게 되니까 민족의 대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시베리아가 추워지고 인구는 증가하고. 그래서 그때 우리의 환웅천왕께서 풍백과 우사와 운사와 제세핵랑군 3천명을 거느리고서 백두산에 내려오시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배달국의 시작이에요. 배달이라는 것은 밝달이라는 뜻을 배달로 바꾼거예요. 밝달이라는 것은 하늘의 광명이 비친 밝은 땅이란 뜻이에요. 밝이라는 것은 밝다는 것을 뜻하고 달이라는 것은 땅을 뜻하는겁니다. 우리가 양지바른 곳을 양달이라그러고 그늘진 곳을 음달이라고 그러고 기울어진 곳을 비탈이라고 이야기해요. 달이라는게 딸이에요. 아사달이라는 것이 일본은 일본말로 아침이라 그런대요.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딸이에요. 아사달. 아침에 햇살이 비추는 장소. 그것이 아사달이거든요. 우리민족은 광명을 숭상한 민족입니다. 광주의 빛 광 자라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이 압축되어 있는 곳이다.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있어요. 9천년 한민족의 정신이 이 광주 땅에 응결되어 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웅족과 호족
그런데 거기에 원래 원주민이 있었어요. 원래 원주민이 웅족이었어요. 첫 번째가 환국이었고 두 번째가 배달국인데 웅족이 살고 있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 들어온 민족이, 첫 번째가 호족이었어요. 원래 원주민이 호족이었어요. 두 번째 곰 토탬을 가진 민족이 웅족이었거든요. 둘이 불화했어요. 웅족과 호족이. 이게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가 말이야. 이런 신화 얘기로 전락했는데 이것은 곰과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를 토탬으로 섬기는 남권을 주장하는 부족이었고 웅족은 여권을 주장하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이념이 달랐어요. 이념이 달라가지고 둘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어요. 그래서 환웅천왕이 백두산에 내려와서 그들을 교화합니다. 그래서 쑥과 마늘을 주면서 교화를 시키죠. 그래서 웅족은 미련해가지고 그런 시련 과정을 잘 거쳐서 우리 환족과 동화가 됩니다. 호족은 말을 듣지 않아요. 그래서 호족을 추방해버립니다. 그 호족이 내려간 것이 아마 지금 중국의 많은 소수민족이 있는데 그 많은 소수민족 중에소 요족같은 경우는 호랑이를 토탬으로 섬기고 있어요. 그래서 어디까지나 추측이에요. 호족의 후예들이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해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저쪽 베링해엽을 넘어가지고 북아메리카 쪽으로 넘어간 부족중에서도 호랑이를 토탬으로 하는 부족이 많다고 해요. 그때 추방된 호족들이 간 것이 아니냐 하는 추측을 해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배달국의 위대한 성웅들
이 배달국이란 나라는 18명의 환웅천왕이 통치를 하는데 1565년 동안 지속이 됩니다. 이때 우리 민족이 중국에 이주를 해요. 그래서 중국에 복희씨라는 분이 있어요. 복희라는 사람은 중국 사람들이 인문지조라고 추종합니다. 저야 한의학을 하니까 한의학의 창시자고 동양철학의 창시자에요. 주역팔괘를 만들고 그리고 태극기를 처음으로 그리신 분이에요. 역철학의 창시자가 복희씨에요. 그래서 중국에 있는 복희씨의 유적을 제가 전부 조사를 했거든요. 복희씨 같은 분이 중국에 가서 문명을 여는데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복희사람들을 인문시조라고 해요. 인문시조는 인류 문명의 조상이라는거예요. 신농씨라는 분이 있어요. 신농씨라는 분이 농업을 창시하고 시장, 의약을 창시하고 그리고 잉여농산물을 물물교환하게 하는 시장제도를 만들고. 이런 문명을 열거든요. 중국에가서. 중국을 문명화시키는 그런 분이 복희씨니 신농씨니 이런 분인데 중국 사람들이 이분들은 자기들이 동이족이라고 얘기해요. 우리 민족이 가서 중국 민족을 교화시켯던 것입니다. 이 배달국 시대라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것이 치우천왕이 있어요. 지금도 월드컵이 되면서 월드컵의 응원단인 붉은악마가 상징물로 쓰고 있거든요. 치우천왕이라는 분은 14번째 18분의 환웅이 있었는데 14번째 자오지환웅의 별병이 치우천왕이에요. 치우라는 뜻은 큰 비가 내려가지고 모든 강산을 한번 다 개벽을 시켜버린다. 이런 뜻이 치우의 뜻이라 그래요. 대단한 분이죠. 전쟁을 한번 일으켜가지고 황제와 전쟁을 해서 73번을 전쟁해서 73전 73승을 하거든요. 치우천왕이. 그래서 저 북경에서 서쪽으로 많이 가면 탁록시가 있어요. 탁록시에서 황제와 대전쟁을 치러가지고 황제를 무릎을 꿇리고 황제를 신하로 만듭니다. 그 뒤에 황제가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를 해요. 서진시대 때 간옹이라는 사람이 쓴 포박자라는 책이 있는데 포박자에 어떤 구절이 있냐면 옛날에 황제가 동방 청국에 가서 자부선생을 만나 뵙고 삼황뇌부를 전수받아갔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이 자부선생이 치우천왕의 왕사였습니다. 삼천궁이라는 궁을 지어놓고 치우천왕이 거기서 수행을 하고 제자들을 양성하게 했는데 지금의 우리가 대릉하 유역으로 보고 있는데 황제가 거기와서 공부를 배워갔어요. 우리 민족에 위대한 영걸지주 중에 한 분이 치우천왕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