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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8 한민족사의 Missing link, 북부여

환단고기에서 밝혀주는 북부여

네 번째가 북부여시대인데요. 북부여시대라는 것은 고조선이 서기전 2333년부터 238년까지 209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라가 쇠약해지니까 그 한해 전에 서기전 239년에 해모수라는 분이 군사를 일으켜가지고 북부여를 건국하게 됩니다. 북부여라는 것이 나라이름이에요. 오는 627일 날 세계 환단학회가 창립이 되요. 그래서 저한테 논문을 하나 써달라고 해서 제가 환단고기란 책이 정말 참된 책이다. 환단고기 진서론이란 논문을 한편 썼어요. 환단고기가 얼마나 참된 책이냐. 그 논문에 아주 핵심되는 몇가지만 말씀드리면 광개토태왕 비문에 있는 내용하고 똑같아요. 광개토대왕 첫머리가 뭐냐면 우리 고주몽성제가 북부여로부터 나오셔가지고 나라를 건립하셨다. 북부여에서 나오셔서 나라를 건립했다. 그리고 묘지명해가지고 그 뒤에 우리 고구려는 북부여로부터 나왔다. 지금의 역사학자들은 북부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 부여라는 땅에 북쪽이라서 북부여라고 호칭을 했다. 지금 역사학자들은 다 그렇게 얘기해요. 이도학 교수의 책도 보고 북한에서 나온 책도 봤더니 그냥 고구려시대 사람들이 부여에 북쪽 땅이라고 해서 북부여라고 했다. 아니에요. 북부여가 국호에요. 여기 광주사람인 범세동이란 사람이 북부여기를 썼다고 했잖아요. 그 국호로 직접 나와요. 왜 그러냐면 여기 백악산 아사달에 도읍을 정했는데 장당경 아사달에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북부여라고 호칭을 했어요. 자기들이. 북부여라고 호칭을 했고 그래서 그런 문제가 금방 해결이 되는거예요. 환단고기를 보면 북부여에서 나오셨다. 북부여가 국호네. 금방 알 수가 있어요. 광개토태왕이 이구등조라고 있어요. 이구에 오르다. 오를 등자 복조자인데 임금의 자리 조자에요. 열여덟살에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하는 것이 광개토태왕 비능에 있어요. 그런데 환단고기에 보면 등극우광명전이라 열여덟살에 광명전에서 등극했다. 광명전이라고 쓴거 보세요. 우리나라 임금이 통치하는 금궐의 이름으로서는 최고죠.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그거보다 광명전. 이건 그 하나만 보더라도 고구려라는 것은 정말 환국 배달국 고조선의 정통을 계승한 광명을 추구하는 우리 민족에 나라였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충주시 노은면에서 발견된 불상

그 다음에 39세에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39세면 412년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1915년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석가모니 불상이 하나가 발견이 되었어요. 석가모니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그 뒷면에 글자가 쓰여져 있었어요. 건흥 5년 세제병진에 상부아암에 청신여 누구누구는 내가 이 불상을 조성하면서 아주 내가 대대세세로 태어나는 때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법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건흥오년 병진년이라고 되어 있으니까 지금 국사학계에서 연구를 해가지고서. 고구려에서 연호를 썼다는걸 모르거든요. 건흥이 고구려에 어느 임금 연호라는걸 모르거든요. 모르니까 이 사람들이 596년이 병진년이에요. 그래서 한국에 김원종이라던가 대표적인 학자들이 596년이다. 어떤 사람은 536년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건흥은 환단고기를 보면 장수 홍제 호태열제는 연호를 건흥이라고 썼다. 이렇게 했어요. 그러면 장수왕, 왕이란 표현을 제가 잘 안쓰는데, 장수열제, 열이라는 것은 위대한 공적을 세운 임금이란 뜻이에요. 장수열제 5년에 저 불상이 세워졌다는 거거든요. 건흥 5년에 만들어졌다면. 그러면 장수열제가 언제 등극하느냐. 312년에 광개토열제가 돌아가십니다. 고구려는 임금이 죽으면 그 아들이 그해 임금이 되잖아요. 그걸 그 해를 원년으로 따지는 것을 즉위년칭원법이라고 그래요. 그 다음해를 원년으로 쓰면 유년칭원법이라고 그래요. 고구려 사람들은 즉위년칭원법을 썼어요. 그럼 412년이 장수열제 1년이에요, 원년이에요. 413년이 2년이에요. 414년이 3년이고 415년이 4년이고 416년이 5년이에요. 그럼 416년인데 416년이 병진이냐. 연간이. 병진이에요. 416년이. 이거 환단고기에 기록이라는 것은 너무너무 기가막힌거예요. 환단고기에. 그거 하나만 보더라도 사학자들이 환단고기 위서 어쩌고. 그거 하나만 건흥이란 연호만 알아도 노은면에서 발견된 불상이 고구려에서. 또 문명대교수는 이거 아마 신라에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랬어요. 아니죠. 이건 고구려에서 만든거죠.

 

환단고기의 진실성을 밝히는 천남생 묘지

환단고기에 진실성에 대한 얘기는 말이에요. 1923년에 천남생 묘지명이, 묘지명이란건 사람이 죽으면 비석을 세우고 그 사람의 업적을 적어놓은 것을 묘지명이라고 얘기해요. 1923년에 천남생이란 분은 연개소문의 맏아들이에요. 맏아들인데 지방 시찰을 갔을 때 자기 두 동생이 남건과 남산이 반란을 일으켜서 자기 아들을 죽이거든요. 그래서 당나라에 투항을 해요. 당나라에 투항을 해서 당나라 군사를 이끌고 와서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장본인이 남생이에요. 연남생인데 당나라 고종의 이름이 이연이에요. 못연자를 쓰기 때문에 그 이름을 휘해가지고 천자로 이름을 바꿔요. 그래서 천남생 묘지명이 나오는데 거기에 이렇게 되어있어요. 나의 아버지는 연개소문이고 나의 할아버지는 연태조고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연자유다. 그러면 연개소문의 아버지가 연태조가 되고 연개소문의 할아버지가 연자유가 되는거겠죠. 연개소문의 아들 천남생의 입장에서는 자기 할아버지가 연태조고 증조할아버지가 연자유라고 했으면 연개소문 입장에서는 자기 아버지가 연태조고 할아버지가 연자유가 되잖아요. 이 기록은 아무대도 나오지 않습니다. 천남생 묘지명이 나오기 전까지는 연개소문의 아버지, 할아버지 이름이 나온 적이 없어요. 환단고기에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까지 나와요. 증조할아버지 이름이 넓을 광자 광이었다. 그래서 강단사학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해요. 환단고기는 1923년 천남생 묘지가 나온 이후에 조작된 위서다. 가관이죠. 얘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에 그것이 발굴되었을 때 한국 사람은 그걸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일본 사람들이 조금 알고 있었고 10, 20년 동안 알려지지를 않았어요. 1923년에 나왔는데 한국의 역사학자 누가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알 수가 없었거든요. 거기서 저는 전율을 느꼈어요. 환단고기란 책이 기가막힌 책이다.

 

태백일사의 고구려국본기

환단고기는 고구려국본기에 나오는데 고구려국본기란 책은 태백일사의 하나거든요. 태백일사는 중종 때 이맥이란 사람이 쓴 책이에요. 이맥이 1455년 생인데 과거에 1498년에 과거에 급제해가지고 장녹수, 연산군이 총애하던 여자가 장녹수 아니에요? 그 비리를 간해가지고 제 고향이 충북 괴산 땅인데 괴산으로 귀양을 갔어요. 괴산을 가가지고 자기가 옛날에 고서를 펼쳐놓고 메모를 해놨다. 그리고 1506년에 중종반정이 일어나잖아요. 중종반정 이후 복직이 되가지고 편수관이 돼서 모든 책을 보고 태백일사를 썻다. 그래서 1520년 정도에 태백일사를 지었어요. 그게 1520년에 쓰여진 거예요. 연개소문 아버지가 누구고 할아버지가 누구고 증조할아버지가 누구고. 그리고 그 앞에 조대기에 이르기를 연개소문은 봉성사람이고 그 아버지는 누구고. 조대기라는 책 이름이 나와요. 이 조대기라는 것은 1457년 수상서 목록에 있던 책이에요. 조대기는 대진국 사람들이 보는 책으로서 926년 대진국이 망하면서 고려로 올 때 가져온 책이에요. 그래서 고려시대 때 조대기를 봤어요. 봤다가 청평 이명이란 사람이 이 조대기를 보고서 지명유기라는 책을 써요. 지명유기를 보고서 조선 숙종 때, 숙종 원년 1675년에 북애노인이 규원사화를 쓰게됩니다. 그래서 연개소문에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 이름이 나온 것은 조대기에 있는 것을 보고 쓴거지 천남생 묘지명을 보고 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처럼 환단고기란 책은 정말 비서에요. 비서고 보서로서 우리 민족에 잃어버린 역사와 혼을 회복할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책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북부여의 맥을 이은 고구려

그래서 북부여라는 것이 239년에 건국이 되가지고서 BC 58년에 북부여에 6번째 임금이 고무서 단군인데 고무서 단군이 아들이 없었어요. 아들이 없어가지고 그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소서노에요. 그 소서노에 사위로, 남편으로 맞이를 해요. 그래서 고주몽 성제가 BC 58년에 북부여에 일곱 번째 단군으로 등극을 하면서 혈통적으로는 해모수에 현손자가 됩니다, 그래서 고구려가 58년에 건국이 되는데 삼국사기에 보면 BC 37년에 건국이 되었다고 해요. 그것은 틀린건 아닌데 37년에 평강이라 연호를 바꾸고 고구려라고 정식으로 연호를 선포해요. 이렇게해서 고구려 우리 민족에 찬란했던 역사 고구려가 나오는데 고구려란 원명은 자기 조상인 해모수의 원 고향이 고구려에요. 지금 내몽고자치구 하림 좌기가 있는 요나라에 수도였던 곳이에요. 거기가 고구려 땅이었기 때문에 고주몽성제가 고구려라고 국호를 했던겁니다. 환단고기에 보면 고구려의 국호가 어디서 나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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