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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는 어땠을까? 900년대부터 1300년대까지의 온난기인 ‘중세 온난기’동안 유럽에서는 인구 폭발을 가져왔을 정도로 식량생산성이 높았고, 유럽인들이 주도하는 지중해 교역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번창했었다. 그 이전 온난기인 ‘로마시대 기후최적’ 동안 유럽 못지않은, 아니 여러 모로 유럽을 훨씬 능가하는 번영을 구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해양족들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을까?
이 시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서기 원년부터 500년 정도에 걸쳤던 로마시대 기후최적기 당시보다는 훨씬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아무리 중국에 의해 역사왜곡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정도 번영을 구가했다면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구석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기록은 정반대의 상황을 전해준다. 한동안 잘 나가던 발해는 900년대 들어서면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해서 926년 거란족의 요나라에 의해 붕괴되고 만다. 당나라까지 동원, 국권을 튼튼히 하려했던 신라는 약 200년 후인 800년대 말에 위기를 맞고, 후삼국시대로 분열됐다가, 936년 이 모두를 통합한 왕건의 고려가 세워지면서 종말을 맞는다.
고려는 하대 신라에 비해서는 해상활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이나, 이전 시대의 가야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띠는 것은 이때쯤부터는 한반도 국가의 국격이 중국에 비해 많이 낮아졌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들이 적잖이 있다는 점이다. 이어지는 한랭기에 세워졌던 조선보다는 나았을지 몰라도, 한반도 국가는 고려 때부터 중국에 밀리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준다.
서기 900년 무렵, 중세 온난기로 불리는 온난기가 다시 지구상을 덮었다. 빙하기 이후 1만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반도에 그렇게도 풍성한 혜택을 베풀어주었던 온난기가 온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국가들은 예전의 위용을 되찾기는커녕, 오랜 세월동안 비교적 열세에 있었던 중국에 오히려 눌려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무엇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