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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아버지 숙량흘[28]은 장대한 체구의 무인(武人)이었다고 한다. 노나라군이 유인계략에 속아 상대편 성 안에 갇힐 위기에 처하자, 아래로 내려오는 성문[29]을 그냥 팔로 받쳐서 아군을 달아나게 했을 정도로 힘이 좋았다고 한다. 뒤에 태어날 공자 역시 아버지 숙량흘을 닮았는지 그 또한 체구가 좋았다. 숙량홀의 키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 것(10척이라는 이야기는 있다.)과 달리 공자의 키는 9척 6촌이었다고 정확히 전해진다. 도량형이 명확하지 않지만, 당대의 거구인 것은 확실하다. 자로가 아직 공자의 제자이기 이전, 그저 글귀나 읽는 비리비리한 서생인 줄 알고 쳐들어갔다가 이 장대한 기골에 기세가 꺾였다고 한다.

숙량흘은 딸만 9명을 낳는 바람에 둘째 부인을 들여서 겨우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들은 몸에 장애가 있었다. 이름이 맹피(孟皮)였는데, 맹은 서장남의 뜻을 지닌다. 절름발이로 추정된다. 논어에 형의 딸을 공자가 시집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실존성이 입증된다.

결국 숙량흘은 60대에 무당의 16살짜리 무녀(巫女) 안징재를 부인으로 들인다. 안씨 집안에서는 3명의 딸이 있었다고 하는데[30], 숙량흘이 셋 중 하나를 아내로 맞으려 하자, 막내딸 안징재가 스스로 나서서 숙량흘의 아내가 되었다. 결국 공자를 낳았으니 안징재는 영험한 무녀였던 모양이다.

숙량흘과 안징재는 노나라 수도 곡부 인근의 니구산(尼丘山)에서 살았다. 안징재만 거기서 살고 숙량흘은 가끔 찾아오는 형식. 얼마 후 안징재는 공자를 낳았다. 사마천은 사기 공자세가에서 공자의 탄생을 야합(野合)이라고 표현했는데, 도올 김용옥은 이를 말 그대로 '들에서 했다'라고 설명한다. 즉,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비공식적 관계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공자는 거의 사생아나 다름 없었다. 공자에 대한 각별한 존경심을 품은 사마천이 이 정도로 표현한 걸 보면 딱히 미화시킬 방법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라는 건 잘못된 해석이다. 사마천은 굉장히 함축적인 의미로 글을 썼다. 숙량흘이 안징재와 혼을 올릴 당시 그의 나이는 66세었는데, 우선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결혼이라는 설과 한의학적으로 64세까지만 남자가 정기가 있는데 그걸 지났기 때문에 야합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설이 있다. 66세에 여자를 들인 숙량흘을 '조야하다', 즉 '천하고 보기 좋지 못하다'라고 했는데 이를 줄여서 '야'라고 사마천은 일컬었고 좋지 못한 만남에서 나왔다라는 뜻의 야합이생일(野合而生)이라고 보는게 맞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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