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의 자연관 中에서
소광섭 (서울대 물리학 교수)
4. 기신론과 미래 과학
1) 20세기 물리학의 위치 : 불교 사상적 관점
2) 미래 과학의 전망
가. 존재의 상대성
연기론의 핵심주장인 “이것이 있음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현상적인 존재는, 혼자 독립하여 있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다른 것에 의지하여 있게 되는 상대적인 존재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떤 존재든 그것 자체로서의 고유한 특성을 다른 것과의 관계없이 가질 수 없으니 이를 無自性이라 하고, 따라서 여타와의 관계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성질들은 실재가 아니며 영속적인 것이 아니므로 空이라 한다. “일체의 현상적 존재는 절대적 독립성이 없고 오직 다른 것과의 상대적 관계에서만 규정될 수 있다”라고 고쳐쓴 연기론의 진술을 `존재의 상대성 원리‘라고 불러도 좋겠다.
나. 관찰자와 소립자
“관찰은 현상 자체는 흔들기 때문에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관찰의 정확성에는 피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불확정성의 원리). 그러므로 관찰과 무관한 독립된 자연법칙이 있다는 주장은 하기 어렵다. 그러나 관찰대상으로서의 객관적인 자연현상의 존재는 인정한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기신론의 유심사상에 의하면, 일체 현상은 오직 마음에 의하여 만들어지며, 그 과정은 첫째로 무명에 의한 마음의 움직임이 있고, 둘째로 움직이는 마음에서 인식주관이 생기고, 셋째로 인식주관이 성립됨에 인식대상이 나타나며, 넷째로 인식대상들을 분별하는 생각들이 일어난다고 되어 있다.
객관적인 대상이 있으므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가 있으므로 대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과학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물질과 정신의 통일적 견해와 같은 비약적인 탈바꿈을 하기 전에는 아마도 힘들 것이다.
유심론의 입장에서는 물질의 궁극이 되는 물질이란 있을 수 없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영이기 때문이다.
다. 허공법계와 우주
기신론의 경우 모든 대상이 인간의 주관에 의해서 나타나며, 三界唯心인 만큼 마음을 떠난 독립된 객관적 실재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또 관찰자와 분리 독립된 절대적 실체로서의 공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저 허공 하늘은 텅 빈 것이 아니며, 양자의 파동만으로 가득찬 물질현상만도 아닌, 인간의 의식과 밀접히 연결된 法界인 것이다.
이렇게 큰 우주이지만 마음의 전변이란 측면에선 아무런 거리가 없는 `하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객체로의 우주란 우리의 환상에 불과하므로 분별하여 만들면 무한하지만 분별을 멈추면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分別之心과 一心의 세계).
라. 물리와 심리의 통일
기신론의 견해를 따른다면 물질과 정신을 나눠보는 분별식은 낮은 차원의 식이다. 이러한 거친 분별인식은 이보다 세밀한 심식에 바탕하고 있는 아무런 분별이 없는 한 마음에 무명의 바랍이 불면 움직임이 일어나고, 이에 바탕하여 인식주관이 생겨나고, 인식대상은 인식주관이 만들어내는 환상이다. 분별식은 이 인식대상을 구분하여 헤아리고 기억하는 사고 활동인 지식과 상속식(相續識)이다. 자연과학의 틀은 이 분별식에 바탕하고 있으므로 물리학과 심리학의 통일을 위해서는 세밀한 심식의 수준까지 인식의 바탕을 올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