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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10) - 인간원리(anthropic principle)

 

김용준(고려대 명예교수유기화학)

 

1. 우리나라에도 방문해서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호킹(Stephen Hawking)1996년에 그림으로 보는 간추린 시간의 역사라는 새로운 저서를 새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그가 1988년에 출판한 간추린 시간의 역사의 개정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려운 내용을 상징적인 그림으로 일반인에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그림을 삽입하고 1988년 이후에 새롭게 이루어진 이론적 관측적 결과들을 첨가한 책이다. 호킹의 말대로 우리나라의 출판계에서도 호킹의 시간의 역사의 판매부수는 일종의 수수께끼라는 말이 적용되는 경우라 하겠다. 호킹은 바로 이러한 성공은, 사람들이 `우리는 어디에 왔는가?‘ 그리고 `우주는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생일일자까지 정확하게 맞는, 갈릴레이가 서거한 지 300년이 되는 194218일 탄생한 호킹은 1981년 바티칸 예수회에서 주최한 우주론에 대한 회의에 참석한 이후 우주의 기원과 그 미래의 운명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되살아났다고 고백하고 있다. 교황이 빅뱅이후의 진화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빅뱅 그 자체를 묻는 일은 신의 창조의 역사에 대한 반문이 되기 때문에 불가하다고 말한데 대한 과학자로서의 불만을 갈릴레이의 300여년 정의 신세를 빗대어 항의하고 있다. 호킹이 주장하는 시공(時空)의 무경계성과 교황의 말이 너무나 어긋나고 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설이 되고 있는 소위 빅뱅으로 시작되는 우주상과 최근까지 관측된 데이터와는 대체로 모순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호킹은 아직까지 대답되지 않은 질문들을 다음 네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로 초기 우주는 왜 그렇게 뜨거워야 했는가?

둘째, 왜 우주는 그렇게 큰 규모로 균질한가? 즉 우주는 공간의 모든 점에서 모든 방향으로 같은 모습을 보일까?

셋째, 왜 우주는 재수축하는 모델과 영원히 팽창을 계속하는 모델을 구분하는 임계팽창률에 가까운 비율로 팽창을 계속하고 있는가?

넷째로 우주는 대규모의 척도에서 볼 때 그토록 균일하고 균질함에도 불구하고 별이나 은하와 같은 국부적인 불규칙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불규칙성은 초기 우주의 여러 영역들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밀도 차이가 발달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밀도상의 이러한 요동이 생기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일반상대성이론 그 자체로는 이러한 특성을 해명하거나 앞의 물음들에 답을 줄 수가 없다.

지금까지 과학은 어떤 특정시간에서의 우주상태를 알 수만 있다면 소위 불확정성원리의 허용한계 내에서 시간에 따른 우주의 전개과정을 밝혀주는 일련의 법칙들을 발견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법칙들은 태초에 신에 의해서 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후 신은 우주가 그 법칙들에 따라서 전개되도록 방치하였고 더 이상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신은 어떻게 우주의 초기상태나 구성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즉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의 경계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호킹은 신의 선택을 논한다. 아직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신은 이와 같은 초기조건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그리고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신의 그와 같은 선택에 대한 이유까지고 묻고 있다.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하나의 가능성을 카오스적 경계조건에서 찾으려한다. 이렇게 카오스적 경계조건을 설정할 때 대두되는 문제는 우주가 공간적으로 아주 무한하거나 또는 무한히 많은 우주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모든 영역에서 확률은 같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우주의 초기상태는 순전한 임의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기 우주는 매우 무질서하며 불규칙했을 것이라는 의미도 된다. 그는 인간원리(anthropic principle)의 철학에서 이처럼 평탄하고 균질적인 영역에서만 은하와 별들이 생성될 수 있고 이런 조건에서만 `우주가 왜 이렇게 평활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우리와 같은 복잡한 자기복제를 하는 기구를 갖춘 유기체가 발생될 수 있다고 말한다.

 

2. 자연과학은 17세기의 과학혁명을 들추지 않더라도 인과율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결정론적(고전역학, 상대성이론)이냐 확률적(양자역학)이냐 하는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인과율의 테두리 안에서 머물고 있다. 인과율이란 시간적 선후관계가 뚜렷하다. 즉 원인이 항상 결과에 선행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상식적인 과학의 방법론에 입각한다면 인간원리는 자연과학의 상식을 벗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원리에 찬동하는 과학자는 매우 드물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몰린(Lee Smolin)일 것이다. 그는 작년에 출판한 그의 저서 우주의 생명(The Life of the Cosmos)』「15장 인간원리를 넘어서(Beyond the Anthropic Principle)에서 `인간원리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데 결정적인 흠이 있다고 지적했다.

수많은 `인간원리에 관한 문헌들이 산적해 있지만 1997년에 호킹과 평생을 연구해온 리스(Martin Rees)태초 그 이전(Before the Beginning)이라는 저서와 드리즈의 빅뱅을 넘엇(Beyond Bing Bang)라는 1990년에 출판된 저서에 소개된 `인간원리의 내용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원리1961년 당시 프린스턴대학의 디케(Robert H. Dicke)에 의해서 소개되었다.

디케는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디락(Paul A. Dirac)이 연구한 업적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인간원리를 착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디락은 전기력과 중력이 다 같이 역자승의 법칙(전기력과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이 적용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말하자면 전자와 양성자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과 중력의 비율은 기본수치를 이룬다. 그런데 이 수치가 무려 이라는 대단히 큰 수치였다. 그런데 관측 가능한 우주(일명 허블반경이라고도 한다)의 크기가 양성자의 배라는 데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편 관측가능한 우주 안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가 개라는 개략적인 계산결과를 얻고서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앞서 얻은 수치의 자승치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우연한 일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매우 주저할 수 밖에 없지만, 어쨌든 이와 같은 대단히 큰 수치의 우연한 일치에는 알지 못하는 djEJs 관계가 숨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디락의 이와 같은 거대수치의 우연성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디케가 밝혀냈다.

여기서 디케의 계산을 상세하게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어쨌든 원자가 원자가 원자가 뭉쳐서 일정한 천체를 이룰 때 핵반응이 가능해지고 그 결과로 생명체의 기본원소인 탄소가 합성되는 것이다. 결국 디케는 별의 생명은 별의 질량과 마찬가지로 전기력과 중력의 비율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우주는 원자의 배가 되는 크기가 될 때 비로소 생명체가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양성자가 전자보다 1836배가 무겁고 중성자가 양성자보다 0.14페센트 무거우며 중성미자의 존재 등이 핵력과 전기력 그리고 방사능 등을 가능케 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설명됨으로써 이 지구가 얼마나 정교한 우주 메커니즘의 소산물인지 밝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원리가 성립되는 이론적 근거는 이상과 같은 경로를 거쳐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카터는 디케의 연구를 보다 발전시켜 `약한 인간원리`강한 인간원리로 나누어 이론을 전개시킨다. `약한 인간원리란 소위 코페르니쿠스의 원리라고 불리는 우주의 상태, 즉 우주는 공간적으로 균일하고 모든 장소가 대등하여 차별성이 없다는 우주원리를 그대로 계승할 것이 아니라 선택적 관측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관측자의 특수한 입장이 매우 중요해지는 것이다. 즉 디케는 우리가 아무 때나 제멋대로 관측한 것이 아니라 디락의 그 우연한 일치가 성립되는 그런 시기에 관측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강한 인간원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것이다. 우주의 생성과 과정이 오늘의 인간존재를 향해 필연적으로 진행되어왔다는 것이다. `강한 인간원리`유신론적인 인간원리라고 표현한 것은 매우 적절한 해석일 것이다.

 

3. 현재 영국의 서섹스대학 천문학교수인 배로는 그의 근저 우주의 기원에서 더욱이 가시적 영역의 우주에 대한 경험적 지식의 제한은 우리가 결코 전체 초기상태의 작은 영역의 진화적 결과를 시험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단지 초기상태의 작은 영역의 진화적인 결과만을 본다.

뉴욕시립대학의 석좌교수요 명예교수로 있는 뮤니츠(Milton K. Muniz)우주의 이해(Cosmic Understanding,1986)라는 저서에서 밀레토스학파를 대표하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aperion)'이라는 개념으로부터 그가 결론으로 내세우는 `무경계성 현존(boundless existence)'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관찰가능한 우주(observable universe)'`이해가능한 우주(intelligible universe)'를 구분하고 있다. “이해가능성이란 일반적으로 언어로 사람에 의해 확립된 규칙의 한계내에서 발견되는 것으로서 특히 개념적 체계 또는 과학적 이론 안에서 성립된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실적 또는 가능한 개념적 분석과 합리적 이해를 뛰어넘는 실제성(reality)의 차원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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