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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영상녹취]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이덕일) 

 

조선총독부산하 쓰다소키치란 인물이있습니다.

한국의 소위 말하는 주류학계라는 사람들의 주장이 교과서를 보면 이게 뭔가

동북공정에 대응하라고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어놨더니 거기에 소속된 사람들이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글을 버젓이 올려 놓고 있는 겁니다.

 

반갑습니다. 전 오늘 이자리에서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이란 테마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테마에는 네가지 소주제가 들어갑니다. 큰 줄기로 따지면 조선후기 노론이라는 당파에서 만든 역사관과 그 다음에 일제시대때 일본사람이 만든 식민사관이 아직까지 우리 역사속에서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

 

네 가지 소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는데 하나는 한사군 문제, 또 하나는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부인하는 삼국사기 초기기록불신론이라는 문제, 또 하나는 조선후기 노론사관이라는 문제와 마지막으로 독립운동사가 특히 그 중에서도 한일무장투쟁사가 우리 역사 속에서 왜 말살되었는가 하는 네가지 주제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국어교과서 한국근대사의 개척자하면 누가 나오느냐하면 이인지 딱 나옵니다. 그러고 혈의 누 그러죠 혈의 누, 벌써 언어 자체가 한자로 써면 혈누하면 맞죠 피눈물 하면 맞는데 피와 눈물 일본식으로 쓴거예요 이인직이 대한제국 망할때 뭐했냐 하면 이완용의 비서였습니다. 그래서 이 이인직이 당시 조선통감부 외상인 고마끼라는 인물이 자기의 유학시절의 스승인데 이 인물하고 막후 접촉을 해요

막후 접촉을 해서 일본이 우리나라 멸망시키면 우리 대우는 어떻게 해줄 것이냐 이완용의 밀사로 밤중에 몰래가서 막후 접촉을 합니다.

이 혈의 누라는 근대우리나라 근대소설의 효시라는 내용이 뭔지 아세요 청일전쟁때 청나라 군사가 조선처녀를 겁탈하려고 하니까 일본군이 구해줬다 이 이야기예요

근데 이걸 갖다가 해방이후 근대 신문학의 효시네 창시자네 이런식으로 가르쳐왔지 않습니까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세요?

 

이 나라 망하고 나서 일본이 76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에게 작위와 훈장을 주는데 그 중에 당파 분석할 수 있는 인물이 64명쯤 됩니다. 그 중에 북인이 2명이고 소론이 6명이고 나머지 56명이 전부다 노론이에요 집권당인 노른이 나라 팔아먹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시대에서도 온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단은 워낙 시대착오적인 집단이다 보니까 돈은 많은 데 산업사회로 전환하는데는 실패를 합니다. 대신에 돈은 많으니까 유학들은 갔어요 그 결과 학문 권력을 상당히 장악하게 되는데 우리가 이인직 같은 사람을 갖다가 아주 선각자인것 처럼 가르친 구조

 

그 다음에 여러분 아주옛날 이야기 같지만 한사군 들어보셨죠 한사군 다 초등학교때부터 배웠습니다. 저도 달달 외웠어요 한사군이 뭡니까?

우리 민족 최조의 국가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거기에 세웠다는 식민통치기구아닙니까? 초등학교때 한사군을 달달외웠습니다. 중요한게 문제 두개 나와요 하나는 뭐냐 하면 다음중 한사군이 아닌 것은 하죠? 그러면 낙랑 임둔 진번 현도 중에 하나빼고 부여를 넣던지 넣으면 딱 그렇게 맞춰야 합니다.

또 하나는 다음 중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의 위치는 평양 해주 나오면 어디라고 해야 되요 평양 딱 써 놔야 정답이 되는거죠

 

우리가 한번 이부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설혹 한사군이 평양을 중심으로한 한반도 북부에 있다라고 칩시다. 그거를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합니까 지금으로 하면 조선총독부 이름 외우기와 하나도 틀릴바 없는 거예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라는 이 논리가 당시에 일차사료에 비춰보면 맞느냐 이걸 검증해야 됩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인식되었느냐 두가지 문제점이 있어요 하나는 조선시대 사대주의가 강해지면서 기자조선이 강해집니다. 사대주의자들이 나의 정체성을 버리고 우리는 중국과 같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자조선을 강조하죠

 

이거는 조직적으로 진행된 건 아니고 이게 조직적으로 진행된 것은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 산하 쓰다 소끼치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학계 태두라는 두계 이병도 박사의 와세다 유학시절 스승이기도 한데 이 쓰다 소키치가 만든 쓰다 소키치가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이론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한반도 북부에는 한반도를 그려 놓으면 한반도북부에는 한사군이 있고한반도 남부에는 임나 일본부가 있다 이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은 위로나 아래로나 식민지로 시작했다 지금 일본의 식민지가 된게 전혀 이상한 논리가 아니다 이 논리죠 그러면서 한사군을 다 한반도 내에 묶어놨습니다. 이렇게 쓰다 소키치가 주장한게 지금으로부터 90100년 쯤되었죠 한사군이 설치된것은 기원전 108년이에요 그러면 쓰다소키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조사해보려면 한사군이 설치되었을 때나 그때와 가까운 시기에 편찬된 역사서들을 한사군의 위치를 어디에 써놨느냐 한번 조사해 봐야죠?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한국사 그대로 숨긴 진실에 있으니까 자세하게 보도록 하고 몇 가지 논리만 얘기하면 낙랑군 진번군 아래에 여러 속현들이 있습니다. 낙랑군은 낙랑군이 지금으로 치면 도 단위고 그 아래 현은 군단위죠 20여개의 속현이 있는데 그 속현의 위치를 쓰면 전부다 요동에 있다 무슨 현 요동에 있다에요 언제부터 요동이 한반도 내에들어 왔습니까 한서가 되었던 사기가 되었던 고대 중국사의 한사군의 위치를 보면 전부다 요동이라고 되어 있어요  요동이 언제부터 한반도 내로 들어와서 한반도 내로 끌어들였는데 아까 내가 말씀드린 석조 이상룡이라는 분이 만주에서 역사서 써놓은 것이 있습니다. 거기보면 한사군은 만주에 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단재 신채호 선생도 그렇게 주장했고

 

일제시대에 두 주장이 있습니다. 한사군은 만주에 서쪽에 있었다고 주장한 단재신채호 백암박은식 석조이상룡 아까 성계이시영 이런 분들은 그렇게 주장합니다. 일제시대의 조선사편수회의 인물들은 다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얼만전에 뭘 발표했냐 하면 만리장성이 압록강까지 있었다 이렇게 발표했죠 조금 더 있으면 황해도까지 내려옵니다 내려오게 되어있어요

지금 한국의 소위말하는 주류가 주장하는 것은 만리장성이 황해도 수안까지 걸쳐 있었다 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지금 중국에서 발행하고 있는 공식지도집은 황해도 수안까지 끌어다 놨어요 지금 그렇게 발표하면 우리가 격렬하게 반발하고 이 또 역사 전쟁이 벌어질것 같으니까 일단은 압록강까지 끌고 온거예요 중국사람들 다 플랜이 있는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여기에 맞서라고 만든 기관이 고구려연구재단이고 그 후신이 동북아 역사재단입니다. 여러분 오늘 집에 가셔서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 한번 들어가보세요 거기가보면 올바른 역사란 항목이 있어요 거기에 한균관계 항복이 있는데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다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 버젓이 써놓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학자 개인의 소신이면 그럴 수 있죠 그러나 그런 사람은 동북아역사재단 같은데서 근무하면 안되는 거죠

동북아역사재단은 바로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침략에 맞서라고 연간 수백억씩 지원하는 국가기관 아닙니까

 

그러면 거기에 속한 사람은 일제식민지가 주장했던 한사군은 한반대 내에 있었다라는 주장과 원래 독립운동가들이 주장했던 한사군은 만주에 걸쳐 있었다라는 두가지 주장이 있으면 어느 쪽을 택해가지고 서술을 해야 됩니까

 

제가 왜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책 제목을 지었는지 이해가 되시죠 이 문제가 간단한게 아닌게 중국에서 주장하는 건 동북공정에서 주장하는 건 한강 이북은 중국사라는 것이고 그 근거가 한사군이예요

 

근데 그걸 갖다가 거기에 대응하라고 우리가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어놨더니 거기에 소속된 사람이 그것도 올바른 역사입니다. 그것도 올바른 역사예요?

그러니 이제 우리가 지금 해방된지 몇년 되었습니까 올해로서 이렇게 64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해방이 되었지만 정신은 해방이 안된거예요 역사관에 관한한 일제시대 그대로인 겁니다.

 

또하나가 일제식민사관을 그대로 갖고 있는 또하나가 삼국사기초기록불신론이예요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다 가짜다라는 겁니다. 교과서에 뭐라고 써놓은 줄 아세요 국사교과서 보면 이게 뭔가 제가 묻습니다. 국사교과서를 보고서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자부심을 느껴봤다던지 아니면 나의 정체성을 뚜렷이 해봤다던지 나의 역사관을 다시 세워봤다던지 여러분 역사관이란게 뭡니까 어린시절부터 역사책으로 교육을 해야 되는거예요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을 때 사육신의 편에 설꺼냐 정인지 신숙주편에 설꺼냐 교육을 해야 되는 겁니다.

현실적인 이득을 찾아서 정인지 신숙주편에 설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길을 택하면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그 길이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택해야 되는 길이냐 이 고민을 역사교육을 통해서 사례를 통해서 해줘야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교과서에 그런 가치판단이 하나라도 들어 있습니까?

 

오히려 이런 사관을 가진 사람이 쓰다보니까 항의를 많이 받았죠 그러니까 반대되는 이야기도 조금 써 줍니다. 이건 외울수 밖에 없게 서술되어있어요 역사서라는 것은 일관된 사관으로 서술되어야 하는데 만약에 제가 국사 교과서를 서술한다 그걸 학생들이 배운다 학생들이 너무 좋아 할 것입니다. 제 스스로 책 찾아 보고 이렇게 될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단 골치아프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 근본 뿌리가 우리가 해방이 되었으면 인적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만 중요한게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일본이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기위해서 만든 이런 식민사관을 한번 무엇이 있나 종합적으로 재검토를 했어야 합니다. 해가지고 일제식민사관이라고 다 틀린 것은 아니죠 일부분 맞는 것은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다 배척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되는데 그런 과정을 한번도 안거친 채 지금까지 온 결과 동북아 역사재단 홈페이지에서 올바른역사라는 항목에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글을 버젓이 올려 놓고 있는 겁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불신론은 뭐냐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다 가짜라 이 이야기예요 김부식이 다 창작했다 이겁니다. 여러분 삼국사기 한번 읽어보세요 어떻게 되어 있씁니까? 사실상 천년체죠 어느왕 몇년에 무슨일이 있었고 그걸 김부식이라는 사람이 어느왕 몇년에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수십명의 왕의 사적을 다 조작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이 삼국사기 초기기록불신론은 고대사학계의 정설입니다. 여기에 딴지를 걸고 딴 이야기 하면 학위받기 어려워요 근데 1970년대에 공주에서 우연히 왕릉이 하나 발견되었죠 무슨왕릉입니까 무령왕릉이죠 그 왕릉하나가지고 공주국립박물관을 세운거예요 그런데 그 왕릉이 무령왕 것인지 어떻게 알았냐 그 왕릉이 주석이 나왔습니다. 주석을 삼국사기와 대조를 해보니까 무령왕인데 그 주석을 조사해봤더니 무령왕이 세상 떠난 해가 53257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5325월 똑같아요

 

삼국사기 초기기록이 조작되었다 일고의 가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설입니다. 이것도 누가 만들었냐하면 두계이병도의 스승인 쓰다 소키치가 만든 겁니다. 쓰다 소키치가 일본책을 보면 일본서기 임나일본부가 나옵니다. 그런데 임나일본부를 입증하기 위해서 삼국사기를 보니 임나일본부가 안나오고 삼국사기에는 신라나 백제가 강력한 고대국가였다 이렇게 나오죠 그러니까 양론에 모순이 생긴 겁니다. 삼국사기가 그리고 있는 고대의 한국의 모습과 일본사가 그리고 있는 고대의  한국의 모습이 틀려요 그러면 어떤 문제가 있느냐 하면 일본과 한국에 현해탄 뱃길이 있죠 현해탄 뱃길은 험한 뱃길입니다. 그래서 이 현해탄 뱃길은 가을부터 봄까지는 배가 못 다녀요 그러면 임나일본부는 언제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가을에 민족운동이 일어나면 봄까지 자력으로 버텨야 한다는 얘기에요 버티기 대단히 어렵겠죠? 그러니가 쓰다 소키치가 구상한게 삼국사기초기기록은 가짜로 몰자 그러니까 쓰다소키치가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다 조작되었다 김부식이 조작한 것이다. 라고 만든 겁니다.

 

여러분 국사교과서에 한때 신채호의 주장이 실렸었죠 아주 중요한 겁니다. 신채호의 주장이 뭐냐 하면 일본식민사학자들은 삼국사기는 예를 들어서 백제사나 신라사를 백제는 4세기에 건국되었고 신라는 5세기에 건국되었다 이 이야기예요

 

일본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건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신라나 백제는 다 비씨1세기 아닙니까 근데 그게 아니라 에이디 4세기 5세기에 건국되었고 김부식이 다 조작했다는 주장인데 이 단재 신채호는 무엇을 주장했느냐 하면 고구려의 건국연대에 관해서 고구려의 건국연대가 700년인데 실제로는 고구려 건국연대가 900년 갈 수 있었다. 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신라사를 김부식이 조작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구려는 900년 갔는데 이것이 200년이 문제제기를 한거에요 그런데 이걸 교과서에서 슬그머니 삽입을 해서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가 의심스럽다 라는 것을 중고생들에게 전파시킨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정사와 일본정사와 역사문제가 자꾸 정쟁이 되니까 두 나라 역사학자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역사를 연구해보자 이렇게 만든 기구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라는 기구인데 연간 동안 한번은 한국 한번은 일본 모여서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하면 백제사를 예를 들면 김부식은 백제를 온조가 건국했다고 하죠 이걸 일제의 식민사관은 백제는 근초고왕때 건국되었다해서 4세기로 끌어 내렸죠 이걸 이병도가 백제는 고리왕때 건국되었다해서 100여년 끌어 올렸습니다. 100여년 끌어 올린 것도 전부다 식민사학의 아류예요

 

그런데 여러분 사용하는 국사보면 백제는 고리왕때 건국했다고 되어 있어요 고리왕은 3세기때 인물이죠  그런데 한일역사공동연구회에 참여해가지고 연구결과발표보고서 중에 뭐가 있냐하면 백제가 고리왕때 건국되었다고 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고리왕을 높이기 위해서 조작한 것이다 이시기의 백제의 발전정도는 다 낮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결국 주장하는 것은 백제는 근초고왕 때 건국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병도도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이 분보다도 더 뛰어 올라서 쓰다소키치를 주장한 것을 그대로 써 놨어요 그래서 백제에 건국시기를 4세기로 다시 끌어내렸습니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 역사학자가 국민의 세금을 받아가지고 두나라를 왔다갔다 하면서 한 역사연구결과라는 겁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죠 그런데 이 국가가 언제 건국했느냐 이부분은 문헌사와 고고학계의 유물로 판별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고고학계의 유물로 국가의 성립근거를 찾게 되면 몇가지가 나오죠 왕성은 축조되었느냐 또는 철제무기가 등장을 하느냐 또는 유적을 본 떠서보면 계급분화가 일어나느냐 몇가지 등등 있는데 이 사람들이 2005년도에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발표를 하면서 서울의 풍납토성을 갖다가 3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써놨어요 풍납토성은 이미 2000년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시료 10이상을 갖다가 방사성동위원소 측정을 했습니다. 방사선 동위원소 서너개만 시료측정을 해도 결과가 일치하면 맞는 것으로 치는데 열개 이상을 했어요

 

거기에 이미 비씨 1,2세기에 만들어졌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안믿겠다 데이타주시오해도 안믿겠다. 저 경주에 여러 유적에서는 한강 유역에도 철제무기가 많이 나오고 낙동강유역에도 철제무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경주 유역에는 계급분화흔적이 유적에 많이 나와요 그러면 우리는 삼국사기라는 역사기록 문헌기록이 있고 그 다음에 철제유물이다 풍납토성이다 여러 유적들이 있습니다. 고고학 유물이 있어요 그러면우리는 신라와 백제가 비씨로 건국하면 누가 반박할 사람 있습니까 해외에서 주장해도 반박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 이야기는 뭐냐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해방이후에 잘못된 식민사관을 전혀 검토하지도 않고 내려온 결과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역사관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받아왔던 역사는 조선사편수회 것을 그대로 받은 거예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보면 원삼국실이란게 있습니다. 삼국실이면 삼국실이고 아니면 아니지 원삼국실이 뭐냐 이게 에이디 3세기때까지의 유물을 갖다 놓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부여에서 철제유물이 나왔다 하면 백제껏 하면간단하죠  경주에서 에이디 1세기 유물이 나오면 신라때 유물하면 간단하죠 근데 이 시기에 백제 신라 없었다는 거예요 있어봐야 조그만 동네국가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원삼국실이란 것을 고안해서 에이디 1세기에서 3세기 유물을 때려 넣는 겁니다.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에 그대로 있어요

 

그런데 쓰다 소키치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다 불신하다 보니까 여기에 뭔가 대체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대체한게 뭐냐 하면 중국기록의 삼국지위지동이기록에 삼한을 한반도 남부에다 갖다 놓은 겁니다. 갖다 놨는데 삼한의 내용은 뭐냐 한반도 남부에 삼한이 있었다 진한은 54개 소국 진한 마한은 각각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다. 꼬마국가라 이거예요 그래서 한반도 남부에는 도합 78개의 꼬마국가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임나일본부가 존재할 수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소다쓰키치가 이런 주장을 할 때, 중국 청나라때 황제의 명으로 만주원류고라는 책을 만들어요 만주의 원류는 뭐냐 우리의 만주족의 뿌리는 뭐냐 만주의 전 역사에 대해서 당시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서 만든 책인데 이 책에서 삼한이 어디라고 나오냐면 삼한이 바로 요동반도라고 나옵니다.

 

근데 우리는 항상 역사선택할 때는 우리에게 항상 불리한 것을 취사선택을 해요 이쪽 주류사학계라고 하는 분들이 이 한반도 여기에 한사군이 있었다 주장하는 이유가 그 쪽에서 중국계유물이 많이 나오지 않느냐 이런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일제시대때 일본사람들이 저 지역에서 나온 평양 황해도 일대에서 유적 무덤을 약 70기 정도를 발굴을 합니다. 그런데 해방이후에 북한에서 약 3000기정도를 발굴을 해요 그러면 북한의 정치체제가 좋고 나쁘고 둘째치더라도 북한에서 3000개의 무덤을 발굴을 해서 연구보고서를 내지 않습니까 그러면 정치체제와는 별개로 그 연구보고서에 대해서는 우리가 진지하게 검토를 해야죠 한 예로 중국계 중국 한나라 무덤이라는게 나무곽 무덤이라는게 있어요 목각묘 여기에 대해서 북한에서는 뭐라고 했냐 하면 이게 비씨 3세기 전에 만들어져서 비씨 1세기때 없어진 무덤이다 한사군이 설치되기 한사군은 비씨 108년에 설치되었다고 했죠 한사군이 설치되기 수백년전에 생겨서 한사군이 설치될 때 없어진 무덤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북한에서 이렇게 주장하면 나름대로 반박하려면 근거를 제시해야죠 아무 근거제시 안하고 무조건 못믿겠다 북한 주장을 무조건틀렸다 일제식민사학주장이 무조건 맞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겁니다. 근데 당시 이 중국계 무덤 중에 명문이 나오는게 있어요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가 나오는게 몇가지 있는데 거기 하나같이 전부다 중국에서 망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럼 그건 딱 떼서 따로 해석하죠

 

이 지역에 있다는 중국계 무덤이 발견되는 것은 뭐냐 하면 예를 들어 미천왕때 미천왕이 잡아온 포로가 만명 플러스 알파입니다. 고구려란 나라는 끊임없이 서쪽으로 진출해서 옛 고조선의 강역을 회복하는 것이 고구려의 국시에요 진출해서 많은 포교를 잡아 오는 것이죠 그러면 포로들을 어떻하느냐 포로가 도망갈 우려가 있으니까 중국에서 가장 먼 한반도에 집당수용을 하는 겁니다. 집당수용을 해서 중국계 유물이 나오는거지 여기를 한사군이 지배를 해서 나오는게 아니거든

아까 말씀드린 한일역사공동보고서에 뭐라고 되어있느냐 하면 고구려와 백제가 전쟁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전쟁하는 이유가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우수한 문명 문화 소유한 중국인들의 문화와 문명을 소유하기 위해 전쟁을 했다 아주 기발한논리로 써놨습니다.

 

그러면 우수한 문명을 지닌 이쪽사람들이 문명은 우수한데 군사력이 미약해서 고구려 백제가 내꺼다 내꺼다 하면서 싸우도록 방치를 했다는 이야기인지 논리가 기본 초등학생이 봐도 안맞을 논리를 가지고 자꾸 써 놓는거예요 그러면서 이지역은 고구려 지역 아닙니까 이 지역의 우수한 문명 문화를 가진사람들을 차지하기 위해전쟁을 했으면 이지역이 고구려땅이니까 백제가 쳐들어가야죠 근데 기록보면 전부가 고구려가 쳐들어가는겁니다. 고구려가 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했다는거예요 보다 간단한 방법은 뭡니까 전쟁하려면 돈 아주많이 들죠 이 사람들 이주시키면 간단한데 국경지역에 갖다 놓고 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서 전쟁을 했다 이런 논리를 버젓이 써 놓고 국가교과서 개정할 때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 써 놓는 겁니다. 이렇게 하다보니까 해방이후에 일본사람이 만들어 놓은 역사관 이걸 한번도 정리를 못한 상태에서 해방이후에 분단이 되고 냉전체제가 되죠

 

좌파계열의 역사학자들은 월북을 합니다. 남아있던 민족역사학자들은 6.25때 납북이 되요 공백기가 됩니다. 남아 있는 것은 식민사학자들이 다 차지해서 전부 한국사학계의 뿌리가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독립운동사를 연구를 못하게 해요

 

저도 역사학에 들어갔더니 현대사는 연구하면 안된다 이겁니다. 왜 안되냐 하니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안된다 그당시에는 그런가보다 했듯이 갓들어간 학부학생이 알겠습니까 그 말도 얼핏들으면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현대사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가고 싶어하는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어느 대학의 국사학과에서는 독립운동사 연구하면 일체 학위가 안나왔어요 연구자체를 못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그 당시만 하더라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생존했습니다. 이금기가 깨진게 80년대인데 80년되니까 독립운동가들 다 돌아가셨어요 이제는 뭐 청취할라고 해봐야 청취할 사람도 없습니다. 국가 교과서에 한일무장투쟁사 안나오는 것 아니죠 일부 나오죠 원칙이 있어요  무슨 원칙이 있느냐 아주 대단히 유명한 사건 다 아는 알려진 사건은 써준다  교과서에 뭐 나옵니까 청산리 봉오동 이런 건 나오죠 워낙 유명하니까

 

그런데 독립운동사를 서술하는 원칙은 전세계 우선해서 쓰는 원칙이 있습니다. 가장 우선해서 쓰는 것이 뭐냐 무장투쟁사를 쓰는 거예요 그 다음에 동포여 각성하라 애국계몽계열을 써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애국계몽은 써줬죠

 

그러다 보니까 새로운 교과서가 재정되었는데 만주지역에 여기에 참의부가 있고 정의부가 있고 신민부가 있습니다무장부대들이죠 전성기때는 수천명 나중에서는 수백명의 무장부대들인데 참의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중앙참의부입니다. 대한민국 육군 중앙 만주에 주둔하는 부대다 근데 참의부에서 나중에 1920년경에 나중에 참의장을 했던 김승학이란 문이 천신만고 끝에 무기를 사와가지고 일본기록으로 78회에 달하는 국내진군작전이 벌어집니다. 다 압록강을 건너가지고 국내에 일제에 잠입해서 일제 파출소 뭐 이런 일제소관들을 타격한게 78회예요

 

이런 말씀 처음 들어보죠 그 다음에 참의부에서 뭘하느냐 일본의 사이토 총독이 압록강을 거슬러 옵니다. 참의부에서 당시 참의장 백광현 아래에 이의중이란 인물이 압록강에 매복하고 있다가 배 두척에 수백발의 탄환을 쏟아 붇죠 황급하게 도망을 갑니다. 이런 사실도 처음 들어보시죠 이의중이란 분은 나중에 사형당해요 체포당해가지고 이런 이야기는 하나도 안 가르치고 교과서는 참의부가 있었다 참의부는 임시정부산하에 있었다 이렇게 딱 써놨습니다.

그 반면에 일제시대에 대해선 뭐라고 써 놨느냐 하면 일제시대에 주택을 써 놓으면서 1920년대에는 주택이 좋아졌고 1930년대에는 문화주택이란 것이 생겨서 문화주택이 뭐냐 하면 이층양옥이고 집안에는 응접실이 따로 있고 아이들 방이 따로 있고 거실이 따로 있어서 개인의 공간이 생겨났다 1940년대에는 서민들의 주택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서 했다는 이야기들

 

여러분 1930년대에 이층에 거실에 아이들 방 따로 갖고 살던 사람이 그 당시 대한민국에 몇 명되겠어요? 조선총독부에 아주 가까운 소수층만이 살았겠죠 그런데 독립운동사는 참의부산하 신민부가 있었다 학생들이 골치아프게 되어 있어요 뭐 했는지도 모르고 이름 외워야되니까 여기에 소속되었던 정영희라는 분은 국내 내려와서 국내 진공작전펼쳐서 파출소 습격해서 전투를 했는데 나중에 체포되어 감옥생활하죠 이런 사례를 가르치면 외우지말라고 해도 잘 외우지 않겠습니까?

 

신민부는 유명한 김좌진장군이 주도하던 항일무장부대고 이런 거 하나도 안가르키면서 1920년대에는 주택에다 니스를 칠하고 뭐 칠하고 너무 친절해요 우리가 1920년대에 주택에 니스칠한 것까지 외워야됩니까?

 

그 다음에 1940년대에 조선총독부에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서 연간주택을 만들었다 이따위것을 지금 학생들이 학교에서 그걸 배워야돼요?

조선사편수회에서만든 그 역사관을 써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해방이후에 이만달러까지 성장했지만 여기에서 정체된 이유가 있는거예요 이걸 뛰어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이 뚜렷해야 됩니다.

 

근데 우리 교과서와 역사관에 관한 우리의 정체성은 뭡니까 식민지로 시작했고 항상 굴종당했고 우리 어릴 때 배운게 우리민족은 백의민족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고 남의 나라 침략 안했다 이것도 다 일제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사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해방운동하면 안된다 해방무장투쟁하면 안된다

 

그런데 실제 보면 고구려 영양왕이 말갈장수 만명을 거느리고 수나라가 갓 통일제국을 건설했는데 아주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수나라가 그러고 있을 때 고구려 영양왕이 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수나라를 침략합니다. 약한 나라 먼저 침략하면 몰라도 당시 고구려가 당시 최강대국인 한나라 공격한 기록이 무수하게 많이 나와요

북경까지 태원까지 공격한 후로 무수히 나옵니다 교과서에 다 빼버리고 지금 이 이야기를 왜 말씀드리느냐

 

우리가 동북공정과 일제식민사관이 똑같아요 왜 똑같을 수 밖에 없느냐 둘다 침략사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침략사관은 뭡니까 역사를 빙자해서 나중에는 정치가 들어오고 군사가 들어오는 거예요

일본이 그렇게 했듯이 동북공정은 100년 전 일제의 식민사관과 일란성 쌍둥이입니다우리는 내부에서 이런바 일부역사학자들이 여기에 동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이 역사를 해체를 해야 동북아에 진정한 평화가 옵니다.

 

역사를 침략의 도구로 바라보지 말고 우리역사가 이렇게 한사군이 여기 있지않고 여기 있었다 중국하고 전쟁하자 그런 이야기들이 아니예요

역사를 과거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사용했듯이 침략의 도구로 바라보지 말아라 상호 인정하자 상호 평등을 인정하자 호혜평화를 지키자 그래서 일본이 진정한 아시아의 지도국가가 못되는 것이 역사관에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중국도 아시아의 지도자가 되기 어려운 이유가 침략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이 양쪽을 해체해야 동북아에 진정한 평화가 온다

일본도 하기 힘들고 중국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일본도 극우세력만 눈에 띄니까 그렇지 일본은 과거에 전쟁에서 많은 반성하고 풀뿌리 조직이 많이 있습니다. 그 쪽과 연계를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역사관을 바로 잡고 우리의 2세를 교육시키고 우리의 주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우리의 역사관을 통한 바른 철학을 갖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세계인의 일환일 될 때 그런역사관으로 우리나라가 거듭날때 대한민국이 진정한 일류국가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동의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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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책요약

 

 

서문

우리가 살고 있고 또 살아가야할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통찰의 힘을 요청하고 있다.

분석과잉, 통찰결핍 시대

오늘날 가장 시급하고 긴요한 것은 통찰의 힘이다.

통찰의 힘을 기르는데 최고의 자양분이 바로 인문학 즉 후마니타스다. 인문의 위력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진정한 통찰의 힘을 얻기 위해서!

안주하지 않고 가로막힌 벽을 뚫으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할때 우리가 들어야 할 진정한 무기가 바로 통찰의 힘이다.

통찰의 힘은 현장이 요청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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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사람의 마음이고 영혼이다.

역사는 거울

철학은 삶의 진정한 원리를 발견해가는 살아있는 운동

문사철이 바로 인문학의 본령

 

2장 창의성

레오나르도 다 빈치, 쇠붙이에 그치지 말고 면도날이 돼라.

면도날이 되려면 하루도 빠짐없이 숫돌에 가는 길 뿐이다.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낯설게 해야 한다.

끊임없이 나를 낯설게 하고 곤혹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낯섦과 곤혹스러움이 우리에게 문제를 던지고, 다시 그 속에서 솔루션을 찾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솔루션이 창의성의 바탕이 된다.

 

창의성 발현의 3요소

영역-축구

현장-프리미어리그

개인-플레이어

무엇이 프리미어리그를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로 만들어냈을까?

1. 창의적인 플레이어.

프리미어리그의 의도는, 거르고 걸러 최고 수준의 선수들만 모아놓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포지션 하나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경쟁이 창의를 낳는다.

2. 고객 중심, 관중석이 그라운드에 밀착. 카메라 입체적. 땀하나까지도 볼수 있게 한다.

3. 무한경쟁시스템.

20개의 팀중 하위 2개팀이 2부리그로 방출된다. 피튀기는 경쟁. 살아남으려면 선수, 감독, 구단이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하나의 거대한 놀이방, 감각의 놀이터다.

빌게이츠는 1년에 두 번, 일주일간 외딴의 별장에 틀어박혀 300여편에 달하는 직원들의 크레이징 리포트를 독파한다. 생각주간이라고 부른다.

고독의 시공간에서 미래를 창조해내고 있다.

문화적 돌연변이가 탄생해 그것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 그 모방이 하나의 변화를 일으킨다.

 

창의성의 필수 사항이 있다면 범상치 않은 호기심 뿐이다.

 

고정관념을 벗어난 창조적 상상력을 체득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1. 3070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는 자기 시간의 30퍼센트는 실질적인 업무에 쏟되 나머지 70퍼센트는 재충전과 여가, 혹은 남들 눈에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GE의 전회장 잭웰치의 예

일은 일대로 돌아가게 두되 일터 바깥에서 새로운 창의성을 찾아오라는 이야기다. 빌게이츠의 생각주간처럼 말이다.

사실 초보 경영자와 노련한 경여자의 차이는 바로 이 3070의 공식을 얼마나 잘 유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언뜻 반대로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하지만 부재(不在)경영이라는 말도 있듯. 위임할수 있는 결정은 결코 직접 내리지 말라.

하지만 대부분의 초보 경영자는 당장의 현안에 매달려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1,2년을 보내고 나면 배터리처럼 소진된다.

반면 노련한 경영자는 3070의 원칙을 유지, 1020년을 롱런한다. 현안에만 매달리지 않고 꾸준한 미래에 대한 투자로 재충전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2. 400년이상 된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한다. 최근 나오는 책들과 자료는 경쟁자도 읽는다.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의 것들을 끄집어내야 한다.

3. 몰입의 즐거움을 배워야 한다.

 

에디슨의 발명방식

좌추우돌 발상, 저수지발상-생각의 저수지 속에 온갖 것을 던져넣어 연관효과를 일으키고 거기서 낚시하듯 아이디어를 낚는 낚시 발상을 즐겼다. 낚시의 미끼는 호기심이었다.

 

3장 디지털, 그 감각의 제국을 지배하라.

느낌-공감-시너지의 연쇄고리

상상력은 곧 생산력이다.

감각의 해부

촉각

존나이비스트의 책 하이테크 하이터치, 하이테크로 갈수록 하이터치를 갈망하게 된다.

후각

후각은 기억의 첨병이다.

.....

 

디지털 시대, 감성 리더의 7가지 덕목

1. 느림을 확보하라.

음식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천천히 먹어야 한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속도가 생존의 무기, 하지만 그렇게 속도를 내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느림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2. 상상력으로 승부하라

남들이 상상할수 없다고 생각하는 위치에 상상의 베이스 캠프를 쳐야 한다.

3. 차이를 드러내라.

차이야말로 승부의 장소이자 새로운 가치 창출의 터다.

4. 느낌을 존중하라.

진정한 리더라면 새로운 차이를 드러내는 시장 돌파의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이야기라면 그것이 비록 조직 방침에 어긋나거나 당장 돈이 되기는 어려워 보여도 일단 체크하고 저장하는 감각을 갖춰야 한다.

느낌을 존중하는 조직은 결국 생존하고 승리한다.

느낌, 감성, 감각이 결국에는 승리한다.

5. 낯선 것과의 마주침을 즐겨라.

스스로를 낯설게 하고 낯선것과의 만남을 즐길줄 알아야 느낌과 감성, 감각의 돌기도 되살아난다.

친숙한 것, 친숙한 사람과의 만남은 나를 병들게 한다.

반대로 나와는 다른 것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나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6. 레퍼런스

내가 가진 레퍼런스의 두께는 곧 나의 두께다.

레퍼런스란 책 뒤에 살린 참고 문헌과 비슷하다. 모든 책은 그 참고 문헌만큼만 책이다. 그 두께만큼 세상을 느낄수 있다. 낯선 곳에 자신을 던져 자기 안의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레퍼런스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기억하라.

7. 감각의 놀이터에서 변화와 놀자.

변화를 즐겨라. 변화는 절대 쫓아갈수 없는 대상이다. 대신 함께 어울려 놀때 그 변화도 내 것이 된다.

 

4장 스토리, 미래 사회를 사로 잡는 힘

정보화 사회의 태양이 지고 있다. 우리가 그 사회에 완전히 적응하기도 전에 말이다. 인류는 수렵꾼으로, 농부로, 공장, 지금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또다른 형태의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바로 드림 소사이어티다. 이것은 신화와 꿈,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장을 형성하는 새로운 사회다.

 

드림소사이어티의 시장은 감성과 꿈이 지배한다. 이 시장에서 승리하려면 이야기를 존중해야 한다. 이야기를 품지 못하는 상품은 창고에 쳐박힐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상품 그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상품에 얽힌 이야기를 산다.

드림소사이어티에서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곧 성공의 능력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담아 전달하면 거의 무한대의 흡수가 가능해진다.

한조직을 10년뒤에도 살아남게 하려면 단순히 대단한 제품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안에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그것이 전통이자 역사, 신앙 철학)

조직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고 그 미래를 보여줄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만 조직도 지속적으로 성장할수 있다.

 

재무중역 뿐 아니라 상상중역, 모험중역이 필요하다.

 

조직의 핵심 스토리를 만들어 낼수 있어야 한다. 조직이 강해지려면 조직의 스토리가 모든 조직원과 조직의 모든 상품 속에 담겨 있어야 하며, 기업이 생존하려면 자기만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것을 확산시킬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되레 느낌의 공동체의 영향력이 증폭되었다.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설득이 아니라 공감이다. 공감하지 못하면 커뮤니케이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가 필요하고, CEO는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이야기의 힘은 우리내면에 숨은야생의 유전자자를 자극하고 끄집어내고, 들춰보는 가운데 생성된다.

야생의 사고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우리를 마법의 세계로 인도하고, 이것이 재주술화를 일으킨다.

 

선진국들은 물질면에선 풍요롭지만 신화나 전설 이야기면에서는 가난하다. 오히려 아프리카, 인디언 등 아직 때 묻지 않은 종족들에게 신화, 전설, 이야기가 풍부하게 남아있다. 이제는 그들로부터 신화, 전설, 이야기에 대해 저작권을 빌려야 할지도 모른다.

 

상품에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은 상품에 주술을 거는 것과 같다. 강한 임팩트가 있는 긍정적인 이야기, 간결하면서도 흐름이 분명한 이야기, 극적인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찾아라.

 

문화전쟁, 이야기 전쟁이 총, , 폭탄의 전쟁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면 자기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5장 욕망, 결코 포화되지 않는 시장

아담스미스의 국부론, 도덕감정론

sympathy, 더불어 느낀다. 공감.

아담 스미스가 생각했던 그 마음의장, 공감의 장이 디지털 시대에서야 비로소 현실화되었고, 때문에 시장을 제대로 읽는 일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심리학이 되었다.

 

하워드 가드너

마음의 틀

다중지능 이론

1. 언어지능, 언어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토론 학습에 두각을 나타낸다. 유머, 말잇기, 법률가, 웅변가, 작가, 시인. 언어지능은 스토리 텔링능력과 직결

2. 논리수학지능

논리적 분석, 수학적 조작, 과학적 탐구. 최선의 결정에 필수

3. 음악지능

음악과 비즈니스 사이의 유사성

대규모 조직의 경영과 오케스트라 지휘의 원칙이 흡사하다.

화성악을 기초로한 음악은 매우 수학적이다.

4. 공간지능

5. 신체운동지능

어떤 사람과 한시간 농구를 하면 그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파악할수 있다.

6. 대인지능

타인과 효과적으로 일할수 있는 능력

판매원, 교사, 종교, 정치 지도자.

7. 자성기능

자신의 욕망, 두려움, 재능등을 컨트롤해 효율적인 삶을 살아가는 잠재력

8. 자연지능

풍수를 보는 능력도 일종의 자연 지능

그 외의 지능

실존지능, 우리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등의 사색하는 인간의 능력, 영적 지능

 

창조하는 마음

첫째, 10년의 숙성 기간을 거치고 나서 10년간 발휘되고 그 다음 10년간 다른 분야로 확산도니다. 뭐든지 10년은 목숨걸고 해봐야 하는 셈이다.

둘째, 창의성의 천재들은 모두 어린아이의 감수성을 체화하고 있었다.

 

이끄는 마음

가장 강력한 리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내는 리더

마틴 루터 킹 목사-I have a dream! 유명한 연설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실천할수 있을 때 그 스토리 텔링의 파워와 리더십의 힘도 극대화된다.

 

변화하는 마음

쿨리더-대중들을 자신의 이야기 안으로 끌어 들여 그들이 추구하는 리더의 이미지와 부합하도록 만든다. 케네디, 레이건

핫리더-자기 입으로 모든 것을 말해버려 대중들이 이야기 속에 참여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하수 없게 만든다.

 

1산업-농업

2산업-제조업

3산업-서비스

4산업-IT

5산업-마음

바야흐로 마음 산업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차별화시킬 자신만의 무언가와 자신만의 감성 바이러스를 발견해내라. 나아가 그것을 자신의 삶에 담아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어라. 어눌해도 좋다. 서툴러도 좋다. 다만 자기 목소리를 담은 이야기여야만 거기에 시장이 열리고 미래가 펼쳐진다.

 

6장 유혹, 소리 없는 점령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거대한 유혹의 향연장.

생명의 지속과 번성은 유혹의 성과에 달려 있다.

유혹한다=생동한다

사람은 주로 말로서 상대방을 유혹한다.

유혹, 유는 꾈 유, =+, 말이 얼마나 강력한 유혹의 무기인지는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정치인은 대중을 유혹해야 하고 상품은 고객을 유혹해야 하며, 기업은 시장을 유혹해야 한다. 유혹하지 못하면 생존할수 없기 때문이다.

유혹은 생존에의 사투

비즈니스는 결국 고객을 향한 유혹이다.

유혹의 기술

1. 상대를 안심시킨후 허를 찔러라.

2. 대비효과를 노려라. 상대의 단점과 나의 장점을 대비

3. 상대의 방어본능을 잠재워라.

4. 유머와 풍자로 상황을 반전시켜라. 유머와 풍자로 좌중의 폭소를 자아낸뒤 상대의 공격에 응수하는 방식

5. 이야기를 통해 유혹의 힘을 지속시켜라. 아라비안 나이트, 스토리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능력은 대단한 힘이자 무기다.

6. 감각적인 최면효과로 유혹하라.

 

유혹의 대가 5

1.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는 유혹의 힘으로 국가를 유지한 여왕이었다.

2. 엘리자베스 1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만듬. 평생독신으로 지냈고, 통치기간 내낸 결혼 문제를 논란 거리로 삼는 전략으로 무제한의 복종을 이끌어냈다.

3.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유혹의 힘을 남성의 세계로 끌어온 인물이다. 그는 유혹이 곧 권력을 만든다는 사실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4. F. 케네디

그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그가 가진 목표에 있었다.

리더가 지향하는 목표는 때로 강렬한 매력이 된다.

진짜 고수들은 자기가 아닌 동료를 부각시키면 결국은 자신이 부각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5. 에바 페론

아르헨티나 전체를 유혹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내 꿈을 접었습니다. 나는 내 영혼을 내 민족의 제단 앞에 기꺼이 바칠 것입니다.

에바 페론의 유혹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는 성스러운 유혹이었다.

 

유혹은 생존을 위한 사투와 다름없다.

유혹은 다름 아닌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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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건졌다.

오늘 책 사냥 괜찮네.

우발과 패턴

복잡계와 모래산 이론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복잡함 속에 패턴을 찾고 그걸 읽어내려는 노력이다.

sbs스페셜에 나왔을때 아주 재밌게 봤는데 책이 개정돼서 나왔네.

현대과학의 카오스 이론과 프랙탈이 인간 패턴과 문명의 흐름을 읽는데 적용된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과학적 사고의 목표는 특수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을 보고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을 보는 것이다."

주역에 나오는 근취저신 원취저물, 인간 자신의 비밀을 알려거든 우주만물을 보고, 우주의 목적을 알려거든 나자신을 보라는 이 문구가 과학에서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된다.


공자가 역계사(易繫辭)에 근취저신 원취저물(近取諸身 遠取諸物)하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우주의 변화를 연구하는 방법을 말한 것인 바 그렇게 교시(敎示)한 이유는 첫째로, 모든 물질의 변화 현상은 천변만화하는 것이므로 거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은 자기 자체에서 관찰하는 것만큼 더 빠른 길은 없다. 그러므로 근취저신하라 했고 이와 같이 하면서 근취저신하는 방법에 정통하게 되면 만물의 변화가 비록 천태만상으로 변화한다고 할지라도 여기에서 관찰할 수 있는 소지가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 원취저물하라고 했던 것이다. 

-우주변화원리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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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나 건진 책 ㅋ

마음의 힘

아주 평범한 제목이지만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와 인도출신 의학박사 디팩초프라의 내용이 있어서 눈에 확 띄었다.



"심장이 단순한 혈액 순환 장치가 아니라 일종의 정보처리 센터임을 입증하고 있다."

"마음에 지성이 있다는 사실."

심장과 마음을 동일시 얘기하면서 심장이라는 장기가 지성을 갖춘 존재로 얘기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목화토금수 오행에 간심비폐신을 배속해 인간의 생명활동과 영성이 장기에서 발현되는 시스템을 얘기하는데 

거기에 접근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 한의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으리라.


"사람들이 진실의 값어치를 깨닫게 하려면 그걸 넣어둘 만한 장소는 오로지 그들의 심장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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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정리 중인 글입니다 ㅋ



현대물리학과 대응될 수 있는 것 : 힌두교의 ≪베다경≫, 도교의 ≪역경≫, 불교의 ≪불경≫ 아라비의 수피교(Sufism), 야키마술사 Don Juan의 가르침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 만날수 있다는 것을 카프라는 얘기하고 싶은 거겠지)


신비주의에 대한 관점

-서양 : 언제나 방계적인 역할을 함.

-동양 : 철학적, 종교적 사상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최근에 와서 서구과학은 이러한 주지주의적인 사고의 관점을 극복하고 다시 초기 그리스나 동양철학의 관점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직관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치밀하고 정교한 실험과 엄밀하고도 일관성 있는 수학적 형식주의 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 서양철학의 발자취

1) 기원전 6세기의 밀레토스학파

① 초기 그리스 철학, 곧 과학과 종교가 나누어지지 않았던 시대.

② 목적 : 사물의 본질, 즉 진정한 구조(physis)를 밝히는 것.

③ 신비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④ 물활론자(hylozoist, 물질이 상아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 생물과 무생물, 정신과 물질을 동일시.



⑤ 일원론적, 유기론적 관점 - 고대 인도, 중국의 철학과 극히 근사한 것이었다.

2) 헤라클레이토스

① 동양사상과 아주 유사.

② 우주는 부단히 변화하고 ‘영원히 생성’하는 것. ⇒ 불(로 상징)

③ 세계내의 모든 변화는 대립자들의 역학적이며 주기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 일어난다.

대립자의 쌍을 하나의 통일체(logos)로 보았다.

3) 엘레아(Elea)학파의 파르메니데스

① 통일체의 분열이 시작됨.

② 제신과 인간의 위에 신성한 원리가 있다고 간주함.

③ 서양철학을 정신과 물질의 분열(二元論)으로 이끌어간 사조가 시작됨.

④ 기본원리 = ‘불변의 존재’ = 변화란 있을 수 없는 것.

⑤ ‘이 세상의 변화란 단지 감각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생각

4) 기원전 5C의 그리스 철학자들.

파르메니데스의 ‘불변의 존재’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영원한 생성’이라는 대척적인 관점을 극복하고 융화시키고자 하여, ‘불변의 실체를 갖는 어떠한 것 속에 존재가 현시된다’고 보고, ‘이것의 결합과 분리가 이 세계 내의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사람들이 생각한 지상계(지구)의 모습 (바다위에 땅이 떠 있으며, 대기 바깥 우주는 아이테르로 꽉 차 있는 모습이다)




5) 그리스의 원자론자

① 정신과 물질을 명확히 구분 ⇒ 마음과 물질, 육체와 영혼이라는 이원론을 이루게 됨.

② 물질은 몇 개의 ‘기본적 구성체’로 만들어져 있으며, 본질적으로 죽은 입자이다.

③ 정신 - 물질운동의 원리인 외부의 힘으로서 물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6) 기원전 4, 5C 이후 2천년간(중세시대)

① 정신과 물질이 구분된 사상이 나오자, 물질보다는 정신적인 세계에 관심을 돌리게 됨.

②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체계화되고 조직화되어, ‘인간의 영혼에 대한 문제와 신의 완전성에 대한 상념이 물질세계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라는 믿음이 2천년간 지속됨.-물질세계에 대한 흥미의 결여와 중세를 일관해서 그리스도 교회가 아리스토 텔레스의 교리를 강력히 지지했기 때문.



7) 르네상스(15C)

① 아리스토텔레스와 교회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에 대해서 새로운 관심을 보이고, 수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실험에 바탕을 둔 적정한 과학적 이론을 형성하게 됨.

② 갈릴레오 - 실험적 지식을 수학과 결부시킨 최초의 사람으로서 ‘근대과학의 아버지’라 불리우게 됨.

8) 17C의 르네 데카르트

① 자연을 마음과 물질이란 두 개의 분할되고 독립적인 영역으로 근본적으로 구분.

② 물질(죽은 것)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기계이며, 조립된 제각기 다른 객체의 군집으로 보도록 허용함.

③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자신(마음)을 육체속에 내재하는 고립된 자아로 인식하게 됨.

④ 이 인간의 내적 분열은 ‘외부세계’를 ‘제각기 분열된 대상과 사건의 집합’으로 보는 관점을 반영한 것으로, 자연은 따로 떨어진 부분들로서 구성되있는 것처럼 취급된다. → 모든 것들의 분열 초래.



근대에는 자아를 어떻게 규정했냐? 데카르트 이후에, 데카르트의 이원론의 사상체계라는 것이 인류문화에 엄청난 공덕을 일으킨거여. 그러면서 그 문화가 무너지지 않을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배태하고 있는데, 이원론Dualism에 빠져가지고.

데카르트가 말하는 핵심 요지가 과연 뭐냐? 데카르트를 비판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굉장히 데카르트를 잘못 이해하고 그 사람을 매도하는거지. 데카르트야말로 근대 문명의 새로운 관문을 이렇게 확 열어놓은 사람이다 말여. 그러면서도 수렁에 빠지고 한번 뒤집어지는 말야, 신을 부정하는 쪽으로 가기 때문에. 그것을 차단해 가지고 제2의 관문을 여는 것이 화이트헤드가 나오는 거거든. 그것을 또 마무리 짓는 사람들이 일꾼들에 의해서 그런 문을 활짝 다 연다 말이여.

<스승님>


9) 아이작 뉴턴

① 데카르트의 사상을 기초로 기계론을 구축하여 고전물리학의 기반을 다졌다.

② ‘기계론적인 우주모형’은 17C후반부터 19C말 까지 모든 과학사상을 지배했다.

③ 신성한 법을 펼쳐 천상에서부터 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전체적인 신의 이미지와 흡사. 이리하여 자연과학자들이 탐구하는 자연의 기본법칙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영원 불변한 신의 율법으로 보여진 것

10) 20C

데카르트의 분할과 기계적인 세계관의 분열을 극복하고 초기 그리스와 동양철학에 표명된 全一의 이데아로 다시금 이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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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간 쉬쉬해 온 성서의 숨겨진 사실들


성경의 구약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희랍과 중근동 민족신화에서부터 왔다! 19세기 후반부터 근 150년 이상 발굴되고 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유물들을 평생 연구해온 민희식 박사의 주장이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근동지역 주민들에게 해당되는 설화일 뿐,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주변 민족들의 신화에서 차용되어 편집된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구약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그 원전이 되는 수메르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신화와 전승을 소개하고 그것들이 구약성서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살아 있는지 규명해나간다.‘ 성서가 허구이다’라는 생각보다‘ 성서의 원형이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의문으로 이 책을 읽길 바란다(이하 본문내용 발췌).

창세기의 기원-수메르의 천지창조 신화가 원형

수메르의 창세기가 구약 창세기 창조신화의 원전이다 근대에 들어 고고학 발굴로 수메르 지역에서 방대한 사료들이 쏟아져 나오자 수메르인들의 역사, 문화, 신화, 문학 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수메르 문화가 헤브라이즘의 모태였음이 입증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구약성서에서의 에덴동산, 노아의 홍수, 모세의 율법, 욥기의 비극, 시문학 등이 모두 수메르의 신화에서 대대적으로 차용되었음이 밝혀졌다. 구약성서의 발원은 수메르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이 오늘날 성서고고학계의 정설이다. 수메르의 창조신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니푸르에서 발굴된 점토판 문서로‘ 에리두 창세기’라 불린다.

흙으로 인간을 만드는 신화는 수메르·이집트·그리스에서 인간 창조신화는 수메르 이집트 그리스신화를 거쳐 기원전 4세기경에 이르러서야 구약성서에서 아담 이야기로 각색되었다.

*바다의 신 남무와 출산의 신 닌마가 바다에 떠 있는 진흙을 가지고 검은 머리의 사람들을 만들었다. (에리두 창세기)
*진흙에 반란 주동자 신의 피를 섞어 인간을 만들었다. (바빌로니아 창세기)
*크눔 신이 나일강의 진흙으로 인간의 형체를 만들자 헤케트 여신이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집트 신화)
*프로메테우스가 흙을 반죽하여 신의 형상을 따서 인간을 만들자 아테나 여신이 코로 생명을 불어 넣었다. (그리스신화)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22)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생기를 그 코로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된지라. (구약 창세기) 


수메르인의 이상향과 그리스신화가 에덴신화의 원전이다 ‘에덴’이라는 말은 수메르어 ‘에딘’에서 기원하였다. 에덴동산이란 낙원에 대한 개념은 수메르의 이상향‘ 딜문’에서 왔다. 본래 에덴은 성서에서 말하듯이 지상낙원이 아니라, 초기 신화시대의 수메르의 신들 또는 신적 존재들이 먹을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끌려온 인간들이 노동하던 기름진 농경지였을 뿐이다. 실제 신들의 지상낙원은 딜문이었다. 구약 창세기에는 이 수메르의 신화가 그대로 흘러들어가 성서에서도 여호와 신이 아담을 정원지기라고 부르고 있다.

여호와 신-에블라왕국의 천신

창세기에 나오는 신은 왜 이름과 단·복수형이 다른가? 첫째, 창세기가 서로 다른 전승자료가 뒤섞여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사제전승에서는 엘로힘이 우주 전체의 절대신으로서 천지창조를 한 것으로 되어있다. 메소포타미아 창세신화의 딩기르(신)들이 수용된(모방)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둘째, 일신교인 유대교는 주변의 다신교와 대항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의 천사 개념을 수용해야만 했다. 유대민족이 가나안을 침략하기 전 그곳에는 풍요로운 농토가 있었고 선주농경민족인 가나안 사람들이 바알(주님)신을 믿고 있었다. 바알은 태양을 상징하는 절대신이었으며 친척 신이 많았기 때문에 태양신을 중심으로 하는 다신교가 되었다. 여호와 신이 바알신과 그와 합세한 친척신들에게 세가 밀리자 메소포타미아의 천사들을 수용하여 그들에 대항하려 하였다. 이 결과로 여호와 신과 천사들을 모두 ‘우리’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노아의 홍수-길가메쉬 서사시가 풀어준 비밀

아담의 10세손이자 라멕의 아들인 노아가 600세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 신은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고 홍수를 일으켜 인류는 물론 세상의 모든 생물까지 멸망시키기로 하였다. 1849년 아시리아의 고도 니네베의 유적에서 노아의 홍수설화의 원전이 되는 메소포타미아 홍수신화의 점토판 문서가 발견되었다. 그 내용이 판독되었을 때 기독교계는 엄청난 충격파에 흔들렸다.

메소포타미아의 홍수설화가 노아의 홍수설화의 원전이다 수메르의 에리두 창세기는 바빌로니아의 대홍수 신화로, 다시 길가메쉬 서사시로 이어지면서 구약성서의 편집자들에 의해 노아의 홍수설화로 각색된 것이다. 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몰살시키는 엘릴 신은 여호와 신으로, 대홍수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사람 우트나피시팀은 노아로, 7일 밤낮은 40일 밤낮으로, 방주는 니무쉬산 꼭대기에 머물렀다로, 홍수가 끝나고 육지가 나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까마귀를 날려 보내는 내용은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내용으로, 제물은 번개를 바치는 것으로 번안하였을 뿐이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실제로 있었던 대홍수 이야기가 노아시대의 홍수이야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노아의 홍수설화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히브리판인 것이다.

바벨탑-혼란의 시대

수메르의 언어분열 전승이 바벨탑 이야기의 원전이다 “지구상의 인간들은 원래는 한 민족이었으며 한가지 언어만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자신들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신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하늘에 닿을 놓은 탑을 쌓기 시작하면서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탑이 하늘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신이 있는 곳에서 몹시 강한 바람이 불어와 탑을 무너뜨렸다. 사람들은 그때까지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는데 신은 이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언어로 말을 하게 함으로써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벌을 내렸다. 그 결과 사람들의 언어가 달라지고 서로 다른 민족으로 나뉘어졌다.”(바벨탑 이전의 수메르 전승신화) 구약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이 건설되기 이전에 이미 바빌론에는 언어와 민족이 나눠지는 수메르 신화가 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약 창세기의 바벨탑 이야기는 히브리인들이 구약성서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수메르와 바빌론의 전승을 바벨탑 이야기로 바꾼 채 거의 그대로 창세기에 옮겨 실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시대-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아브라함 일족이 가나안으로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아브라함 일족이 고향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내용은 창세기에 있어서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신이 왜 아브라함을 선택하였는지, 왜 비옥한 고향 우르를 버려두고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였는지, 왜 아브라함은 한번도 접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여호와 신의 지시에 따랐는지 등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다.

신에게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신을 선택하였다 아브라함은 과연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인가? 여호와 신이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사라를 통해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가나안으로 이끌었다고 성서는 말한다. 그러나 그가 가나안에 당도하였을 때 그에게 닥친 현실은 정반대였다. 여호와 신은 그에게 약속한 가나안의 땅도 주지 못하였으며 사라를 통해 많은 자손을 얻게 하지도 못하였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신의 계시를 듣고 고향 우르를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스스로의 결정으로 가나안으로 떠났을 뿐이었다. 비옥한 우르에서 신봉하던 농경민족의 여러 신들은 황량하고 단조로운 사막지역에서 단하나의 유목민족의 신으로 대체된다. 그들의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그들의 기도는 더 간절해지고 그럴수록 여호와 신에 대한 믿음은 더 커지고 체계화된다. 여호와 신이 사막 유목민에게 알맞은 신으로 선택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아브라함이 신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유화적 표현으로 나타난다. 아브라함이 신에게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신을 선택한 것이다.

족장시대-아브라함·이삭·야곱

아브라함과 함께 우르에서 이주해 온 유목민의 무리는 가나안에 정착하여 부족을 형성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처 사라가 늦게까지 아이를 낳지 못하였듯이 이삭의 처 리브가(레베카) 역시 오랫동안 아이가 없다가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는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했으나이 위기를 안 레베카는 야곱을 자기의 친정으로 도망치게 한다. 야곱은 숙부 라반의 집에 가서 일하며 그 대가로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을 부인으로 맞이한다. 20년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새도록 신과 씨름을 하여 이기고 신에게서 이스라엘Israel (엘신과 싸워서 이긴 자)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나라 이름이지만 원래는 야곱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히브리의 쌍둥이 에서와 야곱 이야기의 원전이 그리스의 쌍둥이신화(아크리시오스와 프로이토스 신화)다. 쌍둥이가 모태에서부터 싸우는 대목, 왕권과장자권을 놓고 싸우는 대목, 차남의 도피행각, 귀향하여 계승하는 대목 등 두 신화의 공통점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또 에서와 야곱의 차자상속신화는 히브리 민족의 영토확장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론적 토대이자 민족이념교육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에서로 상징되는 장자의 개념은 가나안의 토착 원주민세력을, 야곱으로 상징되는 차자는 우르(오늘날의 이라크)에서 이주해 온 아브라함의 부족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이나 아랍권을 장자 에서로, 이스라엘을 차자 야곱으로 보는 것으로 대체된다.

족장 요셉

요셉 이야기는 구약성서 창세기의 4분이 1을 차지하는 긴 내용이다. 요셉은 아브라함의 증손이다.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는 4명의 부인과 열두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요셉은 두번째 부인 라헬의 소생으로 열한번째 아들이다. 야곱은 요셉을 특히 귀여워하여 그를 후계자로 삼고자 하였다. 그 때문에 형들이 시기하여 이미 앞서 말한 것처럼 유다가 중심이 되어 형제들이 그를 지나가는 애굽(이집트)상인에게 팔아버린다. 그런데 이집트의 두 형제 이야기와 그리스 벨레로폰 신화가 요셉 유혹 설화의 원전으로 알려져 있다. 두 형제 이야기와 비교하여 보면 등장인물만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형제 이야기】 젊고 성실한 동생 안푸-형수가 유혹-거절함-거짓으로 고함-곤경에 빠짐
【요셉 유혹 설화】 젊고 성실한 요셉-주인의 아내가 유혹-거절함-거짓으로 고함-감옥에 갇힘


출애굽기-기상변화가 몰고 온 전염병과 사회혼란

이스라엘 역사가들은 사료의 조사와 검증연구의 결과, 고대 이집트에 히브리인이 집단으로 살다가 탈출한 기록은 없다고 공식으로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출애굽기(이집트 탈출기)를 역사로 고집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컬하다. 신화를 신화가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직 깨이지 못한 고대인들의 사고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해내려 온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포기하고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무지의 상태로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아카드 왕 사르곤의 출생신화가 모세 출생신화의 원전이며, 함무라비 법전이 모세 십계명의 원전이다.

사사시대士師時代

구약성서에 의하면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인을 이끌고 가나안을 침공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390~1050년 경이다. 그들이 처음 점령한 곳은 예루살렘 북동쪽 24㎞에 위치한 ‘여리고’이다. 그곳은 요단강 계곡에 있는 성읍으로 땅이 비옥하여 농산물이 풍부하였다. 여리고 점령을 기점으로 여호수아는 가나안 일대를 정복하게 된다. 그들은 토착민족을 몰아낸 후 제사를 담당하는 레위 지파를 제외한 12지파가 정복한 땅을 나누어 갖는다. 그렇다면 진정 이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을 완전히 지배한 것일까? 사사시대士師時代는 족장지배에서 왕정이라는 강력한 통치체제로 옮겨가는 과도기로 대략 기원전 1390~1050년까지로 잡는다. 각 부족별로 느슨한 지파 동맹의 형태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왕국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각 지파 사이에 전승되어 온 사사이야기를 기원전 6세기 이후 여러 명의 저자에 의해 편집된 것이다.

히브리 왕국의 번영

이스라엘 12부족은 가나안에 터를 닦은 후 지속적인 팽창정책으로 주변민족들을 말살시켰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을 정복 목표로 삼고 토착 민족들을 계속 살육해 나갔다. 마침내 블레셋(팔레스타인)인들은 영토를 빼앗고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는 이스라엘 민족에 맞서 강력한 철제무기로 무장하고 우수한 전략을 펼쳐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이스라엘의 심장부를 공격하였다. 이스라엘 군대는 계약의 궤를 전쟁터로 운반하였다. 그들은 계약의 궤가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하였다는 전설을 사실로 믿는 우를 범하였다. 전지전능한 여호와 신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도 아무런 능력을 보여주지도 못하였다. 이스라엘 군대는 처참하게 전멸하였다. 계약의 궤를 지키던 선지자 엘리의 아들들은 모두 살육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는 뒤로 쓰러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계약의 궤는 블레셋(팔레스타인)인에게 노획되어 바알신전에 전리품으로 바쳐졌다.

이로써 약 200년간 존속되었던 이스라엘 12부족 동맹은 붕괴되었다. 그런 가운데 엘리의 뒤를 이어 선지자 사무엘이 등장하고,
그는 블레셋인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터져나온 백성들의 왕정 요구에 부응하여 베냐민 족속의 청년 사울Saul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앉히게 된다. 이어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 왕과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 왕의 시대가 이어지는데, 이스라엘의 전역에서 수세기 동안 행해져 온 유적지 발굴에서도 솔로몬 왕에 대한 성서의 기록을 뒷받침 할 어떠한 고고학적 발견도 없었다. 그들은 솔로몬이 건설하였다는 성과 성벽도 사실은 솔로몬의 시대 이전에 이미 지어진 것임을 밝혀냈다. 그들의 발굴로 다윗과 솔로몬 왕의 시대라고 하는 것도 다만 예루살렘이라는 작은 성읍에 한정된 지역왕조에 불과하였음을 밝혀냈다.

남북왕국의 멸망과 이산離散

기원전 1000년에서 950년경에 걸친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로 일컬어진다. 남쪽 유다왕국의 다윗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합병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이 이를 계승하였으나, 솔로몬 왕이 죽자 이 통일왕국은 70년 만에 다시 나뉘어졌다. 그 후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에 의해 멸망하였다. 남왕국 유다는 기원전 605년 신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제 1차 바빌로니아 유수幽囚(잡아 가둠)가 발생하여 만 명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그 후 바빌로니아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자 제2차 바빌로니아의 유수가 일어나고 대부분의 주민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제국의 왕 고레스(카루스2세)가 칼데아의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하면서 유대인은 다시 귀환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대인이 거주하던 팔레스티나를 점령하여 그리스의 한 주로 편입시켰다. 이후 이집트와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며 기원전 63년 로마가 쳐들어와 이때부터 유대민족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약 2000년에 걸쳐 유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리/김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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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과학, 인류의 근원적 물음들을 논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선택하라 선언한다.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 주인공은 결정해야 한다. 가상세계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깨어나서 현실세계로 갈 것인가. 당신은 이 책에서도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두 개의 알약은 바로 ‘과학’과 ‘영성’이다. 각 분야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우주와 생명, 마음, 신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인다. 영성 진영의 대표선수 디팩 초프라. 하버드 출신 의사이자 대체의학자로서 오늘날 전세계 뉴에이지 영성철학계의 수퍼스타이다. 이에 대항해 과학계를 대변해 나선 존재 레너드 믈로디노프. 스티븐 호킹과 함께 저술활동을 했던 물리학계의 석학이자 세계적 과학저술가이다. 영성과 과학이라는 평행선을 달리는 두 핵심주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파랗고 빠알간 알약들을 연속 콤보로 화려하게 제시한다. 생소한 물리학 용어, 매혹적인 이론 전개, 상대방의 급소를 질러대는 검투사의 칼날들. 피 튀기는 논리전쟁의 향연을 풀코스로 즐길 수 있는 기회!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어느 한 세계를 선택할 수도, 두 세계를 모두 포용할 수도 있다. 세계관의 전쟁일까? 관점을 뛰어넘는 진화일까?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기원을 놓고 벌이는 세기적 빅 매치에 당신을 초대한다.


전쟁: 서로의 관점


【디팩 초프라】 과학은 이미 오래전에 종교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신앙의 자리에 사실이 들어서고, 미신은 무릎을 꿇었다. 수천년 전에 세계 곳곳의 문화에서 부처, 예수, 노자 같은 깨우친 영적 스승들이 삶을 보는 깊이있는 시각들을 내놓았다. 고통과 싸움으로 점철된 일상세계 너머에 초월적인 영역이 자리한다고 그들은 가르쳤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종교는 세상의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전쟁과 고통, 다툼은 어떻게 해야 풀 수 있는가. 우리는 종교의 근원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 근원은 신이 아니라 바로 의식, 영성이다. ①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가 있다. ②이 비가시적인 실재는 우리 자신을 자각함으로서 알 수 있다. ③지능, 창조성, 조직력이 우주에 내재되어 있다. 오감이 미치는 범위 너머에 눈으로 볼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이 자리하며 그 잠재력을 풀어내는 열쇠는 바로 의식이다. 현자賢者들과 각자覺者들은 이렇게 선언했다. 안으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만물의 참된 근원, 곧 그대 자신을 자각하게 될 테니. 우리는 진리를 보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천년 전에 우리가 약속받았던 깊은 힘들을 일깨우게 될 것이다. 


【레너드 믈로디노프】 현대물리학으로 가능해진 모든 핵무기보다 종교의 이름으로 학살당한 이가 더 많았다. 십자군 전쟁부터 홀로코스트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선과 사랑의 도구만이 아니라 증오의 도구로도 쓰였던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영적 진화가 계속될수록, 진정한 종교심에 이르는 길은 삶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맹목적인 신앙을 통해 나 있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지식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통해 나 있다는 게 더욱 확실해질 것 같다.” 디팩의 말대로 진짜 쟁점은 앎이고 그것을 어떻게 얻느냐에 있다. 과학자들이 정밀한 객관적 측정과 정밀한 객관적 개념을 쓰는 데에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다. 물론 그들도 종종 직관과 주관적 느낌을 길잡이로 삼지만 검증이라는 또 다른 단계가 있어야 함을 인식한다. 과학은 관찰, 이론, 실험이 서로 고리를 이루면서 나아간다. 이론과 경험적 증거가 조화를 이룰 때까지 그 고리는 반복된다. 그러나 개념들을 정밀하게 정의하고 실험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이 방법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과학이 내놓는 답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과학을 공부하는 주된 이유는 크나큰 우주의 구도 속에 우리 삶이 어떤 식으로 들어맞는지 알고 싶어하는 충동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답들은 진리일 때만 믿음을 준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디팩이 말하는 아름다운 세계관을 생각하면서 리처드 파인먼이 한 말도 생각해 보라고. “첫째 원리는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극히 쉽게 속을 수 있습니다.”

우주

【레너드 믈로디노프】 은하계란 양자마당의 미시적 요동이 낳은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쉽게 생각하면 입자들이 쉬지 않고 부글부글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끓는 솥과 같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진공 요동이 기막힌 예측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우주가 무無에서 저절로 생겨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 모른다. 관찰 가능한 현상들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예측들을 내놓고 이를 시험해야 한다. 스티븐 호킹은 대중문화에서 최후의 현자로 간주되는 인물로 아인슈타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가 하는 말에는 과학의 무게 전체가 실린다. 2010년, 호킹의 선언은 전 세계의 뉴스가 되었다. “우주를 운행시키려고 신을 불러낼 필요는 없다.” 독실한 신자들의 세계에서는 과학을 신앙의 적으로 여길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그러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철학, 형이상학, 신비주의적 사변들, 증거의 구속을 받지 않는 사변들과는 달리 우주의 기원에 대한 과학이론은 관찰이라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그림이 우리의 근원을 신에게서 찾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은 결국 그 답을 내놓을 것이다. 

【디팩 초프라】 양자이론의 위대한 개척자 닐스 보어는 말했다. “우리가 실재한다고 부르는 모든 것은 실재한다고 여길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단한 물체만이 우주에서 실재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이들에게 이 말은 치명타이다. 입자가 비가시적인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과학적 진실은 영성의 입장에서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빅뱅이 일어나기 전 우주의 상태에는 모든 가능성이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고대 인도의 위대한 현자들은 “아함 브라마스미”를 발견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는 의미로 단순히 표현하면 “내가 우주다”라는 뜻이다. 즉 자연 어디에나 의식이 있다는 뜻과도 상통한다.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우주라는 마당에 담겨 있다면 우리는 의식이나 사람의 가치를 배재할 수 없다. 사랑 진리 자비심 희망 도덕 아름다움 그리고 신에게 귀속되었던 모든 가치를 기르는 보금자리가 바로 우주이기를 바란다. 인간에게 우주는 그렇게 의미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생명 

【레너드 믈로디노프】 우주에 어떠한 생명력이 있다는 믿음은 자연의 힘들로는 설명되지 못하는 특별한 자질이 생명에 깃들어 있다고 말하는 종교적 또는 영적 시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살아있다는 게 무슨 뜻일까? 생명이란 무엇일까? 디팩은 생명 있는 우주의 토대를 의식이라고 보고 접근한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생명 있는 것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것들이 지닌 질서와 그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우리가 질서 유지하기를 그친다면 우리들은 죽고 몹시 무질서한 상태로 되돌아간다. 슈뢰딩거는 생명을 보는 방식에 대해 명쾌한 견해를 서술했다. “생명에만 있는 특징이 무엇일까? 어느 순간에 이르면 물질 한 조각을 살아있다고 말할까? 어느 순간에 이르면 물질 조각이 움직이고 환경과 재료를 교환하는 등 계속 무슨 일을 하는 걸까? 평형이라는 비활성 상태로 빠르게 붕궤하는 일을 피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유기체를 몹시 불가사의하게 보이도록 한다.

【디팩 초프라】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다음 이야기를 주목해야 한다. “나는 우주에 대한 종교적 느낌이야말로 과학 연구에서 가장 힘 있고 가장 고귀한 동기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파울리를 비롯한 학자들은 과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뒤에 생명에 대해 과학보다 훨씬 폭 넓은 설명을 영성이 쥐어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존재의 본질이다. 본질은 가장 기초적인 것, 없애버릴 수 없는 것, 그러면서도 여전히 창조력을 가진 것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수십억년에 걸쳐서 우주는 창조능력을 이어왔다. 창조의 동력은 생명력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학자들은 그런 힘들을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생명력은 상상력에 더 가깝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뇌가 창조하면서 발산하는 열량을 잰다 해도 그것이 그의 상상력을 측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뇌에서 발생하는 열은 부수효과일 뿐 본질은 아니다. 그 힘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측정할 수도 없다. 유물론자들은 이에 동의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 기구에 기록되지 않는 힘들은 분명 존재한다. 욕망의 힘, 호기심의 힘, 사랑의 힘을 측정할 수 있는가?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창조성이 자리한다. 그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영성이다.

마음과 뇌

【레너드 믈로디노프】 뇌를 둘로 가르면 환자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만일 마음이 비물질적인 영역에 존재한다면 뇌들보(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섬유다발) 절단수술이 마음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마음이 오로지 물질적인 뇌에서만 생기는 것이라면 뇌를 둘로 갈랐을 때 마음 또한 둘로 나뉘어야 할 것이다. 신경학자 크리스토프 코흐가 바로 그런 사태에 대해 책을 썼다. 뇌를 둘로 가른 환자가 두 개의 마음을 나타내는 현상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마음이 뇌로 환원되지 않는다면 하나였던 마음이 두 개로 나뉘어질 이유가 없다. 마음의 기원이 뇌라는 물리적 실체 속에 있다는 사실은 생물학에서 거듭되어 입증돼왔다. 물론 마음의 기초가 뉴련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 떠오름 현상임을 입증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러나 날마다 다양한 증거가 나타나면서 아름다움, 사랑, 희망, 고통 같은 마음의 경험들이 물리적 뇌가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현재 보고 싶은 영상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외부 모니터에 원하는 영상을 제어하는 수준까지 발전한 상태이다. 멀고 먼 여정에 비하면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전 세계 수많은 곳에서 이뤄지는 연구와 관련 성과들은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팩 초프라】 악기 없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가? 물론 불가하다. 뇌가 없이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악기가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면 이건 사실인가? 터무니없을 것이다. 악기는 기계일 뿐 새 음악을 창조해 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피아노 안의 모차르트를 찾아내기 위해 악기를 현미경으로 검사한다고 해서 그 안에 창조성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뇌 연구자들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생각과 느낌의 기원을 찾아낸다고 뉴런의 분자구조를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악기에서 음악이 나오기 전에 마음이 먼저 음표를 적어야 한다. 뇌가 생각을 나타내기 전에 마음이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마음을 정했다’라고 말하지 ‘뇌를 정했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수행이 깊은 불교 승려들의 뇌 스캔 영상을 보면 일반인과 매우 다른 점을 보여준다. 정상인의 뇌에 비하면 승려들의 뇌는 감마파 구역의 진동수가 두배로 작동한다. 가장 큰 발견은 전전두엽피질(두뇌의 사령탑, 다른 높은 기능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자비심을 맡은 중추)의 일반적 활성이 대단히 강력하다는 것이다. 이는 자비에 대한 명상을 오랫동안 한 끝에 생긴 변화였다. 이 경우에는 뇌가 스스로를 바꿨다고 말하면 부정확한 표현이다. 먼저 그 승려들은 자비심을 일으킬 뜻을 품었고 그 다음에 오랫동안 자비에 대해 명상했고 마침내 뇌가 그것을 따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욕망이다. 티벳 승려의 예에서 보았듯이 의도는 뇌 기능을 스스로 새롭게 바꾼다. 뇌의 물질적 지형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욕망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신神

【레너드 믈로디노프】 인간은 치우침과 주관성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러한 난관을 피하기 위해 과학과 수학이라는 학문들이 개발한 방법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특히 결론에 이르는 방식, 증거가 정당할 때 결론을 바꿀 수 있는 열린 마음을 모두 알고 나서 우리는 그 학문들이 우리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신뢰할 수 있다는 확신을 느꼈다. 우리들은 늘 자신이 합리적이고 옳다고 가정한다. 언제나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에 대해 결정을 내리며 살아가지만 어떻게 해서 지금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자신이 객관적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객관성은 착각인 경우가 더 많다. 진실을 보자면 우리가 날마다 하는 분석들은 언제나 기존에 가진 믿음과 욕망에 좌우되고 있다. 뇌는 언제나 자각 수준 아래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기적이다’라고 생각하는 현상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설명 불가능했던 일들도 언젠가는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런 일들은 길고 긴 역사 내내 계속 이어져 왔다. 생각의 명료함과 이성 능력에서 거의 초인에 가까웠던 아인슈타인, 그의 영적 삶을 빚어낸 것은 바로 우주의 합리성이었다. “합리성을 이해함으로서 사람은 개인의 희망과 욕망의 족쇄로부터 원대한 해방을 이뤄낸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과학은 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종교적으로 영성화 하는 일에 이바지하는 듯 보인다.”

【디팩 초프라】 종교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 하나는 신에 이르는 길이 자기네 전매특허라고 주장한 것이다. 신성이 조직종교의 신을 의미하는 한 영적인 길이 본류가 될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위인들에게서 감화를 받아 마음을 넓힌 뒤에 예수 그리스도와 교감하게 하라. 그리고 우리 교회는 버리도록 하라.” 전통적인 신을 찾는 일을 그치기만 하면 그 자리에 다른 목표가 들어선다. 바로 초월이다. 초월이란 넘어감이다. 인도의 유명한 영적 스승 크리슈나무르티는 청중과 격렬한 논쟁을 벌일 것을 고집했다. 구루 또는 자칭 성자를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의식의 옮겨감을 이야기할 때 청중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질 못해서 당혹스러워 하곤 했다. 그는 잠시 강의를 멈추고 구름 낀 산꼭대기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순간이라도 여러분이 저 산을 실제로 볼 수 있다면 완전히 이해할 것입니다. 실재는 여러분에게서 모습을 숨겼으나 눈길 받기를 기다리며 천지사방 어디에나 있지요.”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지각하지 않는 한 영적 가르침은 허구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실제로 산을 볼 수 있을까? 윌리엄 제임스는 신을 찾는 수수께끼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우리 주위 사방에는 무한한 세계들이 자리하고 얇디얇은 장막들이 가르고 있을 뿐이다.” 장막들을 이루는 것은 막히고 위축된 의식, 다른 세계들을 이루는 것은 널리 뻗은 자유로운 의식이다. 영적인 길은 자각 위에 드리운 장막들을 걷어내는 길이며 그러려면 헌신이 필요하다. 자신의 자각 속으로 충분히 깊이 들어가면 침묵과 평화가 자리한 곳을 찾게 될 것이다. 초월은 여러분을 빛의 영역으로 데려다준다 스스로 찾아내라. 신이 아닌 실재를! (정리 / 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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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마음의 생태학


-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

삶의 원리로서 이성은 마음의 공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한국의 저명한 인문학자 김우창 교수가 깊은 마음의 구조에 대해 탐구했다. 문학, 철학, 경제학, 사회학, 수학, 생물학 등을 망라한 지식과 깊은 통찰을 통해‘ 이성과 마음’의 문제를 파헤쳤다. 그의 신작『 깊은 마음의 생태학』은 마음에서 작용하는 이성의 탄생과 진화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음이 없는 지식은 이데올로기가 되고 마음이 없는 의례는 권력의지로 바뀐다며,‘ 깊은 마음’이 보다 넓은 자연과 이웃과 세계와의 관계에서 이성을 성찰한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사유하는 근본주제는 현실이다. 동시에 그 현실을 분석하는 우리의‘ 이성과 마음’이다. 현실은 현실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이성과 마음에 담기어 나타난다. 인간이라는 존재론적 조건과 말과 글이라는 문명사적 형식이 인간의 모든 것을 이성과 마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중요한 이성과 마음의 문제를 그러나 오늘의 우리 지식인들은 이상하리만치 다루지 않았다. 서양은 말할 것도 없고, 예컨대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지식인의 최대 문제는 성리학이나 실학이나 줄곧 심학心學이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이성과 마음의 문제는, 비좁은 강단철학의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교과과목이거나 공리적 처세술과 실용적 심리치료의 한 방편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깊은 마음의 생태학』에서 ‘깊이’는 비유이면서 그 이상이다. ‘깊이’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과학기술과 정치·경제가 지나치게 삶과 세계의 표면만을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간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인간의 이익 그리고 나의 이익에 맞게 세계를 왜곡하고 조종하려는 오늘의 문명이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 깊이’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깊이’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은‘ 인간중심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이 책은 이러한‘ 깊이’를 통한‘ 이성과 마음’의 근본적인 성찰로써 인문과학의 핵심과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인간중심주의(모든 자기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인문학, 즉 생태인문학을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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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HAN이 미래다!


한사상
김상일 지음 | 상생출판 | 2014년 3월 | 367쪽 | 25,000원

지난 1980년대는 우리가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한 각성을 시작한 시간대였다. 을유년 해방 이후의 혼란기, 경인년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으로 나라가 존망이 위기에 선 시기에 가장 중요한 화두는 생존이었다. 이후 재건의 시간대인 1960-1970년대 고도 산업화시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서구 일변도의 사상적 편향을 겪어야 했다. 어느 정도 경제적인 기반을 이루게 된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정체성, 역사, 민족주의에 대한 각성, 한국사상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꽉 막히거나 공격적인 민족주의가 아닌 우리 사상의 특수성과 함께 세계적인 보편성, 그와 함께 우리 역사의 참 모습을 되찾으려는 시도들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그 흐름들 속에서 오늘 소개하는 김상일 교수의 『사상』 등이 발간되었다.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른 지금, 새롭게 출간된 『사상』은 지금까지의 오류를 바로잡고 좀 더 쉽게 우리의 참된 시원역사와 고유사상을 밝혀주면서,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겪는 지금의 문제에 대한 원인과 해답을 제시해 줄 보물 같은 저서이다. 그는 머리말에서 “한은 여기서 우리 한민족의 멋과 힘과 꿈과 사랑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이 한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서 이 한이 강했을 때는 나라도 강했고 한이 약해졌을 때는 나라도 약했었다.”고 역설하고 있다.

책은 어떤 구성과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이 책은 총 3개의 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역사 속의 ‘한사상’에서는 수메르문명과 우리 한국문화의 관계를 역사 속의 ‘한사상’으로 엮은 것으로, 인류문명의 기원과 한의 문명이 같이한다는 점을 밝히려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수메르문명의 시원을 찾는 작업을 통해서 분명하게 전하고 있는 사실은 수메르-한국-아메리칸 인디언으로 연결되는 인류문명의 맥이 선명하게 밝혀 세워지지 않는 한 절대로 어느 학문도 신학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여기서는 문명과 문명 간의 유기적 관계성, 그리고 세계문명의 시원이 어디인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인류 초고대문명인 수메르인의 언어가 바로 우리의 언어와 가지는 친연성에 주목하면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의 사관은 민족주의 사관이라 해도 좋으며, 한의 사관이 지향하는 목표는 종교 간의 화해, 국제질서와 평화, 남성과 여성의 양극화 극복,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조화 등으로 차축시대1) 이래로 심화되어 온 대립과 갈등의 양극화 간격을 좁히고, 그것을 초월하여 어디에도 매임이 없는 자유인 상을 성취하는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제2부 ‘한철학’적 신학에서는 ‘한’의 맥락에서 기독교를 재조명한 것이다. 특히 개인주의적이고 민족과 역사의식이 없는 무례한 기독교를 불가적인 개념인 ‘소승적 기독교’라고 하고, 기독교는 ‘대승적’ 차원에서 앞으로 내다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이 부분은 평소 지은이가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하니 그 현장성에 주목해 볼 만하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그동안 숨겨졌던 ‘한사상’에서 나타나는 인격신 ‘하나님’을 재발견한 장본인을 기독교로 보고 있다(기독교를 제외하고는 유교나 불교에서는 인격신 신개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사상을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에는 기독교와 한사상의 관계가 일단은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기독교와 한국문화 사이가 그렇게 상극이 된 원인을 기독교를 전파한 인간들의 문제로 보고 있다. 즉 오리엔탈리즘의 화신으로 인종차별주의자들인 서양 선교사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들 것 외에는 다 미개하고 없어져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과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그들은 분쟁의 씨앗을 지니고 있어 늘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 언어로 푸는 여러 신학적 철학적 개념들과 민족종교와 ‘한사상’과의 관계를 서술한 부분은 우리의 시야를 좀 더 넓고 깊게 열어준다.

제3부 삶 속의 ‘한사상’은 우리 주변에 가까운 자료들로 평이하게 쓰여 있다. 한철학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은 이는 이 부분을 먼저 읽는 게 좋다는 지은이의 추천이 있을 정도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까운 우리들 실제 생활 속에 나타난 한사상을 응용한 부분으로 우리 문화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우리 문화, 생활 그 자체가 한류임을 알게 된다. 우리의 땅, 언어, 시간관념, 멋, 맛, 음악, 의복 문화 등 한사상이 아닌 게 없음을 알게 되면서 노老석학의 혜안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 중 ‘한의 꼴’이란 부분에서는 왜 우리들이 꼬이는 꼴(직선이 아닌 곡선, 더 나아가 나선의 꼴)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으며 우리 한복바지를 예로 들고 있다. 이 모습은 흡사 수학의 ‘뫼비우스 고리’로 그 의미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위상수학에서 다루는 뫼비우스 고리는 2차원적인 평면이 아니라 3차원적인 입체의 원리라고 한다. 즉 ‘꼬임’은 2차원의 천으로 3차원의 인체가 들어갈 수 있게 한 것으로, 서양식 양복은 2차원의 평면을 겹으로 마주 붙인 것에 불과하여 기거활동에 불편하다고 한다. 반면 3차원의 우리 한복 바지는 3차원의 인체가 그대로 들어가 있어 아무런 불편을 못 느낀다고 한다. 이런 꼬임의 미학은 현대물리학과 생물학에 나오는 소립자의 구조나 DNA구조도 나선형이고 은하계 역시 나선형의 꼴이라는 점에서 이는 적어도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터득한 지혜라 말하고 있다.

또한 ‘한과 한恨’을 서술한 부분은 평소 우리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지은이는 한恨이 착한 마음씨와 관계없이 그에 상응하는 행복이 따라오지 않을 때에 생기는 수동적인 의미를 지닌다면, 원寃은 인생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타인의 의지와 마찰을 빚어내어, 그 타인의 의지에 나의 의지가 무참히 짓밟힐 때 생기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서 증산 상제님의 ‘해원’의 가르침을 적시하고 있다. 즉 맺힌 한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풀어주어야 즉 해원시켜주어야 진정한 우주적 그리고 사회적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이 맺힌 자는 ‘두고 보자’는 무서운 선언을 마음속에 내리고 보복의 대상을 찾아 “대대손손 씨를 남기지 말라”고 칼을 갈게 된다는 부분은 척신의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맺힌 한을 하늘의 하나님을 쳐다보고 푸는 것이 기도이고 예배라고 하면서 “맺힌 ‘한’은 하늘과 땅, 하늘과 인간이 맞닿을 때에 풀려진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될 때 ‘한’은 풀어진다. 바로 여기에 한사상의 한이 ‘한恨’과 만나지게 된다. ‘한恨’이 맺혀진 것이라면 한은 푸는 것이다. 여기서 맺혀지고 풀려진다 함은 결코 시간상의 전후가 아니다. 한을 품었다 함은 이미 하늘을 품은 것이요 하늘은 동시적으로 이미 ‘한’을 풀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 하늘과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상태 바로 그것이다.”(321쪽)라는 탁견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다 부록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에서 보이는 한사상의 모습도 담고 있어 지은이가 얼마나 성실하게 한사상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알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 되는 한사상으로 홍익인간 하는 인간중심의 사상과 원융 회통하는 통일사상이 가장 인상 깊었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한사상의 시작과 완성에는 『환단고기』와 증산 상제님의 진리에 힘입은 바가 크지 않을까 한다(책 본문 곳곳에 이런 가르침들이 녹아 있다). 

한사상의 개념과 내용은 무엇인가

그럼 한사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 더 부연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한사상의 ‘한’은 ‘한국’, ‘한겨레’, ‘한글’, ‘하느님’, ‘한얼’ 할 때의 한으로서(韓, 桓, 汗, 恨, 咸, 丸 등으로 표기 가능) 국가, 민족, 사상, 생활 전반에 걸쳐 우리의 정체성正體性Identity를 규정할 때 쓰인 말이다. 한사상의 철학적 측면2)에서 ‘한’의 중요한 의미로는 1.하나(one), 2.많음(Many), 3.같음(Same), 4.가운데(Middle), 5.얼마, 대략(About) 등이 있고, 이 밖에도 무려 22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 중 One/Many의 문제는 ‘일자一者’와 ‘다자多者’의 문제로 유교, 불교, 서양철학에서 풀려고 하는 숙원의 문제이다. 이는 보편과 특수, 신과 세계의 문제, 불교 삼론종에서 나오는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의 문제로 동서철학 공통의 해결 과제였다.3) 이는 철학의 문제를 떠나 교육, 신학, 경영이론, 수학 등 어디에나 부딪히는 문제인데 한사상은 이를 서양사상처럼 One/Many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오거나, 동양철학처럼 Neither/nor의 논리로 중용Middle의 길을 택한 게 아니라, 이마저도 파괴시키고 비결정적인 ‘어떤, 대략About’으로 넘어서는 데에 한사상의 극치가 있다고 한다. 이는 이미 전체가 완숙하여 파열됨으로써 개체 속에 전체가, 전체 속에 개체가 자유자재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동경대전』에 나오는 기연불연其然不然과 같은 사상이다. 그렇다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전체가 매 상황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사상은 한민족의 구성원들에게 삶의 의미, 가치의 표준, 희망, 꿈을 담고 또한 그것을 주기 위한 사상이다. 그러면서 철학을 역사학에서 분리시키지 않으면서 종래의 과학적 객관적이라고 하는 서구의 실증주의사관을 비판하고 있다. 즉 실증주의 사학자들이 말하는 과학적이라는 의미는 고전 뉴턴 물리학적 개념과 데카르트적 세계관으로서의 ‘과학적’이라는 점인데, 이미 뉴턴 물리학은 아인슈타인과 현대 양자물리학에 의해서 부정되어 버렸다.(1927년 코펜하겐 선언)4) 데카르트적 세계관도 현재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상 흐름이나 동양사상으로 본다면 그 졸렬함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는 현재 드러난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에서도 역사란 역사를 서술하는 주관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 수 있는데, 아직도 실증에만 매달리는 국내 역사학자들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역사사료와 사건을 배우고 연구한 후에 사관史觀이 생기는 법인데, 이를 뒤집어 나중에는 마치 자기 사관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오만함을 보인다. 그래서 『환단고기』, 『규원사화』를 비롯한 우리 고유의 선가 계통의 역사자료를 현 국사학계에서는 일언지하에 신빙성 없는 자료들로 취급해 버린다. 그렇다면 이들 기록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왜 기록했는지, 이들 기록들 사이에는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 현재 우리 역사 영역 속에 넣을 순 없어도 우리 역사 영역을 넘어선, 또 다른 역사를 말하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질문을 가능케 한다. 현재도 그들은 여기에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지은이는 『환단고기』에 나타나는 언어와 사상체계, 종교양식, 정치제도 같은 것을 차츰 발굴되어지고 있는 동아시아 고고학의 연구결과(홍산문명 등)에 맞추어 보고, 나아가 근동아시아(수메르 문명 등)에까지 확장하며 더 나아가 아메리카인디언에까지 한국학의 범위권에 넣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시도 없이 쪼그라진 식민사관5)을 가지고 한국 상고사를 함부로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한사상’은 역사학을 하는 태도에 있어서 이 작은 지구 위에 사는 인종들의 차별이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고, 그 이유가 한 우주질서 속에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근거로 한국고대사와 수메르문명의 관계성, 고고학적인 발굴 결과와 함께 우리들 자신이야말로 가장 값진 실증 자료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 역사 연구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며 우리의 잠재의식 원형Archetype 속에 이미 환단시대(단군성조의 옛 조선 이전의 환국과 배달시대)에 형성된 원형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언어와 행동관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이에 대해서는 제3부 삶 속의 ‘한사상’에 다양한 주제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문화의 상한선은 엄청나게 올라가는데, 역사 상한선은 소위 한사군, 기자조선으로 잘라버리면 서로 평행선이 길고 짧은 결과가 생기지 않겠는가 하며 무당은 엄연하게 존재하는데, 단군시대가 없다고 하는 것은 문화와 역사가 길고 짧아 절름발이 걸음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라며 비판하고 있다. 나와 우리를 하나로 보게 해주며 우리 됨을 확고하게 해주는, 그럼으로써 나와 너 우리가 하나 되게(HAN) 해주는 이 책을 열매 맺는 풍성한 가을에 열린 생각으로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정리 / 이해영(객원기자) 


오래된 미래의 철학

김상일 지음 |상생출판 | 2014년 3월 | 270쪽 | 22,000원

한민족의 고유한 철학적 개념인 ‘한’에 대하여 『천부경』과 『삼일신고』의 핵심사상을 중심으로 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입장에서 분석하였다. 한철학의 유래와 어원부터 역사적 배경, 철학적 문제성 및 ‘한’의 공간 이해에 대하여 한민족 소의경전所依經典인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통해 재조명하였다. 

지은이는 한국사상을 비이원론적非二元論的, 비시원적非始原的인 것이라 정의하고, 이를 한국전통 속에 널리 알려져 있는 ‘한’ 개념에 적용시켜 저술하였다. 책은 크게 ‘한’의 짓Style과 꼴Shape로 나누어 한철학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짓이라 함은 한사상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났는가를 고찰하는 것이고, 꼴은 눈에 보이는 모양으로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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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 야스퍼스가 인류문명이 BCE 2~8세기 사이에 한꺼번에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한 시대로, 공자 석가 노자 소크라테스 등 인류 정신문명사에 공헌을 한 대부분 인물들이 활동한 시대

2) 지은이에 따르면 “한 철학은 비이원론적, 비실체론적, 비시원론적 철학으로 이를 ‘부루도’ 혹은 ‘풍류도’라고 부른다. 이 사상은 민족경전인 「천부경」과 「삼일신고」의 주해라고 할 수 있다. 한사상은 바로 이 한 철학의 범위를 넓게 이론과 실천의 응용에 더 관심을 가진 것의 명칭이다.”

3) 인간과 자연세계의 본체론적인 구조와 변화하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 또는 이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가 무엇이냐의 문제이다. 즉 변화하는 본체가 무엇이며, 그 본체가 어떻게 움직여서 현상계를 형성하는가 하는 우주변화의 현실과 그 본질을 연구하는 원리이다. 서양철학은 이를 인간, 자연, 신 등 그 대상이 자주 바뀌면서 맹목적이며 무법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동석 선생의 불후의 명작인 『우주변화의 원리』 일독을 권한다.

4) 코펜하겐 선언은 1920년대 보어N. Bohr의 상보성 이론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이론에 근거하여 “관찰자의 관찰행위 자체가 관찰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선언으로, 이 말은 자연과학에서도 관찰자의 주관적인 사고방식, 의지, 감정, 신앙에 따라 객관적 관찰결과가 변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5) 식민사관에 대해서 만권당에서 의미 있는 저작 2가지가 나왔다. 이덕일 저 『우리안의 식민사관: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와 황순종 저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있는 식민사관 비판』이다. 식민사관 및 살아있는 권력으로 현 역사학계를 지배하는 식민사관의 후예들에 관심 있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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