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영상녹취]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이덕일)
조선총독부산하 쓰다소키치란 인물이있습니다.
한국의 소위 말하는 주류학계라는 사람들의 주장이 교과서를 보면 이게 뭔가
동북공정에 대응하라고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어놨더니 거기에 소속된 사람들이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글을 버젓이 올려 놓고 있는 겁니다.
반갑습니다. 전 오늘 이자리에서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이란 테마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테마에는 네가지 소주제가 들어갑니다. 큰 줄기로 따지면 조선후기 노론이라는 당파에서 만든 역사관과 그 다음에 일제시대때 일본사람이 만든 식민사관이 아직까지 우리 역사속에서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
네 가지 소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는데 하나는 한사군 문제, 또 하나는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부인하는 삼국사기 초기기록불신론이라는 문제, 또 하나는 조선후기 노론사관이라는 문제와 마지막으로 독립운동사가 특히 그 중에서도 한일무장투쟁사가 우리 역사 속에서 왜 말살되었는가 하는 네가지 주제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국어교과서 한국근대사의 개척자하면 누가 나오느냐하면 이인지 딱 나옵니다. 그러고 혈의 누 그러죠 혈의 누, 벌써 언어 자체가 한자로 써면 혈누하면 맞죠 피눈물 하면 맞는데 피와 눈물 일본식으로 쓴거예요 이인직이 대한제국 망할때 뭐했냐 하면 이완용의 비서였습니다. 그래서 이 이인직이 당시 조선통감부 외상인 고마끼라는 인물이 자기의 유학시절의 스승인데 이 인물하고 막후 접촉을 해요
막후 접촉을 해서 일본이 우리나라 멸망시키면 우리 대우는 어떻게 해줄 것이냐 이완용의 밀사로 밤중에 몰래가서 막후 접촉을 합니다.
이 혈의 누라는 근대우리나라 근대소설의 효시라는 내용이 뭔지 아세요 청일전쟁때 청나라 군사가 조선처녀를 겁탈하려고 하니까 일본군이 구해줬다 이 이야기예요
근데 이걸 갖다가 해방이후 근대 신문학의 효시네 창시자네 이런식으로 가르쳐왔지 않습니까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세요?
이 나라 망하고 나서 일본이 76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에게 작위와 훈장을 주는데 그 중에 당파 분석할 수 있는 인물이 64명쯤 됩니다. 그 중에 북인이 2명이고 소론이 6명이고 나머지 56명이 전부다 노론이에요 집권당인 노른이 나라 팔아먹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시대에서도 온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단은 워낙 시대착오적인 집단이다 보니까 돈은 많은 데 산업사회로 전환하는데는 실패를 합니다. 대신에 돈은 많으니까 유학들은 갔어요 그 결과 학문 권력을 상당히 장악하게 되는데 우리가 이인직 같은 사람을 갖다가 아주 선각자인것 처럼 가르친 구조
그 다음에 여러분 아주옛날 이야기 같지만 한사군 들어보셨죠 한사군 다 초등학교때부터 배웠습니다. 저도 달달 외웠어요 한사군이 뭡니까?
우리 민족 최조의 국가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거기에 세웠다는 식민통치기구아닙니까? 초등학교때 한사군을 달달외웠습니다. 중요한게 문제 두개 나와요 하나는 뭐냐 하면 다음중 한사군이 아닌 것은 하죠? 그러면 낙랑 임둔 진번 현도 중에 하나빼고 부여를 넣던지 넣으면 딱 그렇게 맞춰야 합니다.
또 하나는 다음 중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의 위치는 평양 해주 나오면 어디라고 해야 되요 평양 딱 써 놔야 정답이 되는거죠
우리가 한번 이부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설혹 한사군이 평양을 중심으로한 한반도 북부에 있다라고 칩시다. 그거를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합니까 지금으로 하면 조선총독부 이름 외우기와 하나도 틀릴바 없는 거예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라는 이 논리가 당시에 일차사료에 비춰보면 맞느냐 이걸 검증해야 됩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인식되었느냐 두가지 문제점이 있어요 하나는 조선시대 사대주의가 강해지면서 기자조선이 강해집니다. 사대주의자들이 나의 정체성을 버리고 우리는 중국과 같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자조선을 강조하죠
이거는 조직적으로 진행된 건 아니고 이게 조직적으로 진행된 것은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 산하 쓰다 소끼치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학계 태두라는 두계 이병도 박사의 와세다 유학시절 스승이기도 한데 이 쓰다 소키치가 만든 쓰다 소키치가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이론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한반도 북부에는 한반도를 그려 놓으면 한반도북부에는 한사군이 있고한반도 남부에는 임나 일본부가 있다 이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은 위로나 아래로나 식민지로 시작했다 지금 일본의 식민지가 된게 전혀 이상한 논리가 아니다 이 논리죠 그러면서 한사군을 다 한반도 내에 묶어놨습니다. 이렇게 쓰다 소키치가 주장한게 지금으로부터 90년 100년 쯤되었죠 한사군이 설치된것은 기원전 108년이에요 그러면 쓰다소키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조사해보려면 한사군이 설치되었을 때나 그때와 가까운 시기에 편찬된 역사서들을 한사군의 위치를 어디에 써놨느냐 한번 조사해 봐야죠?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한국사 그대로 숨긴 진실에 있으니까 자세하게 보도록 하고 몇 가지 논리만 얘기하면 낙랑군 진번군 아래에 여러 속현들이 있습니다. 낙랑군은 낙랑군이 지금으로 치면 도 단위고 그 아래 현은 군단위죠 20여개의 속현이 있는데 그 속현의 위치를 쓰면 전부다 요동에 있다 무슨 현 요동에 있다에요 언제부터 요동이 한반도 내에들어 왔습니까 한서가 되었던 사기가 되었던 고대 중국사의 한사군의 위치를 보면 전부다 요동이라고 되어 있어요 요동이 언제부터 한반도 내로 들어와서 한반도 내로 끌어들였는데 아까 내가 말씀드린 석조 이상룡이라는 분이 만주에서 역사서 써놓은 것이 있습니다. 거기보면 한사군은 만주에 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단재 신채호 선생도 그렇게 주장했고
일제시대에 두 주장이 있습니다. 한사군은 만주에 서쪽에 있었다고 주장한 단재신채호 백암박은식 석조이상룡 아까 성계이시영 이런 분들은 그렇게 주장합니다. 일제시대의 조선사편수회의 인물들은 다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얼만전에 뭘 발표했냐 하면 만리장성이 압록강까지 있었다 이렇게 발표했죠 조금 더 있으면 황해도까지 내려옵니다 내려오게 되어있어요
지금 한국의 소위말하는 주류가 주장하는 것은 만리장성이 황해도 수안까지 걸쳐 있었다 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지금 중국에서 발행하고 있는 공식지도집은 황해도 수안까지 끌어다 놨어요 지금 그렇게 발표하면 우리가 격렬하게 반발하고 이 또 역사 전쟁이 벌어질것 같으니까 일단은 압록강까지 끌고 온거예요 중국사람들 다 플랜이 있는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여기에 맞서라고 만든 기관이 고구려연구재단이고 그 후신이 동북아 역사재단입니다. 여러분 오늘 집에 가셔서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 한번 들어가보세요 거기가보면 올바른 역사란 항목이 있어요 거기에 한균관계 항복이 있는데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다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 버젓이 써놓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학자 개인의 소신이면 그럴 수 있죠 그러나 그런 사람은 동북아역사재단 같은데서 근무하면 안되는 거죠
동북아역사재단은 바로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침략에 맞서라고 연간 수백억씩 지원하는 국가기관 아닙니까
그러면 거기에 속한 사람은 일제식민지가 주장했던 한사군은 한반대 내에 있었다라는 주장과 원래 독립운동가들이 주장했던 한사군은 만주에 걸쳐 있었다라는 두가지 주장이 있으면 어느 쪽을 택해가지고 서술을 해야 됩니까
제가 왜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책 제목을 지었는지 이해가 되시죠 이 문제가 간단한게 아닌게 중국에서 주장하는 건 동북공정에서 주장하는 건 한강 이북은 중국사라는 것이고 그 근거가 한사군이예요
근데 그걸 갖다가 거기에 대응하라고 우리가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어놨더니 거기에 소속된 사람이 그것도 올바른 역사입니다. 그것도 올바른 역사예요?
그러니 이제 우리가 지금 해방된지 몇년 되었습니까 올해로서 이렇게 64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해방이 되었지만 정신은 해방이 안된거예요 역사관에 관한한 일제시대 그대로인 겁니다.
또하나가 일제식민사관을 그대로 갖고 있는 또하나가 삼국사기초기록불신론이예요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다 가짜다라는 겁니다. 교과서에 뭐라고 써놓은 줄 아세요 국사교과서 보면 이게 뭔가 제가 묻습니다. 국사교과서를 보고서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자부심을 느껴봤다던지 아니면 나의 정체성을 뚜렷이 해봤다던지 나의 역사관을 다시 세워봤다던지 여러분 역사관이란게 뭡니까 어린시절부터 역사책으로 교육을 해야 되는거예요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을 때 사육신의 편에 설꺼냐 정인지 신숙주편에 설꺼냐 교육을 해야 되는 겁니다.
현실적인 이득을 찾아서 정인지 신숙주편에 설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길을 택하면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그 길이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택해야 되는 길이냐 이 고민을 역사교육을 통해서 사례를 통해서 해줘야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교과서에 그런 가치판단이 하나라도 들어 있습니까?
오히려 이런 사관을 가진 사람이 쓰다보니까 항의를 많이 받았죠 그러니까 반대되는 이야기도 조금 써 줍니다. 이건 외울수 밖에 없게 서술되어있어요 역사서라는 것은 일관된 사관으로 서술되어야 하는데 만약에 제가 국사 교과서를 서술한다 그걸 학생들이 배운다 학생들이 너무 좋아 할 것입니다. 제 스스로 책 찾아 보고 이렇게 될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단 골치아프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 근본 뿌리가 우리가 해방이 되었으면 인적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만 중요한게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일본이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기위해서 만든 이런 식민사관을 한번 무엇이 있나 종합적으로 재검토를 했어야 합니다. 해가지고 일제식민사관이라고 다 틀린 것은 아니죠 일부분 맞는 것은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다 배척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되는데 그런 과정을 한번도 안거친 채 지금까지 온 결과 동북아 역사재단 홈페이지에서 올바른역사라는 항목에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글을 버젓이 올려 놓고 있는 겁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불신론은 뭐냐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다 가짜라 이 이야기예요 김부식이 다 창작했다 이겁니다. 여러분 삼국사기 한번 읽어보세요 어떻게 되어 있씁니까? 사실상 천년체죠 어느왕 몇년에 무슨일이 있었고 그걸 김부식이라는 사람이 어느왕 몇년에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수십명의 왕의 사적을 다 조작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이 삼국사기 초기기록불신론은 고대사학계의 정설입니다. 여기에 딴지를 걸고 딴 이야기 하면 학위받기 어려워요 근데 1970년대에 공주에서 우연히 왕릉이 하나 발견되었죠 무슨왕릉입니까 무령왕릉이죠 그 왕릉하나가지고 공주국립박물관을 세운거예요 그런데 그 왕릉이 무령왕 것인지 어떻게 알았냐 그 왕릉이 주석이 나왔습니다. 주석을 삼국사기와 대조를 해보니까 무령왕인데 그 주석을 조사해봤더니 무령왕이 세상 떠난 해가 532년5월7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532년 5월 똑같아요
삼국사기 초기기록이 조작되었다 일고의 가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설입니다. 이것도 누가 만들었냐하면 두계이병도의 스승인 쓰다 소키치가 만든 겁니다. 쓰다 소키치가 일본책을 보면 일본서기 임나일본부가 나옵니다. 그런데 임나일본부를 입증하기 위해서 삼국사기를 보니 임나일본부가 안나오고 삼국사기에는 신라나 백제가 강력한 고대국가였다 이렇게 나오죠 그러니까 양론에 모순이 생긴 겁니다. 삼국사기가 그리고 있는 고대의 한국의 모습과 일본사가 그리고 있는 고대의 한국의 모습이 틀려요 그러면 어떤 문제가 있느냐 하면 일본과 한국에 현해탄 뱃길이 있죠 현해탄 뱃길은 험한 뱃길입니다. 그래서 이 현해탄 뱃길은 가을부터 봄까지는 배가 못 다녀요 그러면 임나일본부는 언제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가을에 민족운동이 일어나면 봄까지 자력으로 버텨야 한다는 얘기에요 버티기 대단히 어렵겠죠? 그러니가 쓰다 소키치가 구상한게 삼국사기초기기록은 가짜로 몰자 그러니까 쓰다소키치가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다 조작되었다 김부식이 조작한 것이다. 라고 만든 겁니다.
여러분 국사교과서에 한때 신채호의 주장이 실렸었죠 아주 중요한 겁니다. 신채호의 주장이 뭐냐 하면 일본식민사학자들은 삼국사기는 예를 들어서 백제사나 신라사를 백제는 4세기에 건국되었고 신라는 5세기에 건국되었다 이 이야기예요
일본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건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신라나 백제는 다 비씨1세기 아닙니까 근데 그게 아니라 에이디 4세기 5세기에 건국되었고 김부식이 다 조작했다는 주장인데 이 단재 신채호는 무엇을 주장했느냐 하면 고구려의 건국연대에 관해서 고구려의 건국연대가 700년인데 실제로는 고구려 건국연대가 900년 갈 수 있었다. 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신라사를 김부식이 조작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구려는 900년 갔는데 이것이 200년이 문제제기를 한거에요 그런데 이걸 교과서에서 슬그머니 삽입을 해서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가 의심스럽다 라는 것을 중고생들에게 전파시킨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정사와 일본정사와 역사문제가 자꾸 정쟁이 되니까 두 나라 역사학자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역사를 연구해보자 이렇게 만든 기구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라는 기구인데 연간 동안 한번은 한국 한번은 일본 모여서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하면 백제사를 예를 들면 김부식은 백제를 온조가 건국했다고 하죠 이걸 일제의 식민사관은 백제는 근초고왕때 건국되었다해서 4세기로 끌어 내렸죠 이걸 이병도가 백제는 고리왕때 건국되었다해서 100여년 끌어 올렸습니다. 100여년 끌어 올린 것도 전부다 식민사학의 아류예요
그런데 여러분 사용하는 국사보면 백제는 고리왕때 건국했다고 되어 있어요 고리왕은 3세기때 인물이죠 그런데 한일역사공동연구회에 참여해가지고 연구결과발표보고서 중에 뭐가 있냐하면 백제가 고리왕때 건국되었다고 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고리왕을 높이기 위해서 조작한 것이다 이시기의 백제의 발전정도는 다 낮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결국 주장하는 것은 백제는 근초고왕 때 건국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병도도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이 분보다도 더 뛰어 올라서 쓰다소키치를 주장한 것을 그대로 써 놨어요 그래서 백제에 건국시기를 4세기로 다시 끌어내렸습니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 역사학자가 국민의 세금을 받아가지고 두나라를 왔다갔다 하면서 한 역사연구결과라는 겁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죠 그런데 이 국가가 언제 건국했느냐 이부분은 문헌사와 고고학계의 유물로 판별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고고학계의 유물로 국가의 성립근거를 찾게 되면 몇가지가 나오죠 왕성은 축조되었느냐 또는 철제무기가 등장을 하느냐 또는 유적을 본 떠서보면 계급분화가 일어나느냐 몇가지 등등 있는데 이 사람들이 2005년도에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발표를 하면서 서울의 풍납토성을 갖다가 3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써놨어요 풍납토성은 이미 2000년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시료 10이상을 갖다가 방사성동위원소 측정을 했습니다. 방사선 동위원소 서너개만 시료측정을 해도 결과가 일치하면 맞는 것으로 치는데 열개 이상을 했어요
거기에 이미 비씨 1,2세기에 만들어졌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안믿겠다 데이타주시오해도 안믿겠다. 저 경주에 여러 유적에서는 한강 유역에도 철제무기가 많이 나오고 낙동강유역에도 철제무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경주 유역에는 계급분화흔적이 유적에 많이 나와요 그러면 우리는 삼국사기라는 역사기록 문헌기록이 있고 그 다음에 철제유물이다 풍납토성이다 여러 유적들이 있습니다. 고고학 유물이 있어요 그러면우리는 신라와 백제가 비씨로 건국하면 누가 반박할 사람 있습니까 해외에서 주장해도 반박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 이야기는 뭐냐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해방이후에 잘못된 식민사관을 전혀 검토하지도 않고 내려온 결과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역사관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받아왔던 역사는 조선사편수회 것을 그대로 받은 거예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보면 원삼국실이란게 있습니다. 삼국실이면 삼국실이고 아니면 아니지 원삼국실이 뭐냐 이게 에이디 3세기때까지의 유물을 갖다 놓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부여에서 철제유물이 나왔다 하면 백제껏 하면간단하죠 경주에서 에이디 1세기 유물이 나오면 신라때 유물하면 간단하죠 근데 이 시기에 백제 신라 없었다는 거예요 있어봐야 조그만 동네국가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원삼국실이란 것을 고안해서 에이디 1세기에서 3세기 유물을 때려 넣는 겁니다.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에 그대로 있어요
그런데 쓰다 소키치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다 불신하다 보니까 여기에 뭔가 대체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대체한게 뭐냐 하면 중국기록의 삼국지위지동이기록에 삼한을 한반도 남부에다 갖다 놓은 겁니다. 갖다 놨는데 삼한의 내용은 뭐냐 한반도 남부에 삼한이 있었다 진한은 54개 소국 진한 마한은 각각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다. 꼬마국가라 이거예요 그래서 한반도 남부에는 도합 78개의 꼬마국가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임나일본부가 존재할 수있다 이겁니다.
그런데 소다쓰키치가 이런 주장을 할 때, 중국 청나라때 황제의 명으로 만주원류고라는 책을 만들어요 만주의 원류는 뭐냐 우리의 만주족의 뿌리는 뭐냐 만주의 전 역사에 대해서 당시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서 만든 책인데 이 책에서 삼한이 어디라고 나오냐면 삼한이 바로 요동반도라고 나옵니다.
근데 우리는 항상 역사선택할 때는 우리에게 항상 불리한 것을 취사선택을 해요 이쪽 주류사학계라고 하는 분들이 이 한반도 여기에 한사군이 있었다 주장하는 이유가 그 쪽에서 중국계유물이 많이 나오지 않느냐 이런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일제시대때 일본사람들이 저 지역에서 나온 평양 황해도 일대에서 유적 무덤을 약 70기 정도를 발굴을 합니다. 그런데 해방이후에 북한에서 약 3000기정도를 발굴을 해요 그러면 북한의 정치체제가 좋고 나쁘고 둘째치더라도 북한에서 3000개의 무덤을 발굴을 해서 연구보고서를 내지 않습니까 그러면 정치체제와는 별개로 그 연구보고서에 대해서는 우리가 진지하게 검토를 해야죠 한 예로 중국계 중국 한나라 무덤이라는게 나무곽 무덤이라는게 있어요 목각묘 여기에 대해서 북한에서는 뭐라고 했냐 하면 이게 비씨 3세기 전에 만들어져서 비씨 1세기때 없어진 무덤이다 한사군이 설치되기 한사군은 비씨 108년에 설치되었다고 했죠 한사군이 설치되기 수백년전에 생겨서 한사군이 설치될 때 없어진 무덤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북한에서 이렇게 주장하면 나름대로 반박하려면 근거를 제시해야죠 아무 근거제시 안하고 무조건 못믿겠다 북한 주장을 무조건틀렸다 일제식민사학주장이 무조건 맞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겁니다. 근데 당시 이 중국계 무덤 중에 명문이 나오는게 있어요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가 나오는게 몇가지 있는데 거기 하나같이 전부다 중국에서 망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럼 그건 딱 떼서 따로 해석하죠
이 지역에 있다는 중국계 무덤이 발견되는 것은 뭐냐 하면 예를 들어 미천왕때 미천왕이 잡아온 포로가 만명 플러스 알파입니다. 고구려란 나라는 끊임없이 서쪽으로 진출해서 옛 고조선의 강역을 회복하는 것이 고구려의 국시에요 진출해서 많은 포교를 잡아 오는 것이죠 그러면 포로들을 어떻하느냐 포로가 도망갈 우려가 있으니까 중국에서 가장 먼 한반도에 집당수용을 하는 겁니다. 집당수용을 해서 중국계 유물이 나오는거지 여기를 한사군이 지배를 해서 나오는게 아니거든
아까 말씀드린 한일역사공동보고서에 뭐라고 되어있느냐 하면 고구려와 백제가 전쟁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전쟁하는 이유가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우수한 문명 문화 소유한 중국인들의 문화와 문명을 소유하기 위해 전쟁을 했다 아주 기발한논리로 써놨습니다.
그러면 우수한 문명을 지닌 이쪽사람들이 문명은 우수한데 군사력이 미약해서 고구려 백제가 내꺼다 내꺼다 하면서 싸우도록 방치를 했다는 이야기인지 논리가 기본 초등학생이 봐도 안맞을 논리를 가지고 자꾸 써 놓는거예요 그러면서 이지역은 고구려 지역 아닙니까 이 지역의 우수한 문명 문화를 가진사람들을 차지하기 위해전쟁을 했으면 이지역이 고구려땅이니까 백제가 쳐들어가야죠 근데 기록보면 전부가 고구려가 쳐들어가는겁니다. 고구려가 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했다는거예요 보다 간단한 방법은 뭡니까 전쟁하려면 돈 아주많이 들죠 이 사람들 이주시키면 간단한데 국경지역에 갖다 놓고 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서 전쟁을 했다 이런 논리를 버젓이 써 놓고 국가교과서 개정할 때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 써 놓는 겁니다. 이렇게 하다보니까 해방이후에 일본사람이 만들어 놓은 역사관 이걸 한번도 정리를 못한 상태에서 해방이후에 분단이 되고 냉전체제가 되죠
좌파계열의 역사학자들은 월북을 합니다. 남아있던 민족역사학자들은 6.25때 납북이 되요 공백기가 됩니다. 남아 있는 것은 식민사학자들이 다 차지해서 전부 한국사학계의 뿌리가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독립운동사를 연구를 못하게 해요
저도 역사학에 들어갔더니 현대사는 연구하면 안된다 이겁니다. 왜 안되냐 하니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안된다 그당시에는 그런가보다 했듯이 갓들어간 학부학생이 알겠습니까 그 말도 얼핏들으면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현대사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가고 싶어하는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어느 대학의 국사학과에서는 독립운동사 연구하면 일체 학위가 안나왔어요 연구자체를 못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그 당시만 하더라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생존했습니다. 이금기가 깨진게 80년대인데 80년되니까 독립운동가들 다 돌아가셨어요 이제는 뭐 청취할라고 해봐야 청취할 사람도 없습니다. 국가 교과서에 한일무장투쟁사 안나오는 것 아니죠 일부 나오죠 원칙이 있어요 무슨 원칙이 있느냐 아주 대단히 유명한 사건 다 아는 알려진 사건은 써준다 교과서에 뭐 나옵니까 청산리 봉오동 이런 건 나오죠 워낙 유명하니까
그런데 독립운동사를 서술하는 원칙은 전세계 우선해서 쓰는 원칙이 있습니다. 가장 우선해서 쓰는 것이 뭐냐 무장투쟁사를 쓰는 거예요 그 다음에 동포여 각성하라 애국계몽계열을 써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애국계몽은 써줬죠
그러다 보니까 새로운 교과서가 재정되었는데 만주지역에 여기에 참의부가 있고 정의부가 있고 신민부가 있습니다. 무장부대들이죠 전성기때는 수천명 나중에서는 수백명의 무장부대들인데 참의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중앙참의부입니다. 대한민국 육군 중앙 만주에 주둔하는 부대다 근데 참의부에서 나중에 1920년경에 나중에 참의장을 했던 김승학이란 문이 천신만고 끝에 무기를 사와가지고 일본기록으로 78회에 달하는 국내진군작전이 벌어집니다. 다 압록강을 건너가지고 국내에 일제에 잠입해서 일제 파출소 뭐 이런 일제소관들을 타격한게 78회예요
이런 말씀 처음 들어보죠 그 다음에 참의부에서 뭘하느냐 일본의 사이토 총독이 압록강을 거슬러 옵니다. 참의부에서 당시 참의장 백광현 아래에 이의중이란 인물이 압록강에 매복하고 있다가 배 두척에 수백발의 탄환을 쏟아 붇죠 황급하게 도망을 갑니다. 이런 사실도 처음 들어보시죠 이의중이란 분은 나중에 사형당해요 체포당해가지고 이런 이야기는 하나도 안 가르치고 교과서는 참의부가 있었다 참의부는 임시정부산하에 있었다 이렇게 딱 써놨습니다.
그 반면에 일제시대에 대해선 뭐라고 써 놨느냐 하면 일제시대에 주택을 써 놓으면서 1920년대에는 주택이 좋아졌고 1930년대에는 문화주택이란 것이 생겨서 문화주택이 뭐냐 하면 이층양옥이고 집안에는 응접실이 따로 있고 아이들 방이 따로 있고 거실이 따로 있어서 개인의 공간이 생겨났다 1940년대에는 서민들의 주택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서 했다는 이야기들
여러분 1930년대에 이층에 거실에 아이들 방 따로 갖고 살던 사람이 그 당시 대한민국에 몇 명되겠어요? 조선총독부에 아주 가까운 소수층만이 살았겠죠 그런데 독립운동사는 참의부산하 신민부가 있었다 학생들이 골치아프게 되어 있어요 뭐 했는지도 모르고 이름 외워야되니까 여기에 소속되었던 정영희라는 분은 국내 내려와서 국내 진공작전펼쳐서 파출소 습격해서 전투를 했는데 나중에 체포되어 감옥생활하죠 이런 사례를 가르치면 외우지말라고 해도 잘 외우지 않겠습니까?
신민부는 유명한 김좌진장군이 주도하던 항일무장부대고 이런 거 하나도 안가르키면서 1920년대에는 주택에다 니스를 칠하고 뭐 칠하고 너무 친절해요 우리가 1920년대에 주택에 니스칠한 것까지 외워야됩니까?
그 다음에 1940년대에 조선총독부에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서 연간주택을 만들었다 이따위것을 지금 학생들이 학교에서 그걸 배워야돼요?
조선사편수회에서만든 그 역사관을 써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해방이후에 이만달러까지 성장했지만 여기에서 정체된 이유가 있는거예요 이걸 뛰어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이 뚜렷해야 됩니다.
근데 우리 교과서와 역사관에 관한 우리의 정체성은 뭡니까 식민지로 시작했고 항상 굴종당했고 우리 어릴 때 배운게 우리민족은 백의민족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고 남의 나라 침략 안했다 이것도 다 일제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사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해방운동하면 안된다 해방무장투쟁하면 안된다
그런데 실제 보면 고구려 영양왕이 말갈장수 만명을 거느리고 수나라가 갓 통일제국을 건설했는데 아주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수나라가 그러고 있을 때 고구려 영양왕이 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수나라를 침략합니다. 약한 나라 먼저 침략하면 몰라도 당시 고구려가 당시 최강대국인 한나라 공격한 기록이 무수하게 많이 나와요
북경까지 태원까지 공격한 후로 무수히 나옵니다 교과서에 다 빼버리고 지금 이 이야기를 왜 말씀드리느냐
우리가 동북공정과 일제식민사관이 똑같아요 왜 똑같을 수 밖에 없느냐 둘다 침략사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침략사관은 뭡니까 역사를 빙자해서 나중에는 정치가 들어오고 군사가 들어오는 거예요
일본이 그렇게 했듯이 동북공정은 100년 전 일제의 식민사관과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우리는 내부에서 이런바 일부역사학자들이 여기에 동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이 역사를 해체를 해야 동북아에 진정한 평화가 옵니다.
역사를 침략의 도구로 바라보지 말고 우리역사가 이렇게 한사군이 여기 있지않고 여기 있었다 중국하고 전쟁하자 그런 이야기들이 아니예요
역사를 과거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사용했듯이 침략의 도구로 바라보지 말아라 상호 인정하자 상호 평등을 인정하자 호혜평화를 지키자 그래서 일본이 진정한 아시아의 지도국가가 못되는 것이 역사관에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중국도 아시아의 지도자가 되기 어려운 이유가 침략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이 양쪽을 해체해야 동북아에 진정한 평화가 온다
일본도 하기 힘들고 중국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일본도 극우세력만 눈에 띄니까 그렇지 일본은 과거에 전쟁에서 많은 반성하고 풀뿌리 조직이 많이 있습니다. 그 쪽과 연계를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역사관을 바로 잡고 우리의 2세를 교육시키고 우리의 주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우리의 역사관을 통한 바른 철학을 갖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세계인의 일환일 될 때 그런역사관으로 우리나라가 거듭날때 대한민국이 진정한 일류국가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동의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