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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식민사관 실체, 이덕일


식민주의 사관(=조선총독부 관점)과 민족주의 사관(=독립 운동가 관점)의 전쟁
귀기울여 꼭 들어볼만합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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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대한의 상징입니다


태극기는
우리 국민들과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해왔습니다. 격동의 근·현대사, 그 역사의 현장에는 늘 태극기가 있었습니다. 기미년 3월 1일,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토해내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때 조선의 백성들은 깊이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꺼내들었습니다. 8.15해방의 기쁨을 만끽할 때 우리들의 손에 손에는 태극기가 있었습니다. 6.25동란 때 공산군의 손아귀에서 수도 서울을 탈환했을 때도 연도에서 국군을 환영해준 것 역시 태극기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2년 6월의 월드컵, 우리는 ‘대~한민국’ 구호와 함께 장엄한 태극기의 물결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청소년들이 나라의 상징, 태극기를 제대로 못 그린다고 합니다. 태극기에 담긴 의미와 철학을 잘 모른다고 합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우리 대통령이 잘못 그려진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일도 있었습니다(2008년 8월 10일 언론 보도). 혹시 여러분들도 태극기에 대해 ‘태극은 음양이요, 가장자리 네 곳에 있는 것은 건곤감리이다’ 정도로 단편적인 사실만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태극기의 태극太極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건곤감리乾坤坎離를 포함한 팔괘八卦를 처음 그으신 분은 누구일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 국민들은 학교에서 태극기에 대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 배달국 5대 환웅의 막내 아들인 태호 복희씨께서 삼신상제님께 하도河圖를 받아내려 인류 문명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복희씨는 하도의 이치를 바탕으로 하여 팔괘를 그려 우주의 변화 원리를 처음으로 밝혀주었습니다. 팔괘는 천지가 둥글어가는 법칙을 밝힌 태고시절의 상징언어요 부호언어입니다. 팔괘에서 64괘가 나왔습니다. 64괘 중에서 바탕이 되는 것이 건곤감리의 4괘입니다. 태극기에 있는 건곤감리 4괘는 복희팔괘의 배치와 똑같습니다. 역철학의 효시인 복희팔괘를 나라의 상징 국기에 담았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배달국의 정통 후예이자 동방 문화의 주인공임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건곤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고 감리는 건곤의 대행자로 달과 태양을 상징합니다. 동방의 백성들에게 건곤감리와 천지일월은 관념속의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곧 천지는 우주를 주재하시는 삼신상제님의 분신이었고 일월은 상제님의 아들인 천자天子(天帝之子)의 상징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천지일월 곧 우주를 나라의 상징, 국기에 담았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천지의 자식인 천손天孫 민족이요, 인류 역사의 천자국임을 표방하였습니다. 

한반도 주변 4대강국의 국기들도 나름대로 그 의미가 깊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깊이와 철학에서 전혀 태극기와 비교가 되지 못합니다. 한눈에 봐도 그들의 국기는 태양과 별 등으로 그 의미가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디자인의 관점에서도 우리의 태극기처럼 균형미를 갖춘 국기를 찾기가 힘듭니다.

태극기는 우주를 품고 있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상징입니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산에서 나무하는 초동樵童들 정도면 ‘복희씨가 처음으로 팔괘를 그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태극기의 원제작자인 복희씨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에서는 ‘천하 제일묘’라는 커다란 사당을 지어놓고 복희씨를 인문시조人文始祖로 높이 받들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려 혼빠진 민족으로 전락한 우리의 현 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역사광복, 이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민족 제 1의 민족과제입니다. 이와 함께 미래의 주역인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태극기의 유래와 그 철학에 대해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 역시 우리의 시급한 교육과제입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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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문화 헌장, 염표문念標文을 아십니까?

교육법 제1조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1949년 12월 31일 법률 제86호로 제정, 공포


환국으로부터 전수받은 홍익인간의 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바로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입니다. 홍익인간 사상은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 애민주의愛民主義에 기반한 세계주의世界主義입니다. 홍익인간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해방 후에는 우리나라의 교육법 1조에 그대로 수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단군 할아버지의 건국이념으로 알고 있는 홍익인간은 사실 환국에서부터 이어져 온 사상이었습니다. 배달국을 건국한 환웅천왕이 마지막 7대 환인으로부터 천부인天符印을 전수받고 동방으로 문명개척의 장도長途에 오를 때 홍익인간 정신을 통치이념으로 전수받았습니다. 이에 신시개천 후 환웅께서는 백성들이 마음에 새기고 삶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글로, 염표문念標文 16자를 내려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삼신께서 참마음을 내려 주셔서[一神降衷]사람의 본성은 본래 신의 광명에 통해 있으니[性通光明] 삼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려 깨우쳐서[在世理化] 천지광명의 뜻과 대이상을 성취하는 홍익인간의 길을 갈지어다[弘益人間]’입니다. 여기에 옛 조선의 11대 도해단군께서 천지인 삼위일체의 정신을 덧붙여 완성하였습니다. 이후 염표문은 동방의 백성들에게 구도求道의 목표이자 생활 신조로써 아침 저녁으로 읽혀져 왔습니다.

11세 도해 단군의 염표문

염표문에서는 먼저 하늘 아버지의 덕성과 가르침을 이야기합니다.

‘하늘은 아득하고 고요함으로 광대하니 하늘의 도는 두루 미치어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참됨으로 만물을 하나 되게 함[眞一]이니라’.‘ 땅은 하늘의 기운을 모아서 성대하니 땅의 도는 하늘의 도를 본받아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쉼 없이 길러 만물을 하나 되게 함[勤一]이니라’.

천지의 아들, 딸인 인간에 대해서는
‘사람은 지혜와 능력이 있어 위대하니 사람의 도는 천지의 도를 선택하여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서로 협력하여 태일의 세계[協一]를 만드는 데 있느니라’
라고 노래합니다. 인생은 선택에 의해 그 오묘함이 더해지고[擇圓] 삶의 가치는 세상과 인류에게 보탬이 되었을 때 [協一] 빛나는 법입니다.

염표문은 단순히 하늘과 땅에 대한 찬사讚辭를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 땅의 덕성과 그 가르침은 인간이 궁극으로 닮아가고 본받아야 할 도덕道德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진실이 아닌 거짓의 삶을 살거나, 진리를 거역하고 게으른 삶을 사는 것은 천지부모님의 큰 뜻을 저버리는 패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염표문은 천부경의 완성

삼신상제님의 계시록이자 인류 최초의 경전 천부경의 천·지·인 사상이 염표문에서 실천강령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염표문은 9천년 한민족의 역사심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신교문화 헌장입니다.

한민족은 삼신하느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내려 역사의 서막을 연 종주민족입니다. 씨 뿌린 자가 가을에 열매를 거두는 법입니다. 상제님의 뜻을 받들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민족은 이 지구상에서 우리 한민족이 유일합니다. 우주의 가을개벽기를 살고 있는 이 시대, 홍익인간은 다른 말로 인류구원입니다. 인류 문명의 최종 결실인 참동학 증산도에 와서 홍익인간은 개벽상황에서 사람을 살린다는‘ 상생相生’사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인류 구원으로서 홍익인간, 이것은 바로 9천년 전부터 전수되어 내려온 한민족의 민족사명이자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목표입니다.

인성교육과 가정교육의 지표

요즘 학교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학교교육과 궤를 같이 하는 가정교육 역시 동반 실종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 무엇보다 콘텐츠의 부재不在가 얘기되고 있습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지금이야말로 옛것을 시대상황에 맞게 새롭게 재창조하는 정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염표문은 이 시대의 가장 좋은 인성교육 자료이자 가정교육의 교재가 될 수 있습니다. 염표문은 무엇보다 우리가 숨쉬고 발 디디며 살아가는 큰 터전, 천지부모의 뜻과 덕성을 가르쳐줍니다. 나아가 인간의 본래 가치와 참다운 삶의 지표를 일깨워줍니다. 온 가족이 염표문을 함께 읽으며 가정교육의 첫 시작을 활짝 열어봅시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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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유래, 하도와 낙서

요즘 도서관圖書館이 지역사회의 문화 중심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책을 열람하고 대출받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강연, 발표 등의 문화행사와 학술모임들이 도서관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도서관의 도 자는 그림 도圖자이고, 서 자는 글 서書자입니다. 곧 그림과 글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도서관이라는 말의 유래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하도·낙서에서 유래한 도서관

도서관의 도서圖書란 말은 하도·낙서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하도河圖의 ‘도圖’ 자와 낙서洛書의 ‘서書’ 자를 합쳐 도서圖書라고 하였습니다. 원래 도서관은 하도와 낙서를 보관하는 곳이었습니다. 고대 왕실에서 소중히 보관했던 물건들 중에서 가장 귀했던 물건이 바로 하도와 낙서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주나라 성왕成王이 죽자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그 때 임금이 쓰던 물건들을 함께 넣었고 그 중에 하나가 하도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도는 임금의 장례에 쓰일 만큼 중요하고 귀중한 물건이었습니다. 왜 옛 사람들은 하도와 낙서를 그토록 소중히 여긴 것일까요? 

하도·낙서는 배달·조선 때 나온 천강서天降書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 배달국의 태호복희씨가 천하天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비친 그림을 보고 하도를 그렸습니다. 복희씨는 천부경天符經을 읽고 또 읽어 천부경에 나오는 1에서 10까지 수의 정신에 완전히 통했기에 하늘에서 하도를 받아내릴 수 있었습니다. 복희씨는 하도를 바탕으로 하여 팔괘八卦를 그렸고, 후대에 팔괘에서 주역의 64괘가 만들어졌습니다. 동양의 음양오행 문화의 근원에 하도가 있습니다. 하도는 자연의 변화 질서에 대한 최초의 완벽한 깨달음으로 ‘인류 문명의 출발점이자 근원’이 됩니다. 컴퓨터를 비롯한 오늘날 디지털 문명의 바탕이 되는 이진법(0과 1) 역시 하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4,200년 전 하나라의 우禹 임금이 9년 홍수를 다스리던 치수사업을 하던 중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새겨진 점을 보고 낙서를 그렸습니다. 하도와는 달리 낙서에 글 서書자를 쓴 것은 그림과 함께 홍범구주를 설명하는 65자의 글자가 함께 전해져 왔기 때문입니다. 이 낙서에 얽힌 비밀을 풀게 되면 동방 상고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임금이 낙서를 받아내렸고 이 낙서를 바탕으로 해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북아 상고역사의 진실을 전하는 『환단고기』에서는 전혀 다른 역사 기록이 나옵니다. 홍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망국의 위기에 빠진 순임금의 우虞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고조선의 단군왕검께서 태자 부루를 도산에 파견하여 제후들을 소집하였습니다. 이 때 부루 태자는 순임금의 신하 사공司空 우禹에게 ‘오행치수지법’과 ‘홍범구주’가 담긴 금간옥첩金竿玉牒을 전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禹임금은 홍수를 해결하게 되었고 그 공덕으로 하夏 왕조를 개창하였습니다(『환단고기』 「단군세기」, 「태백일사」).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중국의 사서에서는 우임금이 치수사업에 전념한 나머지 꿈에 창수사자倉水使者가 비법을 전수하여 홍수를 해결한 것으로 기록하였습니다(「오월춘추」). 단군조선의 실체를 노출하게 되면 변방의 제후에 불과했던 그들의 위상이 드러나게 되기에 엄연한 역사 사실을 꿈속 이야기로 바꿔치기 해버렸습니다. 

하도와 낙서는 우주 변화의 암호 해독판

하도와 낙서는 ‘우주 변화의 암호 해독판’으로서, 신의 가르침을 자연수로 표현한 ‘진리의 원 뿌리요 원형’입니다. 하도가 체體, 상常, 정靜이라면 낙서는 용用, 변變, 동動에 해당됩니다. 하도가 상생의 세상이 이루어진 ‘후천의 이상향’을 나타낸다면 낙서는 후천을 향해서 가는 ‘선천의 상극 현실’을 그려줍니다.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수많은 장서들, 그 어마어마한 숫자만큼 인류 문명은 발전했고 인간의 지혜는 성숙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하도, 낙서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오늘의 현대 문명이 근본을 잃어버리고 지엽에 치우쳐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하도와 낙서는 그 자체가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역사를 실증하는 역사증거이면서 동방 신교 우주관의 정수를 간직한 인류의 원형문화입니다. 하도, 낙서가 도서관의 정중앙에 걸리고 각 학교의 교실에도 하도, 낙서가 게시되는 역사광복의 그날을 다 같이 만들어봅시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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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 해주 오吳씨


우리나라 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86년 성종 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277성으로 나와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는 250성으로 조사되었고 1960년 조사에서는 258성이었다. 가장 최근의 조사인 2000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286개의 성과 4179개의 본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중에서 해주 오씨는 성씨 별 인구 순위에서 422,735명으로 안동 김씨에 이어 19위로 조사됐다. 

해주 오씨의 기원

도래인 오첨 해주 오씨와 그에서 분파된 오씨 대부분이 오첨吳瞻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오첨은 중국으로부터 신라 지증왕 원년(500년)에 신라로 들어와 해남 땅에 이르렀는데 당시 첨사僉使 이상보가 재화와 보물을 빼앗아 숨겼다. 후에 그 사실이 들통나 외국사람이 경내에 들어온 것을 보고하지 않은 죄로 첨사 이상보는 목을 베이고 오첨은 신라에 머무르게 하였다고 한다. 뒤에 왕명으로 함양 김종지金宗之의 딸과 혼인하여 2남 1녀를 낳고 함양에 정착하였다. 오첨은 22년 동안 살다가 태봉의 궁예弓裔 때 후한後漢의 왕이 당唐나라 사람을 쇄환刷還하여 돌아가게 되었을 때 큰 아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돌아간다. 이 때 둘째 아들 응膺이 너무 어려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우리나라에 남게 되었다. 이후 오응의 12대손 광우光佑가 중국에 들어갔는데, 그의 현손 연총延寵이 문종 때 다시 고려에 건너와 정착했다. 그래서 오연총은 오씨의 중시조가 된다.

중국 오씨의 기원 중국 오씨의 시조는 주태왕周太王 고공단보의 장남인 태백泰伯이라고 한다. 고공단보에게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장자가 태백泰伯, 차자가 중옹仲雍이고 막내가 계력季歷이었다. 계력이 아들 창昌을 낳으니 이분이 후일後日 주문왕周文王이다. 태왕은 창昌이 성덕聖德이 있음을 알고 전위傳位하려하나 태백과 중옹이 있어 말을 못하였더니 태백이 부친의 뜻을 알고 아우 중옹과 함께 멀리 장강長江(양자강)을 건너 형만荊巒에 살았으니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오현吳縣이다. 태백이 머리를 기르고 문신을 하여 지역의 풍속을 바꾸고 자호自號를 구오句吳라고 하였는데 그곳 사람들이 그를 의인義人이라 하여 따르며 군장으로 옹립하였다. 그 지역 이름도 호를 따라 구오가 되었다. 태백에게는 후사後嗣가 없어 동생 중옹이 대를 이었다. 주나라는 계력의 손자 무왕이 상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그 때 주무왕은 중옹의 증손자 주장周章이 구오 지역을 다스리고 있음을 알고 그를 오국吳國에 봉하고 태백을 오백吳伯으로 추봉追封하였다. 이 때부터 오나라는 주나라의 제후국이 되었다. 오국시대吳國時代는 희씨姬氏로 고소姑蘇에 도읍하였으니 그 고소姑蘇는 지금의 소주蘇州이다. 그 후 BC 473년 월왕 구천에게 멸망되니 25대 759년이며 그 자손들이 국호로서 성씨를 삼았다고 한다[吳後爲越所滅子孫國號爲姓氏]. 부차 왕의 손자 루양鏤羊이 위후衛候에게서 오의 사성賜姓을 받았다하여 득성시조가 되었다는 설과 루양의 손자 오기吳起에게서부터 오씨를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중국에는 오나라뿐 아니라 초나라에도 오씨가 있는 등, 3가지 계통의 오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중화 오씨 대종회에서는 태백을 득성시조로 중옹을 대를 이은 시조로 받들고 있다. 해주 오씨 대동종회에 따르면 태백의 25세손이 오기★이고, 오기의 45세손이 오첨이라고 한다.

★오기는 전국시대 초기 위衛나라 사람으로 대략 기원전 440년에 태어나 기원전 38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찍이 노魯·위魏·초楚에서 벼슬하면서 많은 공을 세우고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손자와 함께 유명한 군사 전략가이다.

성씨의 변천과정

우리나라 오씨는 「조선씨족통보」에 210본까지 기록되어 있으나 「동국만성보」에는 해주海州·보성寶城·동복同福·고창高敞·나주羅州·함양咸陽·군위軍威·낙안樂安·금성錦城·장흥長興·함평咸平 등을 비롯하여 20본이 전한다. 오늘날 오씨는 해주오씨, 보성오씨, 동복오씨의 3본이 전체 오씨 인구(706,900명)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오씨대동보吳氏大同譜』에 의하면 울산·낙안·고창·함평·나주·평해는 해주오씨에서, 군위는 동복오씨에서, 장흥·두원·화순·함양은 보성오씨에서 분적했다고 한다. 해주오씨에는 두 파가 있다. 하나는 신라 지증왕 때 도래한 오첨을 도시조로 삼는 향파鄕派이고 또 하나는 고려 성종 때 중국에서 건너 온 오인유를 시조로 삼는 경파京派이다. 

해주 오씨의 향파 해주오씨의 시조 오현보吳賢輔는 오씨吳氏의 도시조都始祖인 오첨의 24세손이자, 오씨 중시조인 문양공 오연총의 6세손으로 오수권吳守權의 아들이다. 첨의 11세손 다련군 오희吳禧가 나주에 살며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금성백錦城伯 차남은 수양백首陽伯 삼남은 천령백天領伯으로 봉해졌고 딸 장화왕후壯和王后는 고려 태조의 왕후로서 혜종의 어머니이다. 오첨의 14세손 오광우吳光佑가 족질 우경과 980년에 송나라에 들어가 성도임앙(현 사천성 내)에 살았는데 그의 현손인 오연총吳延寵이 문종 때 다시 고려에 건너와 정착했다. 오연총은 윤관과 함께 부원수로 북변의 여진을 토벌하였으며, 이부, 예부, 병부상서를 역임하였다. 오연총의 5세손인 오수권吳守權은 오현보吳賢輔, 오현좌吳賢佐, 오현필吳賢弼이라는 세 아들을 두었다. 이들 삼형제는 고려를 침입해 온 거란군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각각 해주군海州君, 동복군同福君,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져, 해주오씨, 동복오씨, 보성오씨의 시조가 되었다. 해주군 현보는 1199년에 낭장郎將으로 명주민란을 진압하여 공을 세웠다. 그뒤 상장군에 올랐으며 1224년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참지정사(종2품)로 졸卒하셨다.

해주 오씨 경파 중국 송나라의 학사로 이름이 높았던 오인유吳仁裕가 시조이다. 성종成宗은 고려로 건너온 그가 중국의 제도를 잘 알고 있음을 알고 특별히 진급시켜 군기감과 예부의 일을 맡겼다. 그은 성종7년(1001)에 임금에게 아뢰어 오묘五廟와 사직社稷, 그리고 다음해에는 태묘太廟와 국자감國子監(국립대학)을 세워서 새로운 문화와 국민교화에 힘썼다. 해주에 정착하였기에 후손들이 본관을 해주로 삼았다. 해주는 고구려 때는 내미홀內米忽이라 칭하였고 신라 때는 폭지瀑池라 고쳤다. 대대로 내미홀, 지성池城, 장지長池, 서해西海, 안서安西, 수양首陽으로도 불리웠다. 오인유의 7세 오연총吳延寵이 고려 예종 때 윤관尹瓘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오인유의 후손은 7세를 전후로 20여개의 파로 나뉘었다. 8세 오반吳潘의 후손은 찬성공파贊成公派, 9세 오중수吳仲守의 후손은 사복시정공파司僕侍正公派, 9세 오희吳僖의 후손은 양정공파陽亭公派, 9세 오처권吳處權의 후손은 용강공파龍岡公派, 9세 오생운吳生韻의 후손은 생원공파生員公派를 이루었다. 이외에도 묘제공파墓齊公派, 지군사공파知郡事公派, 사복시랑공파司僕侍郞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사인공파舍人公派,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장춘공파長春公派, 해성부원군파海城府院君派, 판도정랑공파版圖正郞公派, 징사공파徵士公派로 분파하였다. 그 이후 14세손 대에서 다시 여러 파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첨이 오씨의 도시조라는 것에 대해선 고증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오첨과 오인유와는 어떤 관계인지 역사적 문헌이 불확실해 고증하기 힘들다. 현재까지 인유를 시조로 하는 해주 오씨와 현보를 시조로 하는 해주 오씨는 뿌리도 시조도 족보도 다르게 쓰고 있어 별개의 계통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주요 인물과 세거지 해주오씨는 인조반정을 고비로 중앙정계에 진출, 기라성같은 명현을 배출하면서 명문의 위치를 굳혔다. 특히 오정방吳定邦의 정무공파貞武公派와 오윤겸吳允謙의 추탄파楸灘派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오정방은 인유의 14세손으로 1583년(선조 16) 무과에 장원급제하자 이이李珥가 인견引見하고 참으로 영재를 얻었다고 칭찬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흥지방에서 의병 수천인과 힘을 합쳐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 부총관副摠管·포도대장捕盜大將·서북순변사西北巡邊使 등을 지냈으며, 1603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품되었다. 이듬해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고, 이어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겸 진주목사와 황해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위를 적극 반대하다가 사직당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다시 포도대장에 등용되었으며,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오윤겸 역시 시조 인유의 14세손으로 당대의 거목이었다. 그는 선조 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시강원문학侍講院文學 이조좌랑吏曹佐郞 부교리副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한때 스승인 성혼成渾이 모함을 받아 사직하기도 했으며 정인홍鄭仁弘을 탄핵하다가 좌천되기도 하였다. 광해군 9년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회답사回答使가 되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 3백20여 명을 데리고 오는 활약을 보였다. 이때부터 일본과 국교가 재개되었다고 한다. 그후 폐모론廢母論을 반대하다가 탄핵받았고, 등극사登極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인조반정후 서인이 분열될 때 노서老西의 영수가 되어 대사헌大司憲·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냈고 이괄의 난 때는 왕을 공주公州에 호종하였으며 정묘호란에는 왕세자와 함께 강화江華에 피난하였다. 돌아와서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는데, 인재등용을 공정히 하는 명재상으로 이름이 났다. 또 그의 조카 오달제吳達濟(인조, 부교리), 손자 오도일吳道一(숙종, 대제학·병조판서), 현손玄孫 오명항吳命恒(영조, 우의정) 등도 우뚝한 인재들이다. 오달재는 유명한 「병자척화삼학사丙子斥和三學士」의 한 사람으로 화해를 끝까지 반대하다 청군에 끌려가 윤집尹集, 홍익한洪翼漢 등과 함께 처형당했다. 

집성촌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죽능리·학일리, 충남 금산군 추부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신대동, 충남 아산시 와산리·신달리, 전북 임실군 대정리·삼은리, 전북 순창군 쌍치면 용전리, 전북 정읍시 정우면 대사리, 전북 김제시 성덕면 석동리, 전북 군산시 성산면 둔덕리, 전남 곡성군 명산리·대사리, 경북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도옥리·창길리·성암리, 경북 안동시 일직면 평팔리, 경북 상주시 금흔리·간상리, 경남 의령군 지정면 태부리, 경남 창녕군 창녕읍 도야리,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동상리, 경남 창원시 동읍 용강리, 경남 하동군 청암면 상이리, 경남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 등이다. 특히 용인의 학일리 마을은 구봉산九峰山, 쌍엄산雙嚴山, 문수산文殊山이 감싸고 있는 산골마을로 입향조는 고려말 대호군大護軍을 지낸 오희보吳希保인데, 말년에 이 마을에 정착하여 3백여 호의 후손을 남겼다. 조선 인조조의 오윤겸, 오도일, 오명환 등도 이 마을에 뿌리를 두고 있고 오달제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한다. 

삼세오충렬사三世五忠烈祠

나라를 위해 순절한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을 모신 곳이다. 원래는 오응정吳應鼎과 그의 아들 욱稶과 직稷, 그리고 직의 아들 방언邦彦을 배향하여 사충사四忠祠라 하였으나 근년에 오응정의 아들 동량東亮을 추향하여 오충열사五忠烈祠라 부르고 있다. 

오응정(1548∼1597)은 오인유의 15세손으로 전라도 용안현 출신이다. 자는 문중文中, 호는 완월당翫月堂이다. 조선 선조 7년(1574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에서 치적治積을 쌓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순천부사겸총병부문안사順天府使兼總兵府問安使 전라도 우방어사全羅道右防禦使가 되어 어모장군禦侮將軍 욱, 동량과 더불어 남원성南原城 전투에 참전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게 되자 화약더미 속에서 세 부자가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오응정의 차남 오직(1574∼1619)은 광해군 때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康弘立 막하의 우영천총右營千摠으로 요동 심하 전투에 출전하였으나 강홍립이 후금군에 항복하자 격분하여 부차富車에서 적과 싸우다 온몸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방언1588∼1637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적과 싸우다 인조가 삼전도 굴욕을 당하자 남한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이들의 찬란한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숙종 대에 용안에 충열사를 세우라는 하교(숙종 7년 1681)가 있었으나 기사사화己巳士禍(1689)로 중단되어 정려旌閭만이 쓸쓸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0년에 전라북도의 거도적인 사업으로 삼세오충열사의 복원사업을 벌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북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에 위치하고 있다. (1982년 8월 30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



해주 오씨 근현대 인물

구한말 국난이 닥치자, ‘삼세오충三世五忠’의 충혼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해주오씨 문중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의병장으로 오인수吳寅秀와 오상열吳相烈이 있다. 일신회와 고려혁명당을 조직, 무장항일운동을 벌이다 붙잡혀 옥사한 오동진吳東振이 있고,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인 오세창吳世昌과 그의 아버지이자 김옥균, 박영효 등을 지도하여 개화파를 형성한 오경석吳慶錫이 있고,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의원 등을 지낸 오익표1가 있다. 그 외 한국의학의 개척자였던 오긍선吳兢善 세브란스의전 교장이 있고, 괴짜 시인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도 해주오씨 인물들이다. 
해방 후에도 정관계의 오화영吳華英, 오성환吳晟煥, 오제도吳制道, 오세응吳世應(전 국회의원), 오한영吳漢泳(전 보사부장관), 오정근吳定根(국세청장), 오천석吳天錫(철학박사, 전 문교부장관), 오치성吳致成(전 내무부장관), 오정수吳楨洙(전 상공부장관), 오세훈吳世勳(前 서울시장) 등을 필두로 각계각층에서 유명인물이 많이 나왔다.

〈참고자료〉
김동익, 『한국성씨대백과 성씨의 고향』, 중앙일보사, 1989
김진우, 『한국인의 역사』, 춘추필법, 2009
〈참고사이트〉 해주 오씨 대동종친회(http://haejuo.linuxtest.net/xe/), 해주 오씨 종친회(http://www.hj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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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임금의「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
‘동순망질 사근동후’라는 구절은『 서경』「 우서虞書의 순전舜典」에 나온다.“ (순임금이) 동쪽 지역을 순수하여 태산泰山에 이르러 시柴 제사를 지내고, 산천을 바라보며 차례대로 제사한 뒤 마침내 동방의 천자를 찾아뵈었다”[東巡守至于岱宗, 柴, 望秩于山川, 肆覲東后]. 여기서 동후東后는 결코 제후가 아니다. 그런데 중국 사가들은 한결같이 동후를‘ 동방의 제후’[東方之諸侯也]라 해석해 왔다. 또한 요즈음 나오는『 서경』번역서들도 모두 중국측 억지 해석을 그대로 추종하는 한심한 실정이다.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는 “后:君后. 我后. 夏后. 夏言后者. 白虎通云: 以揖讓受于君, 故稱后. 告于皇天后土.”라고 하였다. 여기서‘ 후后’ 자는 군주君主를 지칭하는 말이다. 제후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 근覲’ 자는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문안 드린다는 말이다.『 강희자전』은“ 천자가 즉위하면 제후들이 북면하여 천자께 알현하는 것을 일러 근覲이라 한다”[天子當依而立, 諸侯北面, 而見天子曰覲.]라고 하였으니,‘ 제후인 순舜임금이 그 종주국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알현하였다’는 것이‘ 사근동후’의 본뜻이다. 그러므로“ 동방의 제후를 찾아뵙다”라고 한 중국측의 해석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한 아전인수격의 억지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서경』의 이 구절이야말로 고대 한·중 관계사를 사실 그대로 극명하게 밝힌 매우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여기서『 서경』 본래의 뜻을 살려 원문을 해석하면,“ 순임금이 요임금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뒤에 차례로 천신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동방의 천자이신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肆覲東后]가 된다.『 ( 환단고기』역주본 본문 488쪽 미주)

국호의 변천
『환단고기』에 따르면 단군조선의 44세 구물 단군께서 BCE 425년 도읍을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면서 국호를 조선에서 ‘대부여大夫餘’로 바꾸셨다. 이후 해모수 단군께서 ‘대부여’를 계승하여 북부여를 개창하셨다. 혈통으로는 해모수의 현손玄孫으로 북부여의 7대 단군이 된 고주몽 성제께서 국호를 고구려로 바꾸었다.『 환단고기』에서는 그동안 미궁에 빠져있었던 부여 역사의 전모를 밝혀줌으로써 고조선에서 열국列國시대를 거쳐 고구려로 이어지는 나라의 계보를 온전하게 밝혀주었다. 우리나라 국호는 첫 번째인 환국부터 마지막 대한민국까지 모두가 광명을 상징한다. 우리 민족은 하늘의 광명을 환桓, 땅의 밝음을 단檀, 천지와 하나 되어 이상을 이룬 완성된 인간을 한韓이라 불렀다. 먼저 환한 광명의 나라 환국桓國에서 밝은 땅이란 의미의 밝달-배달로 이어졌다.

배달국은 달리 단국檀國이라고도 불렀다. 아침에 해가 제일 먼저 비치는 곳(朝光先授之地)이라는 의미의 조선朝鮮을 거쳐, 날이 뿌옇게 밝아온다는 의미의 夫餘, 고대광려高大光麗의 의미에서 고구려高句麗, 동방의 대국大國이라는 뜻에서 대진국大震國,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高麗에서 다시 조선朝鮮으로 이어졌다. 이제‘ 크게 밝은 대인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우리 민족의 천명인 홍익인간을 완성하고 가을우주의 새 역사를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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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정의 원리와 신神·기氣의 상호관계
「삼일신고」 중 인물장#[
삼일신고는 1장 허공, 2장 일신, 3장 천궁, 4장 세계, 5장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의 옛 판본은 이 같은 다섯 개 장으로 나뉘지 않았는데 나중에 고려 말에 행촌 선생이 5개 장으로 나누고 제목을 붙였다. 인성론과 수행론의 핵심이 담겨있는 5장을 소개한다.

第五章(제오장) 人物(인물) 一百六十七字(일백육십칠자)

人物(인물)이 同受三眞(동수삼진)이나 惟?迷地(유중미지)하야 三妄(삼망)이 着根(착근)하고 眞妄(진망)이 對(대)하야 作三途(작삼도)니라. 曰性命精(왈성명정)이니 人(인)은 全之(전지)하고 物(물)은 偏之(편지)니라. 眞性(진성)은 善無惡(선무악)하니 上?(상철)이 通(통)하고 眞命(진명)은 淸無濁(청무탁)하니 中?(중철)이 知(지)하고 眞精(진정)은 厚無薄(후무박)하니 下?(하철)이 保(보)하나니 返眞(반진)하얀 一神(일신)이니라.
역주 제5장 인물人物 (167자)
“사람과 만물이 다 같이 삼진三眞(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을 부여받았으나, 오직 사람만이 지상에 살면서 미혹되어 삼망三妄(마음[心]과 기운[氣]과 몸[身])이 뿌리를 내리고, 이 삼망三妄이삼진三眞과 서로 작용하여 삼도三途(느낌[感]과 호흡[息]과 촉감[觸])의 변화 작용을 짓게 되느니라.”

천제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삼진은 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이니, 사람은 이를 온전히 다 부여받았으나 만물은 치우치게 받았느니라. 참된 성품[眞性]은 선하여 악함이 없으니, 상등 철인[上哲]은 이 본성자리를 통하고, 참 목숨[眞命]은 맑아 흐림이 없으니, 중등 철인[中哲]은 이 타고난 목숨의 경계 자리를 깨닫고, 참 정기[眞精]는 후덕하여 천박함이 없느니라. 하등철인[下哲]은 이 본연의 순수한 정기를 잘 수련하여 보호하느니라. 이 삼진을 잘 닦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상제님[一神]의 조화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三妄(삼망)에 對(대)한 말씀

曰心氣身(왈심기신)이니 心(심)은 依性(의성)이나 有善惡(유선악)하니 善福惡禍(선복악화)하고 氣(기)기는 依命(의명)이나 有淸濁(유청탁)하니 淸壽濁夭(청수탁요)하고 身(신)은 依精(의정)이나 有厚薄(유후박)하니 厚貴薄賤(후귀박천)이니라.
역주 또 말씀하셨다.
“삼망은 마음[心]과 기운[氣]과 몸[身]이니라. 마음은 타고난(조화신에 근원을 둔) 성품[性]에 뿌리를 두지만 선과 악이 있으니, 마음이 선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화를 받느니라. 기[氣]는 타고난 삼신의 영원한 생명에 뿌리를 두지만 맑음과 탁함이 있으니, 기운이 맑으면 장수하고 혼탁하면 일찍 죽느니라. 몸은 정기에 뿌리를 두지만 후덕함과 천박함이 있으니, 자신의 정기를 잘 간직해 두텁게 하면 귀[貴]티가 나고, 정기를 소모시키면 천박해지느니라.”


三途(삼도)에 對(대)한 말씀

曰感息觸(왈감식촉)이니 轉成十八境(전성십팔경)하니 感(감)엔 喜懼哀怒貪厭(희구애노탐염)이오 息(식)엔 芬爛寒熱震濕(분란한열진습)이오 觸(촉)엔 聲色臭味淫抵(성색취미음저)니라. ?(중)은 善惡(선악)과 淸濁(청탁)과 厚薄(후박)이 相雜(상잡)하야 從境途任走(종경도임주)하야 墮生長肖病歿(타생장소병몰)의 苦(고)하고 ?(철)은 止感(지감)하며 調息(조식)하며 禁觸(금촉)하야 一意化行(일의화행)하고 改妄卽眞(개망즉진)하야 發大神機(발대신기)하나니 性通功完(성통공완)이 是(시)니라.
역주 또 말씀하셨다.
“ 삼도는 느낌[感]과 호흡[息]과 촉감[觸]의 작용이니라.
이것이 다시 변화하여 열여덟 가지 경계를 이루나니, 느낌에는 기쁨과 두려움과 슬픔과 노여움과 탐욕과 싫어함이 있고, 호흡에는 향내와 숯내[芬爛] 와 차가움과 더움과 마름과 젖음이 있고, 촉감에는 소리와 빛깔과 냄새와 맛과 음탕함과 살 닿음[抵]이 있느니라. 창생은 마음의 선악과 기운의 맑고 탁함과 몸의 후덕함과 천박함이 서로 뒤섞인 경계의 길을 따라 제멋대로 달리다가,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 떨어지느니라.

그러나 철인은 감정을 절제하고[止感], 호흡을 (천지의 중도에 맞춰) 고르게 하며[調息], 촉감과 자극을 억제하여[禁觸], 오직 한뜻[一心]으로 매사를 행하고 삼망을 바로잡아 삼진으로 나아가 비로소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대신기大神機(우주 삼신의 조화기틀)를 발현시키나니, 삼신이 부여한 대광명의 성품을 깨닫고 그 공덕을 완수한다[性通功完]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니라.” 『(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도통의 관문을 밝히는「 대변경」의 내용

性命精(성명정)이 爲三關(위삼관)이오 關(관)은 爲守神之要會(위수신지요회)니 性不離命(성불리명)하며 命不離性(명불리성)하니 精在其中(정재기중)이니라. 心氣身(심기신)이 爲三房(위삼방)이오 房(방)은 爲化成之根源(위화성지근원)이니 氣不離心(기불리심)하며 心不離氣(심불리기)하니 身在其中(신재기중)이니라. 感息觸(감식촉)이 爲三門(위삼문)이오 門(문)은 爲行途之常法(위행도지상법)이니 感不離息(감불리식)하며 息不離感(식불리감)하니 觸在其中(촉재기중)이니라. 性(성)은 爲眞理之元關(위진리지원관)이오 心(심)은 爲眞神之玄房(위진신지현방)이오 感(감)은 爲眞應之?門(위 응지현문)이니라
역주‘ 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는 신(삼신)과 합일되기위해 반드시 굳게 지켜야 할‘ 세 관문[三關]’이니, 관문이란 신神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길목(요체)을 말한다. 성품은 타고난 목숨과 분리될 수 없고, 목숨은 타고난 성품과 분리될 수 없으니, 성과 명의 중심에 정기가 있다.‘ 마음[心] 과 기운[氣]과 몸[身]’은 신이 머무는‘ 현묘한 세 방[三房]’이니, 방房이란 변화를 지어내는 근원을 말한다. 기는 마음을 떠나 존재할 수 없고, 마음은 기를 떠나 있을 수 없으니, 마음과 기의 중심에 우리의몸이 있다.‘ 느낌[感]과 호흡[息]과 촉감[觸]’은 신의 조화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세 문호[三門]’이니, 문門이란 삼신의 도를 실행하는 영원불변의 법도이다. 감각은 호흡 작용과 분리되지 않으며, 호흡 작용은 감각과 분리되지 않나니, 촉감이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성품[性]은 진리를 체험하는 으뜸 관문[元關]이요, 마음[心]은 참신[眞神]이 머무시는 현묘한 안식처[玄房]요, 느낌[感]은 삼신상제님의 성령이 감응하는 오묘한 문[妙門]이다. 「(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단군세기 서문」에서
「단군세기 서문」은 행촌 이암선생의 유작으로 신교의 우주론, 인간론, 수행론의 핵심이 명쾌한 필치로 정리돼 있다. 특히 성명정의 인성론으로 상제님에 대한 정의를 내린 부분과 내 몸의 성이 신명의 뿌리가 된다는 내용, 신과 기가 일체로 작용한다는 내용 등은 동서고금의 경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목이다.

성性·명命과 신神·기氣의 상호相互 관계關係

夫性者(부성자)는 神之根也(신지근야)라 神本於性(신본어성)이나 而性未是神也(이성미시신야)오
氣之炯炯不昧者(기지형형불매자)가 乃眞性也(내진성야)라 是以(시이)로 神不離氣(신불리기)하고 氣不離神(기불리신)하나니 吾身之神(오신지신)이 與氣(여기)로 合而後(합이후)에 吾身之性與命(오신지성여명)을 可見矣(가견의)오.
역주 대저 성[性]이란 인간의 신神(신명)이 생겨나고 자리를 잡는 근거와 바탕[神之根]이다. 신이 성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이 곧 신인 것은 아니다. 기氣가 환히 빛나 어둡지 않은 것이 곧 참된 성품이다. 그러므로 신神은 기氣를 떠날 수 없고, 기 또한 신을 떠날 수 없으니, 내 몸 속의 신[吾身之神]이 기와 결합된 후에야 내 몸 속의 본래 성품[吾身之性·조화신]과 (삼신의 영원한 생명인) 나의 목숨[命·교화신]을 볼 수 있다.

서로 분리分離될 수 없는 성性과 명命

性不離命(성불리명)하고 命不離性(명불리성)하나니 吾身之性(오신지성)이 與命(여명)으로 合而後(합이후)라야 吾身(오신)의 未始神之性(미시신지성)과 未始氣之命(미시기지명)을 可見矣(가견의)니라.
역주 성품[性]은 저마다 타고난 (삼신의 영원한 생명이 화한) 목숨[命]과 분리될 수 없고, 목숨도 성품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몸에 깃든 성품이 목숨과 결합된 뒤라야, 내 몸속에서 신화神化 하기 이전의 본래 성품과 내 몸에서 기화氣化 하기 이전의 본래 목숨[命]의 조화 경계를 볼 수 있다.

우주와 하나되는 길
故(고)로 性命精之無機(성명정지무기)는 三神一體之上帝也(삼신일체지상제야)시니 與宇宙萬物(여우주만물)로 渾然同體(혼연동체)하시며 與心氣身(여심기신)으로 無跡而長存(무적이장존)하시며 感息觸之無機(감식촉지무기)는 桓因主祖也(환인주조야)시니 與世界萬邦(여세계만방)으로 一施而同樂(일시이동락)하시며 與天地人(여천지인)으로 無爲而自化也(무위이자화야)시니라.
역주 따라서 성품과 목숨과 정기[性命精]가 혼연일체의 경계에 계신 분은‘ 삼신과 한 몸이신 상제님’[三神一體上帝] 이시다. 상제님은 천지 만물과 혼연히 한 몸이 되시어, 마음과 기운과 몸[心氣身]으로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으시나 영원히 존재하신다. 그리고 느낌과 호흡과 촉감[感息觸]이 혼연일체의 경지에 계신 분이 인류의 시조인 환인주조主祖님이시다. 환인주조님은 세계만방에 한결같이 덕화를 베풀고 즐거움을 함께 누리시며, 하늘·땅·인간 삼계三界와 더불어, 함이 없이 저절로 조화를 이루신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심법과 수행의 요체 글
고주몽 성제의 조칙
哲人(철인)은 虛靜戒律(허정계율)하야 永絶邪氣(영절사기)하나니 其心安泰(기심안태)하면 自與衆人(자여중인)으로 事事得宜(사사득의)라. 用兵(용병)은 所以緩侵伐(소이완침벌)이며 行刑(행형)은 所以期無罪惡(소이기무죄악)이니라. 故(고)로 虛極靜生(허극정생)하고 靜極知滿(정극지만)하고 知極德隆也(지극덕융야)라 故(고)로 虛以聽敎(허이청교)하고 靜以?矩(정이계구)하고 知以理物(지이이물)하고 德以濟人(득이제인)하나니 此乃神市之開物敎化(차내신시지개물교화)하야 爲天神通性(위천신통성)하며 爲衆生立法(위중생입법)하며 爲先王完功(위선왕완공)하며 爲天下萬世(위천하만세)하야 成智生雙修之化也(성지생쌍수지화야)니라.」
역주 슬기로운 이는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며 계율을 잘 지켜 삿된 기운을 영원히 끊나니, 그 마음이 편안하고 태평하면 저절로 세상사람과 더불어 매사에 올바르게 행동하게 되느니라. 군사를 쓰는 것은 침략을 막기위함이며, 형벌의 집행은 죄악을 뿌리뽑기 위함이니라. 그런고로 마음을 비움이 지극하면 고요함이 생겨나고, 고요함이 지극하면 지혜가 충만하고, 지혜가 지극하면 덕이 높아지느니라. 따라서 마음을 비워 가르침을 듣고, 고요한 마음으로 사리를 판단하고, 지혜로 만물을 다스리고, 덕으로 사람을 건지느니라. 이것이 곧 신시 배달 시대에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의 마음을 연 교화의 방도이니, 천신을 위해 본성을 환히 밝히고, 뭇 창생을 위해 법을 세우고, 선왕을 위해 공덕을 완수하고, 천하만세를 위해 지혜와 생명을 함께 닦아[智生雙修] 교화를 이루느니라.

을지문덕의 도언道言
乙支文德(을지문덕)이 曰(왈) 道以事天神(도이사천신)하고 德以庇民邦(덕이비민방)하라 吾知其有辭天下也(오지기유사천하야)라 受三神一體氣(수삼신일체기)하여 分得性命精(분득성명정)하니 自在光明(자재광명)이 昻然不動(앙연부동)이라가 有時以感(유시이감)하며 發而道乃通(발이도내통)하나니라. 是乃所以?行三物德慧力(시내소이체행삼물덕혜력)하고 化成三家心氣身(화성삼가심기신)하며 悅滿三途感息觸(열만삼도감식촉)하나니 要在日求念標(요재일구염표)하야 在世理化(재세이화)하야 靜修境途(정수경도)하야 弘益人間也(홍익인간야)라.
역주 을지문덕이 이렇게 말하였다.
도로써 천신(삼신상제님)을 섬기고, 덕으로써 백성과 나라를 감싸 보호하라. 나는 천하에 이런 말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인간이 삼신일체의 기운[氣]을 받을 때, 성품[性]과 목숨[命]과 정기[精]로 나누어 받나니, 우리 몸속에 본래 있는 조화의 대광명은 환히 빛나 고요히 있다가 때가 되면 감응하고, 이 조화의 대광명이 발현되면 도道를 통한다. 도를 통하는 것은, 삼물三物인 덕德과 지혜[慧]와 조화력[力]을 몸으로 체득하여 실천하고, 삼가三家인 마음[心]과 기운[氣]과 몸[身]의 조화를 성취하며, 삼도三途인 느낌[感]과 호흡[息]과 촉감[觸]이 언제나 기쁨으로 충만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도를 통하는 요체는 날마다「 염표문念標文」을 생각하여 실천하기에 힘쓰고,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 다스려 깨우쳐서[在世理化], 삼도三途 십팔경十八境을 고요히 잘 닦아[靜修境途] 천지광명(환단)의 뜻과 대이상을 지상에 성취하는 홍익인간이 되는 데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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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게의 의문의 피라밋

이것은 고대에 하나의 문화로 연결된 문명권이나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http://youtu.be/UHw6ZL_qgbU

http://youtu.be/pu9RMXZ68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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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勿興邦歌다물흥방가

고구려 皁衣들이 즐겨 부른 노래이다. 신교 역사관, 인성론과 함께 유불선의 정수가 담겨있고 조의들과 고구려인들의 국가관 생사관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안장제 때 을밀乙密이 조의선인이 되어 무리들과 함께 불렀다고 한다.

先去者爲法兮(선거자위법혜)여 後來爲上(후래위상)이로세.
爲法故(위법고)로 不生不滅(불생불멸)이오
爲上故(위상고)로 無貴無賤(무귀무천)이라.
먼저 가신 선령은 법이 되나니 뒤에 오는 후손은 조상을 받든다네.
우리 선령이 삶의 법(길잡이) 되어 주시니 그 정신 불생불멸이요
후손이 선령을 받드니 귀천이 없음이라.


人中天地爲一兮(인중천지위일혜)여
心與神(심여신)이 卽本(즉본)이로다.
爲一故(위일고)로 其虛其粗(기허기조)가 是同(시동)이오
卽本故(즉본고)로 惟神惟物(유신유물)이 不二(불이)라.
사람이 천지의 중심으로 태일이 됨이여! 마음은 신명과 더불어 천지의 근본이로세.
사람이 태일이므로 무형(정신)과 유형(물질)이 같고 천지의 근본이므로 신과 만물은 둘이 아니네.


眞爲萬善之極致兮(진위만선지극치혜)여
神主於一中(신주어일중)이로다.
極致故(극치고)로 三眞歸一(삼진귀일)이오
一中故(일중고)로 一神卽三(일신즉삼)이로다.
참[眞]은 온갖 선의 극치요 삼신은 일심의 중도 정신으로 만유를 주장하시네.
참[眞]이 선의 극치에 이르니 삼진(三眞)은 하나로 돌아가고 일심 중도에 머무는 고로 삼위 정신(삼신)으로 창조 운동을 하여라.


天上天下(천상천하)에 惟我自存兮(유아자존혜)여
多勿其興邦(다물기흥방)이로다.
自存故(자존고)로 處無爲之事(처무위지사)오
興邦故(흥방고)로 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라.
천상천하에 오직 내가 있음이여! 옛 땅과 혼을 되찾는 다물 정신, 나라를 부흥시키네.
스스로 생존하기에 함이 없는 일을 처리하고, 나라를 일으키기에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하네.


眞命之大生(진명지대생)이 性通光明兮(성통광명혜)여
入則孝(입즉효) 出則忠(출즉충)하라.
光明故(광명고)로 衆善(중선)을 無不奉行(무불봉행)이오
孝忠故(효충고)로 諸惡(제악)을 一切莫作(일절막작)하라.
영원한 참 목숨 크게 생함은 나의 본성이 광명에 통해 있음이라!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충성하여라.
광명하므로 뭇 선을 다 받들어 행하고 효도와 충성을 위해 일체의 악 짓지 말지라.


惟民之所義(유민지소의)는
乃國爲重兮(내국위중혜)여 無國我何生(무국아하생)고
國重故(국중고)로 民有物而爲福(민유물이위)이오
我生故(복아생)고로 國有魂而爲德(국유혼이위덕)이라.
백성의 정의로움은 오직 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데 있네. 나라 없이 어찌 내가 살 수 있으리.
나라 소중하니 백성에게 만물이 있어 복이 되고, 내가 살아 있기에 나라에 혼이 있어 덕이 되네.


魂之有生(혼지유생) 有覺(유각) 有靈兮(유령혜)여
一神攸居之爲天宮(일신유거지위천궁)이로다.
三魂故(삼혼고)로 智生(지생)을 可以雙修(가이쌍수)오
一神故(일신고)로 形魂(형혼)을 亦得俱衍(역득구연)이라.
우리의 혼 속에 생함[生]과 깨달음[覺]과 신령함[靈]의 삼혼 깃들어 있음이여!
우주의 조화신(일신) 영원히 머무는 이내 몸, 천궁(天宮)이로세. 우리 몸에 삼혼(三魂) 깃들어 삶과 지혜를 함께 닦을 수 있으니, 일신이 머무는 천궁, 이내 몸이여! 몸과 영혼을 함께 닦아 영생하리로다.


俾我子孫(비아자손)으로 善爲邦兮(선위방혜)여
太白敎訓(태백교훈)이 吾所師(오소사)로다.
我子孫故(아자손고)로 統無不均(통무불균)이오
吾所師故(오소사고)로 敎無不新(교무불신)이라.
우리 자손들 나라를 잘 다스림이여! 대광명의 신교 가르침,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로다.
우리 자손들, 통일되어 모두 잘 살리니 우리 스승의 가르침에 새롭지 않은 것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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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로 읽는 환단고기] 인류 조직문화의 원형, 삼한오가三韓五加


STEP1. 들어가기


백제의 정사암政事巖

정사암政事巖은 백제 시대에 고위 귀족들의 회의에 의하여 수상인 상좌평上佐平을 선출하던 곳을 말합니다. 현재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에 위치한 천정대天政臺가 바로 백제의 정사암입니다. 정사암은 화백회의和白會議를 개최하던 신라의 사영지四靈地와 같이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지금도 주민들이 임금바위, 신하바위로 부르는 이곳에는 백제 때 임금과 신하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기원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삼국유사』 「남부여조」에 “호암사에는 정사암이 있는데, 나라에서 재상을 선출할 때 후보자 3~4명의 이름을 써서 상자에 넣고 봉해서 바위 위에 두었다가 개봉하여 그 이름 위에 도장이 찍혀 있는 자로 재상을 삼았으므로 정사암이란 이름이 생겼다[又虎嵓寺有政事嵓 國家將議宰相 則書當選者名或三四 函封置嵓上 須臾取看 名上有印跡者爲相 故名之]”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백은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똑같이 운영되었는데 특히 백제의 정사암 제도는 신교를 받는 화백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화백和白에서 흰 백자를 쓰는 것은 광명문화, 영성문화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밝은 영성으로 신교를 받아 내려 조직 구성원들의 의견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것이 화백 제도의 근간이었습니다. 『환단고기』에서는 화백 제도가 배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환단고기』를 통해 태고 시절 우리 한민족과 인류 조직문화의 원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콘클라베(Conclave)에 보이는 화백和白의 흔적

2013년 3월 바티칸 콘클라베(CONCLAVE)에 흰 연기가 피어 올랐습니다. 라틴어로 ‘열쇠를 잠그는 방’이라는 뜻의 이 콘클라베 회의에서 현現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콘클라베는 폐쇄된 공간에서 기도와 투표, 묵상과 토론이 뒤섞인 신비의 종교행사입니다. 초기의 콘클라베는 만장일치로 교황을 선출하였습니다. 콘클라베를 통해 지금은 사라진 화백 제도의 흔적을 살필 수 있습니다. 먼저 그 과정을 살펴보면 콘클라베는 전 세계에 흩어진 80세 미만의 추기경들이 교황청 궁내처장의 소집령을 받아 로마로 집결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들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시스티나 소성당에 들어가면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이들은 외부와 격리된 채로 콘클라베가 진행됩니다. 투표는 3분의 2 이상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됩니다. 첫날 오후, 첫 번째 투표가 실시되는데 이 날 투표에서 결정되지 못하면 둘째 날 이후부터 1일당 오전 2회, 오후 2회로 합계 네 차례 투표가 실시됩니다. 3일째가 되어도 결정되지 않을 때는 하루 동안 투표를 중지하고 부제급 추기경 중 최연장자에 의한 강화講話를 듣거나 기도를 합니다. 그럼에도 7회차 투표로 넘어가면 다시 투표를 즉각 중단하고 이번에는 사제급 추기경의 강화를 듣습니다. 게다가 7회차 투표에서도 결정되지 않을 때도 같은 방법이 반복되어 이번에는 주교급 추기경의 연장자가 강화를 이끌어냅니다. 그래도 결정이 되지 않으면 3명 이상인 후보자가 있을 경우 최소 득표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어 마지막엔 2인의 후보자에 투표를 하며 무조건 2/3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선거합니다. 교황이 선출되면 투표용지를 태워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는 흰 연기가 올라옵니다. 콘클라베가 끝난 뒤 흰옷을 입고 시스티나 성당을 나오는 사람이 새 교황입니다. [참조:위키 백과]

STEP2. 삼신오제로부터 출발한 조직 문화


1. 환국의 조직

인류 최초의 국가이자 동서 문명의 뿌리인 환국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삼국유사』 「고조선」편과 『환단고기』의 일부 내용을 통해 환국의 제도와 문화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동방 역사의 첫 시작, 환웅 천황의 배달 건국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환국의 국가 통치조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배달의 국가 조직이 환국의 제도를 그대로 계승하였기 때문입니다. 곧 배달의 건국에 등장하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의 삼백三伯제도와 오사五事조직, 그리고 서자부庶子部 조직은 모두 환국에서 운영되었던 국가 통치 조직이었습니다.

오가五加

환인이 동방개척의 적임자를 물었을 때 곁에 있던 오가五加들이 환웅을 천거합니다. 이를 통해 오가는 환인을 곁에서 보좌하는 사람들, 즉 환국의 중앙 통치부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오가는 지역 행정조직이기도 하였습니다. 지역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를 말합니다. 환국의 오가에서는 지역 조직과 중앙 행정조직이 미분화된 형태였습니다. 이는 역사 초창기 초기 조직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五加僉曰(오가첨왈) 庶子(서자)에 有桓雄(유환웅)이 勇兼仁智(용겸인지)하고 嘗有意於易世以弘益人間(상유의어역세이홍익인간)하오니 可遣太白而理之(가견태백이리지)니이다

역주 오가의 우두머리가 모두 환인에게 대답하였다.“ 서자庶子에 환웅이란 인물이 있는데 용기와 어짊과 지혜를 겸비하고, 일찍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세상을 개혁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그를 동방의 태백산(백두산)으로 보내 다스리게 하십시오.” (「 삼성기 하」)

배달의 오사五事조직을 통해 환국에 있었던 오가들의 역할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오사는 주곡, 주명, 주형, 주병, 주선악을 말합니다. 주곡 등은 각각 명사로서 그 자체가 관직명입니다(경주대학교 경영학과에 재직중인 이강식 교수가 1987년 논문을 통해 처음 주장함). 주主 자가 들어가는 관직명으로 고구려, 고려, 조선시대에 주부主簿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주사主事, 주임主任 등의 관명을 쓰고 있습니다. 주곡은 말 그대로 농사에 관한 일을, 주명은 왕명의 출납을 처리했고, 주형은 형벌을, 주병은 병病을, 주선악은 선악을 관장하는 부서였습니다. 환국의 오가는 지역의 영주로서 대대로 세습되는 가문조직이기도 하였습니다.

於是(어시)에 桓雄(환웅)이 率衆三千(솔중삼천)하사 降于太白山頂神壇樹下(강우태백산정신단수하)하시니
謂之神市(위지신시)오 是謂桓雄天王也(시위환웅천왕야)시니라 將風伯(장풍백)·雨師(우사)·雲師(운사)하시고
而主穀(이주곡)·主命(주명)·主刑(주형)·主病(주병)·主善惡(주선악)하시며 ●主人間三百六十餘事(범주인간삼백육십여사)하사 在世理化(재세이화)하사 弘益人間(홍익인간)하시니라

역주 이때 환웅께서는 무리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오시어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시니, 이분이 바로 환웅천황이시다. 환웅께서 풍백風伯과 우사雨師와 운사雲師를 거느리시고, (오가五加에게) 농사·왕명·형벌·질병·선악을 주장하게 하시고,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써 다스려 깨우쳐서[在世理化]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弘益人間]. (「삼성기 하」)

서자부庶子部

서자庶子의 서庶 자는 여러 서 자입니다. 서자의 문자적 의미는 ‘여러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서자가 관직의 이름으로 쓰인 사례는 당나라와 고려에서 발견됩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당나라 유인궤의 관명이 ‘좌서자 동 문하삼품’[左庶子 同 中書門下三品]으로 나오고 고려에서는 ‘태자좌우서자’[太子左右庶子]라는 관직이 있었습니다. 둘 다 왕·귀족 자제의 스승, 선생, 동궁東宮의 직관職官으로서 서자입니다. 따라서 환국의 서자부는 환인의 여러 아들과 왕족의 자제를 가르치는 부서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서자부의 장을 대인大人이라 불렀습니다. 대인 환웅이 연 배달국은 삼신의 세 덕성인 조화, 교화, 치화 중에서 교화의 도를 활짝 연 시대였습니다. 

時(시)에 人多産乏(인다산핍)하야 憂其生道之無方也(우기생도지무방야)러니
庶子之部(서자지부)에 有大人桓雄者(유대인환웅자)가 探聽輿情(탐청여정)하시고
期欲天降(기욕천강)하사 開一光明世界于地上(개일광명세계우지상)하시니라

역주 당시 사람은 많고 물자는 적어 살아갈 방법이 없음을 걱정하였더니, 서자부[庶子之部]의 대인 환웅이 민정을 두루 살펴 듣고 천계에서 내려와 지상에 광명 세상을 열고자 하셨다. (『태백일사』 「환국본기」)

삼신오제 사상

신교 삼신관에 따르면 오제五帝가 다섯 방위의 주재자로서 삼신상제님의 명에 따라 오령五靈을 맡아 다스립니다. 오령은 천지 성령의 영묘한 기운으로 태수, 태화, 태목, 태금, 태토를 말합니다. 후에 오행사상으로 발전합니다. 천지의 다섯 신령한 조화 기운은 순전히 그 자체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삼신과 오제의 주재에 따라 작용합니다. 삼신오제 사상은 한민족이 우주의 속 세계인 신의 세계를 깨달아서 나온 개념입니다. 한민족은 이 삼신오제 조직을 국가 통치조직으로 이화하여 환국시대부터 삼한오가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夫三神稽(계부삼신)호니 曰天一(왈천일)과 曰地一(왈지일)과 曰太一(왈태일)이시니 天一(천일)은 主造化(주조화)하시고 地一(지일)은 主敎化(주교화)하시고 太一(태일)은 主治化(주치화)하시니라.

역주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삼신은 천일과 지일과 태일이시다. 천일은 (만물을 낳는) 조화를 주관하고 지일은 (만물을 기르는) 교화를 주관하고 태일은 (세계를 다스리는) 치화를 주관하신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於時(어시)에 三神(삼신)이 乃督五帝(내독오제)하사 命各顯厥弘通(명각현궐홍통)하시며 五靈(오령)으로 啓成厥化育(계성궐화육)하시니라

역주 이에 삼신께서 다섯 방위의 주재자인 오제를 통솔하여 저마다 그 맡은 바 사명을 두루 펴도록 명령하시고, 오령에게 만물 화육의 조화 작용을 열어서 공덕을 이루게 하셨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이 오제사상을 잘 나타내는 그림이 고구려의 사신도四神圖입니다. 사신도를 보면 동에 청룡, 남에 주작, 북에 현무, 서에 백호, 중앙 천장에 황룡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각 방위의 주재신을 상징하는 영물靈物입니다.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에서는 각 방위에 배치된 영물들에 오가五加를 함께 배치하였습니다. 특히 중앙 방위에는 황웅여신黃熊女神과 주병主病을 배치하였습니다. 오가 중에서 주병의 상징이 황웅이었습니다. 홍산 문화의 여신묘 유적을 통해 배달시대 때만 해도 황웅과 여신을 숭배하는 문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신도에서는 황웅 대신에 황룡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후대에 내려오면서 여신 숭배 문화가 퇴색된 결과로 보여집니다.

五帝注(오제주)에 曰(왈) 「五方(오방)이 各有司命(각유사명)하니 在天曰帝(재천왈제)시오 在地曰大將軍(재지왈대장군)이시니 督察五方者(독찰오방자)는 爲天下大將軍(위천하대장군)이시오 督察地下者(독찰지하자)는 爲地下女將軍也(위지하여장군야)시니 龍王(용왕)은 玄龜(현귀)시니 主善惡(주선악)하시며 朱鵲(주작)은 赤熛(적표)시니 主命(주명)하시며 靑龍(청룡)은 靈山(영산)이시니 主穀(주곡)하시며 白虎(백호)는 兵神(병신)이시니 主刑(주형)하시며 黃熊(황웅)은 女神(여신)이시니 主病(주병)하시니라.」

역주 『오제주五帝注』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오방五方에 저마다 사명이 있으니, 하늘에서는 제帝이시요, 땅에서는 대장군大將軍이시다. 오방을 감찰하는 이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시고, 지하를 감찰하는 이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시다. 용왕龍王 현귀玄龜는 선악을 주관하시고, 주작朱鵲 적표赤熛는 왕명을 주관하시며, 청룡靑龍 영산靈山은 곡식을 주관하시고, 백호白虎 병신兵神은 형벌을 주관하시며, 황웅黃熊 여신女神은 질병을 주관하신다.(『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화백제도의 기원

화백은 말 그대로 화합하여 광명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화백은 배달시대에 이미 제도화되었습니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의 ‘정치를 시행함에는 화백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發政이 莫先於和白]’라는 대목으로 보아 화백제도는 임시적이거나 일시적인 정책이 아니라 공시적이고 항구적인 국가의 정책이었습니다. 사실 이 화백의 기원은 환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환국의 지도자 환인을 선출할 때 반대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은 연후에야 선출하였습니다. 화백에서는 단 한 사람의 반대가 있어도 회의의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의 원한이 붙어도 성사시키지 않은 이 화백 정신은, 모든 사람의 가슴 깊이 맺힌 원한을 다 풀어야 인간을 구원·통일할 수 있다는, 신교의 완성 진리로 선포된 증산도의 ‘해원解寃사상’과 맥이 상통합니다.

時(시)에 九桓(구환)이 皆以三神(개이삼신)으로 爲一源之祖(위일원지조)하시며 主蘇塗(주소도)하시며 主管境(주관경)하시며 主責禍(주책화)하시며 與衆議一歸(여중의일귀)로 爲和白(위화백)하시니라

역주 이때에 구환족이 모두 삼신을 한뿌리의 조상으로 삼았다. 천황께서 소도蘇塗와 관경管境과 책화責禍를 주관하고, 백성의 의견을 모아 하나로 통일하는 화백 제도를 두셨다

五加(오가)와 衆(중)이 交相選於大衆(교상선어대중)할새 以必求業故(이필구업고)하야 愛憎有別(애증유별)하고
各以其所心(각이기소심)으로 主辦之而自擇(주판지이자택)이라 其所求鵠(기소구곡)은 惟在九桓爲公(유재구환위공)하야 大同歸一焉者(대동귀일언자)니 則亦當自較得失(즉역당자교득실)하야 無一人異然後(무일인이연후)에 從之(종지)하고 諸衆(제중)도 亦不敢遽下獨術以處之(역불감거하독술이처지)라.

역주 오가五加와 무리가 서로 번갈아 백성에게서 환인을 선출할 때, 반드시 그 사람의 업적을 살펴서 좋아함과 싫어함을 구별하고, 각자 마음으로 판별하여 스스로 선택하였다. 이렇게 환인을 선출하는 궁극 목적[其所求鵠]은 오직 공公을 위해 구환족[九桓]이 대동단결하여 한마음이 되는 데 있었다. 또한 마땅히 대상자의 잘잘못[得失]을 비교하여 반대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은 연후에야 선출하였고, 다른 모든 무리도 감히 성급하게 독단적인 방법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환국·배달·조선은 우주 원리를 국가 경영 원리로 삼아 나라를 다스렸다. 그 우주 원리가 바로 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이다. 삼신(조화신·교화신·치화신)이 현실에서 작용할 때에는 다섯 방위[五方]로 펼쳐진다. 오방五方은 동서남북과 중앙이다. 이 오방을 대변하는 다섯 가지 색깔, 청(동방)·백(서방)·황(중앙)·적(남방)·흑(북방)을 오방색이라 한다. 오방에서 각기 만물의 생성작용을 주장하는 신(主神)을 오제라 하는데, 청제靑帝·백제白帝·황제皇帝·적제赤帝·흑제黑帝이다. 이 다섯 방위의 주재자가 수화목금토 오행의 천지 기운을 주재한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91쪽)

2. 배달의 조직

삼백의 기능

환웅께서 거느리고 왔던 풍백, 우사, 운사의 삼백三伯 조직은 뒤에 나오는 오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조직이었습니다. 조선시대로 보면 삼정승 곧 영의정·좌의정·우의정에 해당하는 조직입니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서는 삼백의 역할에 대해 풍백은 입약, 우사는 시정, 운사는 행형을 맡았다 하였습니다(풍백지입약 우사지시정 운사지행형 風伯之立約과 雨師之施政과 雲師之行刑). 이것을 오늘날 정치제도로 말한다면 풍백은 입법立法기관, 우사는 행정行政기관, 운사는 사법司法기관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계획, 통제, 조직으로 보거나 조화·교화·치화로 볼 수 있습니다. 삼신 문화에서 삼백 문화가 나왔습니다. 삼백 제도는 인류 조직문화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三韓曰(삼한왈) 風伯雨師雲師(풍백우사운사) 五加(오가)는 卽家也(즉가야)니 五加曰(오가왈) 牛加主穀(우가주곡)하며 馬加主命(마가주명)하며 狗加主刑(구가주형)하며 猪加主病(저가주병)하며 鷄加主善惡也(계가주선악야)니 民有六十四(민유육십사)하고 徒有三千(도유삼천)이라.

역주 삼한三韓은 풍백·우사·운사를 말하기도 한다. 가加는 가家라는 뜻이다. 오가五加는 곧 곡식을 주관[主穀]하는 우가牛加, 어명을 주관[主命]하는 마가馬加, 형벌을 주관[主刑]하는 구가狗加, 질병을 주관[主病]하는 저가猪加, 선악을 주관[主善惡]하는 계가鷄加를 말한다. 백성은 64겨레요, 무리는 3천이었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더 분화된 오가조직

배달 시대는 삼한오가의 조직 체계가 더 분화됩니다. 삼한오가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업무 영역이 세분화된 것입니다. 환웅께서 치우로 하여금 대대로 병마와 도적을 잡는 업무를 맡겼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과거 같으면 오가 중에 주형이 관장했을 업무가 분리되어 새로운 부서가 생긴 셈입니다. 

『환단고기』에는 주곡 관직을 맡은 분은 고시례이고, 주명 관직은 신지씨가 맡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직은 대체로 세습되었는데 고시씨와 신지씨의 이름은 단군 조선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治尤(치우)는 則世掌兵馬盜賊之職焉(즉세장병마도적지직언)하시니라.

역주 치우治尤로 하여금 대대로 ‘병마와 도적을 잡는 직책’을 관장하게 하셨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桓雄天皇(환웅천황)이 又復命神誌赫德(우복명신지혁덕)하사 作書契(작서계)하시니 蓋神誌氏(개신지씨)가 世掌主命之職(세장주명지직)하 專掌出納獻替之務(전장출납헌체지무)나 而只憑喉舌(이지빙후설)이오
曾無文字記存之法(증무문자기존지법)이라.

역주 환웅천황께서 또 다시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문자[書契]를 만들게 하셨다. 신지씨神誌氏는 대대로 주명主命 직책을 관장하여 왕명을 출납하고 천황을 보좌하는 일을 전담하였으나, 다만 말에만 의지할 뿐 문자로 기록하여 보존하는 방법이 없었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桓雄天皇(환웅천황)이 見人居已完(견인거이완)과 萬物(만물)이 各得其所(각득기소)하시고
乃使高矢禮(내사고시례)로 專掌餽養之務(전장궤양지무)하시니 是爲主穀(시위주곡)이니라

역주 환웅천황께서 사람의 거처가 이미 완비되고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은 것을 보시고, 고시례高矢禮로 하여금 음식과 양육[餽養]의 일을 전담하게 하셨다. 이분이 주곡主穀 벼슬을 맡았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삼신오제 사상은 동북아 한민족사의 창세시절 초기부터 통치 원리로 이화되었다. 배달의 환웅천황이 삼신오제 사상에 따라 삼백三伯(풍백, 우사, 운사) 제도와 오사五事(주곡主穀·주명主命·주병主病·주형主刑·주선악主善惡) 제도를 시행한 것이다. 삼백은 조선 시대의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근현대의 삼권분립(입법부, 행정부,사법부) 제도와 완전히 정합한다. 풍백, 우사, 운사는 흔히 말하듯 바람신, 비신, 구름신이라는 신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원형인 것이다. 배달의 오사는 고조선과 북부여, 고구려, 백제 등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중국 역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인물로 흔히 삼황오제三皇五帝를 꼽는데, 이것도 동방 한민족의 삼신오제 사상에서 연유한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92쪽)

여러 명의 왕검들

배달국의 역사를 기록한 신시본기를 보면 왕검이 여러 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세 사와라 환웅초기에 웅녀군의 후예 여黎가 최초로 단허에 봉함을 받아 왕검이 되었습니다. 여러 지역의 왕검들이 방물을 바치고 귀화하였다는 내용을 볼 때 배달국 역시 한 분 환웅 아래 수많은 왕검들이 각기 소국을 다스렸다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왕검들의 나라 중 대읍국大邑國에 해당되는 나라가 웅씨국이었고 웅씨국의 비왕으로 있다 웅씨 왕이 죽자 그 자리를 계승하여 구환을 통일하여 조선을 개국하신 분이 신인왕검이라 불린 단군왕검이십니다. 

斯瓦羅桓雄之初(사와라환웅지초)에 熊女君之後(웅녀군지후)를 曰黎(왈여)니 始得封於檀墟(시득봉어단허)하야 爲王儉(위왕검)하야 樹德愛民(수덕애민)하니 土境(토경)이 漸大(점대)하고 諸土境王儉(제토경왕검)이 來獻方物(내헌방물)하야 以歸化者(이귀화자)가 千餘數(천여수)라 後四百六十年(후사백육십년)에 有神人王儉者(유신인왕검자)가 大得民望(대득민망)하사 陞爲裨王(승위비왕)이라가 居●二十四年(거섭이십사년)에 熊氏王(웅씨왕)이 崩於戰(붕어전)하고 王儉(왕검)이 遂代其位(수대기위)하사 統九桓爲一(통구환위일)하시니 是爲檀君王儉也(시위단군왕검야)시니라.

역주 사와라환웅(13세) 초기에 웅족 여왕의 후예를 여黎라 하였는데, 처음으로 단허檀墟에 봉함을 받아 왕검이 되었다. 왕검이 덕을 베풀고 백성을 사랑하므로 영토가 점점 넓어졌다. 여러 지역 왕검이 와서 방물을 바쳤고, 귀화하는 자가 천여 명이었다. 그 뒤 460년이 지나 신인神人 왕검이 출현하여 백성에게 신망을 크게 얻어 비왕裨王(부왕)에 올라 24년간 섭정하였다. 웅씨 왕이 전쟁에서 죽자 왕검이 드디어 그 자리를 계승하여 구환九桓을 통일하였다. 이분이 단군왕검이시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3. 삼한으로 다스린 단군조선

고조선의 삼한관경제

단군조선 시대에도 신교의 ‘삼신오제사상’을 현실의 인사제도에 그대로 적용하여 삼한오가三韓五加라는 국가통치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단군왕검께서는 천지인의 삼신 문화에 입각하여 나라를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이 삼한관경제는 고조선 역사와 문화의 핵심을 헤아리는 결정적이고 중대한 열쇠입니다. 상제님의 아들인 대단군이 태일太一의 천자로서 중앙의 진한을 다스리고 두 명의 부단군이 각각 천일天一과 지일地一이 되어 천자를 보필하여 마한과 번한을 다스렸습니다. 번한, 마한도 역시 진한처럼 수도가 있었고 삼한오가의 중앙 행정조직을 운영하였습니다. 수도를 아사달 또는 왕검성이라 불렀는데 고대에 아사달과 왕검성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군데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先是(선시)에 區劃天下之地(구획천하지지)하사 分統三韓(분통삼한)하시니 三韓(삼한)에 皆有五家六十四族(개유오가육십사족)이러라.

역주 이에 앞서 왕검께서 천하의 땅을 일정한 지역으로 경계를 정해 삼한三韓 으로 나누어 다스리셨다. 삼한에는 모두 5가五家 64족六十四族이 있었다. (「단군세기」)

地有三韓(지유삼한)하야 爲辰弁馬三京之韓(위진변마삼경지한)하니 韓(한)은 卽皇也(즉황야)오
皇(황)은 卽大也(즉대야)오 大(대)는 卽一也(즉일야)라.

역주 그러므로 땅에 삼한이 있으니, 삼한은 삼경三京이 있는 진한辰韓·변한弁韓·마한馬韓을 말한다. 한韓은 역사의 통치자인 황皇(임금)이라는 뜻이 있다. 이 황은 크다[大]는 뜻이며, 크다[大]는 것은 (시작과 뿌리와 통일을 의미하는) 하나[一]라는 뜻이다[한韓 = 황皇 = 대大= 일一]. (「단군세기」)

遂與三韓(수여삼한)으로 分土而治(분토이치)하실새 辰韓(진한)은 天王自爲也(천왕자위야)시라 立都阿斯達(입도아사달)하시고 開國(개국)하사 號朝鮮(호조선)하시니 是爲一世檀君(시위일세단군)이시오 阿斯達(아사달)은 三神所祭之地(삼신소제지지)로 後人(후인)이 稱王儉城(칭왕검성)하니 以王儉舊宅(이왕검구택)이 尙存故也(상존고야)니라.

역주 마침내 삼한으로 영토를 나누어 다스릴 때 진한辰韓은 천왕께서 친히 맡아서 통치하셨다. 도읍을 아사달에 세우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하니, 이분이 바로 1세 단군이시다. 아사달은 ‘삼신께 제사 지내는 곳’으로 후세 사람들이 왕검성王儉城이라 불렀는데, 그 까닭은 왕검의 옛 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단군세기」)

삼한오가의 조직문화와 지방자치조직

‘복신시구규復神市久規’(「삼성기 상」)라는 기록대로 옛 조선은 배달국의 통치제제를 그대로 계승하였습니다. 배달국보다 더 분화되고 체계화되었지만 삼백오가 조직의 큰 틀은 고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됩니다. 47세 고열가 단군께서 보위를 내려놓고 입산하시고, 해모수가 옥새를 양위받기까지 6년 동안 오가에 의해 공화정이 실시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는 고조선에서 운영되었던 지방 자치제도에 대해서 언급한 기록이 나옵니다. 각 읍락에서 자체적으로 삼사三師와 육정六正을 운영했다는 기록이 그것입니다. 중앙의 삼한오가와 유사한 조직을 각 읍락에서 그대로 운영한 것입니다.

彭虞(팽우)하사 闢土地(벽토지)하시며 成造(성조)로 起宮室(기궁실)하시며 高矢(고시)로 主種稼(주종가)하시며 臣智(신지)로 造書契(조서계)하시며 奇省(기성)으로 設醫藥(설의약)하시며 那乙(나을)로 管版籍(관판적)하시며 羲(희)로 典卦筮(전괘서)하시며 尤(우)로 作兵馬(작병마)하시니라

역주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토지를 개척하게 하시고,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하시고, 고시高矢에게 농사일을 맡게 하시고, 신지臣智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시고, 기성奇省에게 의약을 베풀게 하시고, 나을那乙에게 호적을 관장하게 하시고, 희羲에게 괘서卦筮를 주관하게 하시고, 우尤에게 병마兵馬를 담당하게 하셨다. (「삼성기 상」)

諸邑落(제읍락)이 皆自設三老(개자설삼로)하니 三老(삼로)는 亦曰三師(역왈삼사)라 有賢德者(유현덕자)와 有財施者(유재시자)와 有識事者(유식사자)를 皆師事之(개사사지)가 是也(시야)오. 又有六正(우유육정)하니 乃賢佐忠臣(내현좌충신)과 良將勇卒(양장용졸)과 明師德友(명사덕우)가 是也(시야)라.

역주 모든 읍락이 자체적으로 삼로三老를 두었는데, 삼로를 삼사三師라고도 하였다. 어진 덕이 있는 자[賢德者]와 재물을 베푸는 자[財施者], 사리를 잘 아는 자[識事者]를 모든 사람이 스승처럼 섬기는 것이 그것이다. 또 육정六正이 있었는데, 어진 보필자[賢佐]와 충신[忠臣]과 뛰어난 장수[良將]와 용감한 병사[勇卒]와 훌륭한 스승[明師]과 덕 있는 친구[德友]가 그것이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삼한에서 삼조선 체제로 변경

6세 단군 때 신지 발리의 예언대로 고조선의 국운은 삼한관경제와 그 성쇠를 같이합니다. 22세 색불루 단군 때 잠시 위기를 겪고 ‘삼조선 체제’로 변경하였으나 ‘삼한관경제’의 틀은 유지되었습니다. 결국 43세 물리 단군 때 삼한관경제를 완전히 붕괴시키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바로 사냥꾼 우화충의 반란입니다. 백민성白民城 욕살 구물丘勿이 장당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진압하고 피란 중 붕어하신 물리 단군을 대신하여 44세 단군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정권을 잡은 구물 단군은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바꾸고 두 조선에도 병권兵權을 나눠주게 됩니다. 이전의 분조관경제分朝管境制에서 분권관경제分權管境制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중앙의 진조선이 통제력을 잃었고 막조선, 번조선이 진조선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저울에 비유되었던 삼한관경제는 완전 붕괴되었고 이후 고조선은 급속히 쇠망의 길로 떨어집니다.

三韓(삼한)은 有分朝管境之意(유분조관경지의)오 三朝鮮(삼조선)은 有分權管境之制也(유분권관경지제야)라

역주 삼한이라는 말에는 ‘조정을 나누어 통치한다[分朝管境]’는 뜻이 있고, 삼조선은 ‘권력을 나누어 통치[分權管境]하는 제도를 둔다’는 말이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STEP3. 나오면서


한 분 일신一神께서 세 가지 덕성으로 작용하니 삼신이라 합니다. 삼신께서는 동 서 남 북 중앙의 오방과 봄 여름 장하 가을 겨울의 다섯 시간을 관장하는 오제를 다스립니다. 1에서 3으로 다시 5로 분화되어 나가는 신교의 우주론에 따라 우리의 조직 문화에도 1, 3, 5의 정신이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요컨대 삼신오제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우리 민족은 환국에서부터 배달국, 단군조선, 북부여, 고구려, 대진국, 고려까지 국가통치조직을 만들었습니다. 하늘 원리를 그대로 인사화한 민족이기에 우리는 천손민족입니다.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삶의 궤적은 시간 속으로 흘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삶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또 오늘 우리의 모습과 발걸음이 동력이 되어 미래의 향방이 결정됩니다. 과거가 단절되고 왜곡되어 있으면 과거의 소산인 현재의 의식도 뒤틀리고, 미래를 보는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왜곡, 단절 없이 소통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현실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닥쳐오는 변혁에 대비하여 밝은 미래를 열 수 있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혼란의 난맥상, 그 깊은 곳에는 ‘역사왜곡’과 ‘역사상실’이라는 큰 병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가 개조작업 역시 그 병근病根을 도려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환단고기』라는 특급 처방약을 전수받고, 역사광복의 칼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환단고기』가 전하는 우리 역사의 본래 모습과 한문화의 원형질, 그리고 상고 시대의 조직제도와 국가 통치원리에 눈 떠야 합니다. 특히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들, 나라를 경영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이 하루 속히 『환단고기』를 통해 국가 발전의 큰 영감을 찾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신교의 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움직여 온 사상적 기반이었다. 그래서 신교가 밝히는 동방 문화의 우주관의 핵심인 삼신오제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면 잃어버린 한민족의 국통 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상고시대 한민족의 국가 통치 제도의 구성 원리를 처음으로 상세히 기록한 『환단고기』는 오늘날 국가 경영을 연구하는 데에도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92쪽)



삼한관경제三韓官境制를 노래한 서효사誓效詞

6세 단군이 여러 왕들을 상춘常春에 모아 구월산九月山에 천제를 지낼 때 신지神誌 발리發理로 하여금 제문祭文을 짓게 하였다. 나중에 이것이 신지비사神誌秘詞로 알려졌다. 

朝光先受地(조광선수지)에 三神赫世臨(삼신혁세림)이로다
아침 햇빛 먼저 받는 이땅에 삼신께서 밝게 세상에 임하셨고

桓因出象先(환인출상선)하사 樹德宏且深(수덕굉차심)이로다
환인천제 먼저 법을 내셔서 덕을 심음에 크고도 깊사옵니다.

諸神議遣雄(제신의견웅)하사 承詔始開天(승조시개천)이로다
모든 신이 의논하여 환웅을 보내셔서 환인천제 조칙 받들어 처음으로 나라 여셨사옵니다.

蚩尤起靑邱(치우기청구)하시니 萬古振武聲(만고진무성)이로다
淮岱皆歸王(회대개귀왕)하니 天下莫能侵(천하막능침)이로다
치우천황 청구에서 일어나 만고에 무용을 떨치셔서 회수 태산 모두 천황께 귀순하니 천하의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사옵니다.

王儉受大命(왕검수대명)하시니 懽聲動九桓(환성동구환)이로다
단군왕검 하늘의 명을 받으시니 기쁨의 소리 구환에 울려 퍼졌사옵니다.

魚水民其蘇(어수민기소)오 草風德化新(초풍덕화신)이로다
물고기 물 만난 듯 백성들이 소생하고 풀잎에 부는 바람처럼 덕화가 새로워졌사옵니다.

怨者先解怨(원자선해원)이오 病者先去病(병자선거병)이로다
원한 맺힌 자 원한 먼저 풀어주고 병든 자 먼저 낫게 하셨사옵니다.

一心存仁孝(일심존인효)하시니 四海盡光明(사해진광명)이로다
일심으로 인과 효를 행하시니 사해에 광명이 넘치옵니다.

眞韓鎭國中(진한진국중)하니 治道咸維新(치도함유신)이로다
진한이 나라 안을 진정시키니 정치의 도는 모두 새로워졌사옵니다.

慕韓保其左(모한보기좌)하고 番韓控其南(번한공기남)이로다
모한은 왼쪽을 지키고 번한은 남쪽을 제압하옵니다.

巉岩圍四壁(참암위사벽)하니 聖主幸新京(성주행신경)이로다
깎아지른 바위가 사방 벽으로 둘러쌌는데 거룩하신 임금께서 새서울에 행차하셨사옵니다.

如秤錘極器(여칭추극기)하니 極器白牙岡(극기백아강)이오
삼한형세 저울대 저울추 저울판같으니 저울판은 백아강이요

秤榦蘇密浪(칭간소밀랑)이오 錘者安德鄕(추자안덕향)이로다
首尾均平位(수미균평위)하야 賴德護神精(뇌덕호신정)이로다
저울대는 소밀랑이요 저울추는 안덕향이라 머리와 꼬리가 서로 균형이루니 그 덕에 힘입어 삼신정기 보호하옵니다.

興邦保太平(흥방보태평)하야 朝降七十國(조항칠십국)이로다
나라를 흥성케 하여 태평세월 보전하니 일흔 나라 조공하며 복종하였사옵니다.

永保三韓義(영보삼한의)라야 王業有興隆(왕업유흥륭)이로다
길이 삼한관경제 보전해야 왕업이 흥하고 번성할 것이옵니다.

興廢莫爲說(흥폐막위설)하라 誠在事天神(성재사천신)이로다.」
나라의 흥망을 말하지 말지니 천신(삼신상제)님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하겠사옵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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