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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관 곡옥 일본 아닌 국내산?-김철승 [포항MBC] 2018. 11. 29 

https://www.youtube.com/watch?v=PsGKkeGvrLo

 천마총에서도 흰색이 나는 곡옥들이 금관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사용된 옥들이 어디서 났는지 지금껏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일본 학자들이 일본에 옥 광산이 있는 만큼일본산일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위덕대 박홍국 박물관장은곡옥 등이 나는 원석 산지 8곳을 확인했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서산의 '천하석'과 포항의 '벽옥',원주의 '칼세도니'는 고고학계에 처음으로 보고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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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서 아프리카·중동 한국학세미나…"한류좋아 한국어 공부" https://www.yna.co.kr/view/AKR20181120161000079?input=1195m

 박유진 나이로비대 교수는 케냐에서 마니아층에서만 향유됐던 한국 대중문화가 작년에 전환점을 맞았다며 "방탄소년단(BTS) 팬이 늘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팬 페이지가 생기고 한국 영화 페스티벌 관객도 급증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한국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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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을 앞선 동양의 이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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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역사의 시원문명을 꽃피웠던 홍산문화의 유적지 우하량 에서는 채색된 상태의 삼족기三足器 즉 세발토기 문양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이것은 삼신三神의 창조변화의 정신이 문화양식으로 전화된 것 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삼족기三足器는 특히 배달시대에 삼신 사상에 뿌리를 두고 문화 양식으로 나타난  역사정신의 유물입니다. 또한 중국의 역대왕조에서도 천제를 올리는데 매우 중요한 상징적인 졔례의 도구입니다.


▶연해주 남서부 발해성에서 세발토기 발견 2018/10/25  

https://goo.gl/wUay1A

 러시아 연해주 남서부 발해성 내 저장고 유적에서 세발 달린 토기인 삼족기(三足器)가 발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와 함께 지난 8∼9월 스타로레첸스코예 평지성을 발굴조사한 결과, 흑회색 작은 항아리에 원통형 다리를 부착한 삼족기 조각을 찾아냈다고 25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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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는 신화가 아니다"…이찬구 박사 '홍산문화의 인류학적 조명' 출간 (10월 26일 미주중앙일보) 

https://goo.gl/6AbkXN

 우리 조상은 환웅의 새토템족(조이족)과 웅녀의 곰토템족(웅족)이 결합하여 이뤄진 민족이다. 우리 민족의 기원은 아버지 새토템족과 어머니 곰토템족의 결합이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5000~5500년 전이다.

이 박사에 따르면 홍산문화중에 우하량 유적이 있는데 이미 여신묘 사당에 새토템과 곰토템을 모시고 숭배한 자취가 발굴됐다. 그 시기는 5500면전 우리 민족의 역사시원이며 고향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이 박사는 "여신묘에서 나타난 우하량유지의 토템 문화는 한국의 단군신화에서 언급된 환웅 웅녀 단군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특히 우하량 유적은 여신의 신권을 중심으로 새와 곰을 토템으로 숭배한 것과 천원지방의 제단과 천제문화를 남겼다"면서 "이는 한국의 고유문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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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스리스크에서 만난 이상설과 최재형 18.10.2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82565&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충북 진천 출신인 이상설 선생은 1906년 북간도 용정으로 망명해 항일민족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세워 후학들을 길러내던 중 1907년 헤이그특사로 활약했다. 

선생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위종 선생과 함께 고종의 특사로 파견됐다. 그 뒤 1908년 연해주로 망명해 13도의군 창설과 성명회 결성, 권업회 활동 등을 앞장서서 이끌었다.

지난 25일 찾은 이상설 선생 유허비는 러시아 우스리스크시 우쪼스노예 마을 주변 수이펀강변(綏芬河, 러시아말로는 라즈돌라 노예강)의 호젓한 언덕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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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역사학대회, 이덕일 죽이기 대회? 2018.10.25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3279

 이날 역사학대회는 이런 위기의식으로 가득찬 대회였다. 어떻게 대책을 세워 타개할 것인지 토의, 토론하는 자리였다. 또 잘 나가는 일반대중역사가들을 시기, 질투하며 비난했다. 그 중에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과 유시민 작가, 이원복작가가 표적이 되었다. 특히 이들 중에서 이덕일 소장이 가장 큰 적으로 대두되었다.....이들은 일반대중역사가들에게 빼앗긴 밥그릇을 다시 찾아오는 방법에 골몰했다. 또 이덕일 등 대중역사가들은 역사가 아니니 그들이 저술한 책에 접근하지 말 것을 유도했다. 기성종교에서 신흥 종교를 이단으로 몰아 접근금지 발령을 내리는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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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백강 원장, “역사까지 온전히 찾아야 광복 2018-10-30 (화) http://www.koreatimes.com/article/1211626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 원장이 지난 27일 워싱턴대학(UW) 교양 프로그램 ‘북소리’에서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을 주제로 펼친 강연은 말 그대로 ‘울림이 있는 역사이야기’였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식민통치하면서 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두고 우리 역사의 왜곡을 주도했으며, 광복 후에도 그곳에서 일했던 인물들이 우리 역사를 정리했기 때문에 일제의 잔재가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심 원장은 “광복 7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역사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소위 강단사학자들의 주장은 일본학계의 주장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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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제국, 몽골고원서 새 기마유목민 역사 펼치다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2018.10.31) 

http://www.insigh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69

 ...위구르는 설연타, 돌궐 등에 복속하다가 8세기 초후 돌궐 혼란기를 틈타 세력을 키웠다. 744년 돌궐 제국을 멸망시키

고 쿠틀룩 빌게퀼카간이 즉위하여 위구르제국을 건설했다.

이즈음 당나라에서는 안사의 난(755~763년)이 일어난다. 현종 때 소그드 출신의 안록산과 사사명이 반란을 일으켜 ...장안을 점령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756년). ... 당나라는 반란진압을 위해 주변국들에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위구르는 강력한 기마군단을 보내 반란군을 격파하고 낙양과 장안을 수복해 당나라를 구했다. 다시 왕권을 회복한 당나라는 공주를 위구르 카간에게 시집보내고 방대한 공물로 보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위구르는 동방세계의 최강 세력으로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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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역사왜곡 대책반 실무반장이었던 성삼제 씨 (현 계명대 교수)


"그(성삼제)는 공직에 있으면서 역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에 대해 "2001년 일본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부의 대책반 실무반장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교과서에 왜곡된 역사가 많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전화도 많이 받았고 많이 만났다. 그러면서 일제 강점기에 날조, 왜곡되었던 역사가 해방 후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회복되지 않은 채 그대로 교과서에 쓰여져 있는 것에 큰 충격을 받게 됐다.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도 심각하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의 역사왜곡이 매우 심각함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고조선 역사를 연구하게 됐다." (한국타임즈 2018. 10.28)


▶성삼제를 유사역사학 퍼뜨리는 사람으로 매도한 이문영


초록불 이문영은 "교육부에서 유사역사학 퍼뜨리기에 여념이 없던 사람이, 이제는 계명대 교수라... 대체 뭘 가르치는 교수란 말인가. 성균관대에서 박사를 받았는데, 학부가 교육학이었으니 교육학 박사를 받은 건가..."라고 유사역사학 퍼뜨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사람으로 적었다.


▶교육부 관료들의 강력한 요구로 들어간 삼국 초기 왕의 재위연대 (당시 성삼제 씨는 교육부 관료)


<삼국사기>는 신라의 건국연대를 서기전 57년, 고구려는 서기전 37년, 백제는 서기전 18년으로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 믿겠다는 것이었다. 7차 교과과정(주:2002년부터)의 <국사교과서> 부터는 그 이전 왕들의 재위연대도 수록했지만 주류 사학계가 자신들의 고대사 인식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넣은 결과가 아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 참여했던 교육부 관료들이 이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강력히 요구한 결과 마지못해 수용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초기 왕들의 재위연대를 누락시킨 채 인쇄했던 일부 <국사교과서>를 폐기 처분하는 소동까지 있었다. 역사학자들이 교육부 관료들보다 저차원의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소동을 거쳐 현행 <국사교과서>의 부록에는 삼국 초기 국왕들의 재위연대가 들어갔지만 본문 서술에서는 여전히 초기 국왕들의 존재가 부인된다. 고구려는 태조왕, 백제는 고이왕, 신라는 내물왕 때 사실상 건국했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한겨레 신문 식민사관 ‘삼국사기 초기기록 허위론’ 교과서에 그대로)


▶ 임나일본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일제 관변학자들이 만든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의거하여 국사교과서에 삼국 초기 왕들의 재위연대를 넣지 않았던 (삼국 초기왕은 사실이 아니라고 믿었던) 강단주류사학자들이 유사역사학인가? 아니면 그 재위연대를 넣으라고 강력히 요구했던 교육부 관료들이 유사역사학인가?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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