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환단고기'에 해당되는 글 1527건
- 2017.10.23 황금인간과 코미타투스
- 2017.10.22 흑요석은 고조선 사람들의 '성공 조건'이었다
- 2017.10.22 천산이 있는 나라 카자흐스탄
- 2017.10.18 발굴 50주년 맞은 한국식 '명품' 청동기
- 2017.10.16 봉황과 화투패 똥광은 무슨 사이?
- 2017.10.14 개천절은 신화가 아닌 역사
- 2017.10.14 인류 최초의 문명, 주인공은 누구의 조상이었을까?
- 2017.10.14 남북, 광화문광장·평양 단군릉서 각각 개천절 행사, 북한 단군릉의 실체
- 2017.10.14 [이덕일칼럼] 이시영 선생의 역사관
- 2017.10.14 한글은 지구상의 문자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창조물 - 세계 학자들의 극찬세례
흑요석은 고조선 사람들의 '성공 조건'이었다 2017.10.22.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
[발굴 50주년 맞은 한국식 '명품' 청동기]
대전 괴정동에서 밭을 갈던 주민이 '캐낸' 유물 12점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는 동검이나 청동거울처럼 눈에 익숙한 것도 있었지만 방패모양, 칼 손잡이모양, 둥근 뚜껑모양을 한 청동기 등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것도 여러 점 포함되어 있었다.
봉황과 화투패 똥광은 무슨 사이?
[문화 속 생태] (56) 한일 양국에 상징물에 남은 봉황의 수수께끼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89290
화투짝 똥광은 봉황과 벽오동 = 화투짝 똥광 닭대가리는 봉황이고 똥이라 불리는 나뭇잎은 벽오동 나뭇잎이다. 봉황은 상상의 동물이고 대나무 열매만 먹고 벽오동 나무에만 둥지를 틀고 산다고 했다. 일본 왕실의 상징인 봉황과 오동나무를 한국 화투에서 오동을 똥이라 부르고 봉황을 닭대가리로 그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사카에서 만난 봉황 = 벽오동과 봉황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갈 무렵 오사카성 천수각을 오르는데 벽오동 나뭇잎 모양이 자꾸 눈에 띄었다. 밖에 나와 천수각을 보면서 천수각에 새겨진 벽오동 무늬는 일본 왕실의 벽오동 무늬와 같았다. 오동나무는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 집안의 공식 문장이고 일본 왕실의 문장이던 오동잎은 지금은 일본 정부 총리의 공식 문장이 되었다.
화투 똥광의 오동나무는 일본 정부의 공식 문장 그림이고 조선총독부의 공식 문장이며 오사카성 도요토미 히데요시 문장의 공식 문장이다.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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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화투에 그려진 똥광. |
봉황을 없애라 지시했던 대통령은 왜 봉황을 없애라 했을까? 한일 양국에는 왜 이렇게 봉황과 벽오동이 많을까? 일본 화투에서 한국으로 수입되면서 똥이라 불렀을까?
봉황과 벽오동은 한국인의 마음 속 깊이 새겨진 고구려 삼족오가 일본 국가대표 축구 선수 서포터스인 울트라 니폰의 가슴에 새겨진 삼족오 마크와 같은 이야기가 된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마음 속에 삼족오, 봉황, 벽오동은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까?
/정대수(우산초등학교 교사)
개천절은 신화가 아닌 역사
글 : KAIST 이민화 교수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우리 민족의 개국일이다. 그런데, 개천은 원래 단군조선이전의 배달국의 연호다. 즉 개천 1565년 무진 10월3일 단군조선의 건국 기록은 한 민족 최초의 국가인 배달국이 서기전 3898년 전에 이미 건국되었다는 의미다.
1911년 상해 임시정부는 개천절을 음력 10월3일로 정했고, 이를 계승한 대한민국은 음력이 아닌 양력 10월 3일로 변경한 것이다. 설은 음력을 아직도 쓰는데, 굳이 양력으로 바꿀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상해 임시정부의 요인들은 모두 투철한 역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라는 것이 이덕일 교수님의 주장이다. 실제 제헌국회 기록을 보면 친일 사관에 대항한 민족사관이 깊은 인식이 나온다.
작년 우리의 표지 유물인 옥기, 비파형 동검, 치, 빗살무늬토기 등으로 대표되는 홍산일대의 유적 발굴지 사진을 직접 찍어 왔다. 6000년전 방대한 마을유적이 등장하나, 5000년전 기후변화로 쇠퇴하고 4500년전(서기전 2333년) 다시 하가점 하층 문화가 등장한다.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시기와 너무나 일치한다. 번성했던 배달국이 쇠퇴한 후 단군조선으로 재건국된 내용과 일치하는 증거는 너무나 많다.
개천절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다.
인류 최초의 문명, 주인공은 누구의 조상이었을까? (2017.09.28 시사저널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71530
제5의 문명이라고 불리는 요하문명, 사실은 연대순으로 봐서는 제1의 문명인 셈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정교한 무기 및 생활 집기를 사용하는 집단생활을 했고 특정한 신앙체계를 기초로 규모가 큰 집단을 형성해서 계급분화가 일어났던 흔적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이 사실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땅 속 깊은 곳으로부터 오랜 세월 후 모습을 드러낸 유물과 유적이지만, 연대는 거의 정확히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 등 발달한 현대의 과학기술 덕분이다.
....요하문명은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유물들로만 봐도 기원전 7000년에서 기원전 1000년까지, 약 6천년 동안 융성했던 엄청난 문명이다. 그 시기의 대부분 기간 동안 현재 지구평균기온보다도 온도가 더 높았으므로 최적의 생활조건을 제공했을 것이다. 다싱안링산맥과 장백산맥에서는 삼림이 울창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깊고 유속이 빠른 강과 하류에 비옥한 농토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발해만으로 이어지는 서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풍성한 갯벌생태계와 더불어 한반도 서남부 및 중국대륙 동남부까지, 거기서 그보다 더 먼 곳까지 쉽게 진출할 수 있는 뱃길을 제공했을 것이다. 세계를 통틀어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최상의 조건이다.
남북, 광화문광장·평양 단군릉서 각각 개천절 행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9587711
북한 단군릉의 실체
[이덕일칼럼] 이시영 선생의 역사관 ① 『감시만어(感時漫語)』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900
[이덕일칼럼] 이시영 선생의 역사관➁ 독립운동가들의 바른 고대사관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902
[이덕일칼럼] 이시영 선생의 역사관(3)훈민정음 이전의 고유 문자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903
[이덕일칼럼] 이시영 선생의 역사관 (4)깊고도 넓은 역사의 세계
http://www.hmh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927
[이덕일칼럼] 이시영 선생의 역사관 (5)독립운동가에서 민주화 투사로-
한글은 지구상의 문자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창조물 - 세계 학자들의 극찬세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