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강경화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평창'의 '평'(平)이 '평화', '창'(昌)이 '번영'을 의미한다고 소개하고, "2018 평창올림픽은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한국의 노력에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복만땅] '평창'은 평화올림픽의 무대가 될 땅이었다? - 

http://m.joongdo.co.kr/view.php?key=20180112010004764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삼정검에 새겨진 '대통령 문재인'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새로 보직을 받거나 진급한 군 수뇌부의 신고를 받았습니다. 잘 알다시피 군 신고식에서 장성들은 항상 칼(검)을 들고 있으며, 대통령은 이 검에 수치라는 것을 달아줍니다.

장성들이 들고 있는 검은 '삼정검(三精劍)'이라고 부릅니다.

삼정검은 우리나라에서 준장 진급자 이상에게 수여하는 검입니다. 전두환 대통령 때부터 의례용으로 만든 검입니다. 참여정부 때인 2007년 1월부터는 '외날의 칼'을 '양날의 검'으로 바꾸면서 이름도 '삼정도'에서 '삼정검'으로 달리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삼정검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검의 앞면에 대통령 자필서명으로 각인한 '대통령 문재인'이 뚜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삼정검에 새겨진 '대통령 문재인'

그 아래에는 한자로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살려고 싸우면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죠.

'필사즉생 필생즉사'

뒷면에는 좀 어려운 한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건강정 곤원령 일월상 강전형 휘뢰전'의 한자입니다. 옥편에서도 찾기 쉽지 않은 한자들인데, '하늘은 정(精)을 내리시고 땅은 영(靈)을 도우시니 해와 달이 모양을 갖추고 산천이 형태를 이루며 번개가 몰아치도다'라는 의미입니다.

또 '운현좌 추산악 현참정'도 각인돼 있는데 이는 '현좌(玄坐)를 움직여 산천의 악한 것을 물리치고 현묘한 도리로서 베어 바르게 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 삼정검의 모델은 양날의 검인 조선 시대 '사인검(四寅劍)'입니다. '호랑인 인(寅)'자가 들어간 특별한 검이었습니다. 네 마리의 호랑이가 포효한다는 보검으로서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호랑이 기운을 받아 제작했다는 검이라고 하네요.

조선 시대의 사인검

위의 뒷면에 들어간 긴 한자가 바로 사인검에 신령한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새기던 주문(呪文)입니다.

칼집에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과 무궁화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신고식에서 대통령은 '수치'(綬幟)'라는 것을 검에 달아줍니다. 수치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유공 단체를 포상할 때 달아주는 끈으로 된 깃발'입니다. 검에 달아주는 수치에는 장성의 보직과 이름, 임명 날짜 그리고 수여할 당시의 대통령 이름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수치를 달아주는 모습

이날 참석자들은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삼정검에 새겨진 주문대로 호랑이의 기운을 제대로 받아 곧고 용맹한 장군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dohh@yna.co.kr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백두산, 동아시아 판세를 바꾸다 (이진아 2018.01.10 시사저널) http://v.kakao.com/v/20180110081105135
빙하기 이후 1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선진적이며, 당연히 가장 파워도 컸던 인간 집단이 살던 곳이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 토기도 철기시대 도구도 세계 다른 지역에 비해 몇 천 년 이상 앞서가는 선진지역이었다. 그러다가 서기 600년대 후반부터 약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서 1000년 무렵에는 그 이전시대 내내 훨씬 후진된 지역이었던 중국에도 눌리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도대체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가장 크고 직접적인 계기가 백두산 폭발이라는 거대 환경재앙이었다고 본다. 이건 새로운 견해는 아니다. 서기 800~900년대에 있었던 백두산 폭발은 발해의 멸망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은 심심치 않게 나왔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1911년 한민족의 정통 사서 『삼성기 상』, 『삼성기 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이 다섯 권의 책을 이기 선생이 감수하고, 계연수 선생이 옮겨 적고 합본하여 『환단고기』라 정명하고 초간본 30권을 발간합니다. 이때 여천 홍범도 장군과 송암 오동진 장군은 자금을 지원하여 환단고기 초간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홍범도 장군, 환단고기 역사서 편찬에 참여하다 (홍범도 다큐 中, (6분) 

https://www.youtube.com/watch?v=VRPSlqRJq5k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한국이 '스키 종주국'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http://v.sports.media.daum.net/v/20170716161029100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팟빵]역사이다

NEW UPLOAD 


▶삼한과 삼조선 


🗻 남삼한을 통해 북삼한을 복원하고,

삼한과 삼조선 시대의 변화상을 살펴봅니다!


☞ 역사 발전단계를 역행하는 교과서 역사

☞ 대한민국은 어디서 왔는가?

☞ 고종황제와 심순택의 대화

☞ 고종이 계승하고자 했던 삼한은 무엇인가?

☞ 고종실록에 등장하는 삼한의 정체

☞ 남삼한에 갇혀있는 식민사학

☞ 하늘의 정신을 땅에 실현했던 웅대한 역사를 목격하다!

☞ 우리는 단군의 후예가 아니라 진국의 후예다?

☞ 영토를 축소하기 위해 만들어낸 식민사학의 주장

☞ 삼한에 관련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업적

☞ 전삼한을 인정한 대표적인 학자

☞ 전후삼한고는 무엇인가

☞ 남삼한으로 북삼한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 

☞ 고려 때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을 논하다!

☞ 삼한관경제의 균형을 다각도로 살펴보다


역사이다 팟캐스트 듣기

http://podbbang.com/ch/13321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3수 분화의 세계관 동북아 모태문화 유라시아 모태문화 (우실하 저 | 소나무 | 2012년 02월 10일) http://www.yes24.com/24/Goods/6426007?Acode=101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28]은 장대한 체구의 무인(武人)이었다고 한다. 노나라군이 유인계략에 속아 상대편 성 안에 갇힐 위기에 처하자, 아래로 내려오는 성문[29]을 그냥 팔로 받쳐서 아군을 달아나게 했을 정도로 힘이 좋았다고 한다. 뒤에 태어날 공자 역시 아버지 숙량흘을 닮았는지 그 또한 체구가 좋았다. 숙량홀의 키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 것(10척이라는 이야기는 있다.)과 달리 공자의 키는 9척 6촌이었다고 정확히 전해진다. 도량형이 명확하지 않지만, 당대의 거구인 것은 확실하다. 자로가 아직 공자의 제자이기 이전, 그저 글귀나 읽는 비리비리한 서생인 줄 알고 쳐들어갔다가 이 장대한 기골에 기세가 꺾였다고 한다.

숙량흘은 딸만 9명을 낳는 바람에 둘째 부인을 들여서 겨우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들은 몸에 장애가 있었다. 이름이 맹피(孟皮)였는데, 맹은 서장남의 뜻을 지닌다. 절름발이로 추정된다. 논어에 형의 딸을 공자가 시집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실존성이 입증된다.

결국 숙량흘은 60대에 무당의 16살짜리 무녀(巫女) 안징재를 부인으로 들인다. 안씨 집안에서는 3명의 딸이 있었다고 하는데[30], 숙량흘이 셋 중 하나를 아내로 맞으려 하자, 막내딸 안징재가 스스로 나서서 숙량흘의 아내가 되었다. 결국 공자를 낳았으니 안징재는 영험한 무녀였던 모양이다.

숙량흘과 안징재는 노나라 수도 곡부 인근의 니구산(尼丘山)에서 살았다. 안징재만 거기서 살고 숙량흘은 가끔 찾아오는 형식. 얼마 후 안징재는 공자를 낳았다. 사마천은 사기 공자세가에서 공자의 탄생을 야합(野合)이라고 표현했는데, 도올 김용옥은 이를 말 그대로 '들에서 했다'라고 설명한다. 즉,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비공식적 관계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공자는 거의 사생아나 다름 없었다. 공자에 대한 각별한 존경심을 품은 사마천이 이 정도로 표현한 걸 보면 딱히 미화시킬 방법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라는 건 잘못된 해석이다. 사마천은 굉장히 함축적인 의미로 글을 썼다. 숙량흘이 안징재와 혼을 올릴 당시 그의 나이는 66세었는데, 우선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결혼이라는 설과 한의학적으로 64세까지만 남자가 정기가 있는데 그걸 지났기 때문에 야합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설이 있다. 66세에 여자를 들인 숙량흘을 '조야하다', 즉 '천하고 보기 좋지 못하다'라고 했는데 이를 줄여서 '야'라고 사마천은 일컬었고 좋지 못한 만남에서 나왔다라는 뜻의 야합이생일(野合而生)이라고 보는게 맞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역사를 읽는 것은> 

 역사는 과거사를 정직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올바른 중국 고대사가 못 된다고 합니다.


 「사기」의 30세가世家 70열전列傳에는 약 15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중의 약 130여 명이 사마천과 같은 비극의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기」를 읽는 것은 중국 고대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사마천을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는 역사가가 역사적 사실을 선별하고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 신영복, <담론>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기후변화와 중국·한국의 왕조 교체 아웃라인. 클리프 해리스&랜디 맨, ‘Global Temperature’ 게재 그래프로부터 재구성. © 이진아 제공

 

한반도에서는 어땠을까? 900년대부터 1300년대까지의 온난기인 ‘중세 온난기’동안 유럽에서는 인구 폭발을 가져왔을 정도로 식량생산성이 높았고, 유럽인들이 주도하는 지중해 교역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번창했었다. 그 이전 온난기인 ‘로마시대 기후최적’ 동안 유럽 못지않은, 아니 여러 모로 유럽을 훨씬 능가하는 번영을 구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해양족들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을까?

이 시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서기 원년부터 500년 정도에 걸쳤던 로마시대 기후최적기 당시보다는 훨씬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아무리 중국에 의해 역사왜곡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정도 번영을 구가했다면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구석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기록은 정반대의 상황을 전해준다. 한동안 잘 나가던 발해는 900년대 들어서면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해서 926년 거란족의 요나라에 의해 붕괴되고 만다. 당나라까지 동원, 국권을 튼튼히 하려했던 신라는 약 200년 후인 800년대 말에 위기를 맞고, 후삼국시대로 분열됐다가, 936년 이 모두를 통합한 왕건의 고려가 세워지면서 종말을 맞는다.

고려는 하대 신라에 비해서는 해상활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이나, 이전 시대의 가야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띠는 것은 이때쯤부터는 한반도 국가의 국격이 중국에 비해 많이 낮아졌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들이 적잖이 있다는 점이다. 이어지는 한랭기에 세워졌던 조선보다는 나았을지 몰라도, 한반도 국가는 고려 때부터 중국에 밀리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준다.

서기 900년 무렵, 중세 온난기로 불리는 온난기가 다시 지구상을 덮었다. 빙하기 이후 1만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반도에 그렇게도 풍성한 혜택을 베풀어주었던 온난기가 온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국가들은 예전의 위용을 되찾기는커녕, 오랜 세월동안 비교적 열세에 있었던 중국에 오히려 눌려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무엇 때문일까?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