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테마로 읽는 환단고기] 역사를 바꾼 북방민족

오늘의 한민족은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이다. 그리하여 몸은 한민족이되 자신의 정신과 문화를 모르는 무국적자로 살고 있다. 환단고기는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찾는 역사경전이요 문화경전이다. 환단고기를 통해 한민족의 원형문화를 추적해보자. 


STEP1. 들어가기



아틸라의 보검

1973년 신라의 고도 경주의 계림로 공사 때 세상을 놀라게 한 유물이 하나 발굴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보물 635호로 지정되어 있는 금제감장보검입니다. 석류석과 유리, 황금으로 장식한 이 보검은 금으로 테두리를 만들고 그 사이에 유리나 보석을 박아 넣는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철제 칼집과 칼은 썩어 없어져버리고 36㎝의 칼 손잡이 부분의 금으로 된 장식만이 남아 있습니다. 맨 위의 납작한 판에 삼태극 무늬가 선명한 이 칼은 우리나라의 보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보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칼은 로마의 트라키아(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지역) 지방에서 4~5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당시 그 지역을 다스리던 아틸라 왕의 이름을 따 아틸라 보검이라 불리는 이 칼이 트라키아로부터 8천㎞ 떨어진 신라 땅에서 발견된 연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보물은 무역상에 맡겨 북방 초원을 통과시켜 신라에 전하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라의 사절이 트라키아에 가서 받아왔든지 아니면 트라키아의 사절이 직접 신라에 와서 전해주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것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방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상호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

북방에서 내려온 신라와 가야


1973~1974년에 발굴된 천마총, 황남대총은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의 전형입니다. 장례식과 묘제墓制는 어느 민족이든지 잘 변하지 않으므로 민족의 계통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서입니다. 이 적석목곽분은 경주지역에서 4세기 초에 갑자기 나타납니다. 이런 묘제를 가진 종족이 외부에서 침입했거나, 혁명적으로 득세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 무덤 속에서 발굴된 금관, 금허리띠 등 많은 금세공품 역시 디자인이 북방 유목문화의 것이었습니다. 적석목곽분엔 중국식 물건이 거의 없는 반면 몽골 초원 문화를 이어받은 유물들과 로마지역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 제품이나 공예품들이 많습니다. 이는 신라 지배층이 몽골고원-중앙아시아-흑해로 이어지는 초원의 길을 통해서 서양문명세계와 무역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낳게 합니다. 가야가 있었던 지역에서도 말안장, 동복, 요대 등의 기마민족의 유물이 대거 발견되고 있습니다. 부장품을 들여다보면 중무장한 기사騎士가 떠오릅니다. 유물 가운데 청동제 솥인 동복銅鍑은 흉노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제사의식을 치르기 위해 말에 싣고 다니던 제기로, 유럽의 훈족 루트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신라와 가야는 북방 흉노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 민족과 북방 민족들과의 혈통, 문화적인 연관 관계를 『환단고기』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STEP2. 환단고기가 밝혀주는 북방민족의 기원



1. 유럽을 뒤흔든 흉노족

흉노의 기원

흉노족은 선우를 ‘탱리고도撑犂孤塗 선우’라고도 불렀는데, 탱리撑犂는 ‘하늘’을 뜻하는 흉노어 ‘텡그리tengri’의 음역이고, ‘고도孤塗’는 아들을 의미합니다. 곧 탱리고도는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를 의미합니다. 동이족의 천자사상과 일치합니다. 흉노는 천지와 일월을 숭배하고, 나아가 조상을 숭배하며, 일 년에 세 번 큰 제사를 지냈습니다. 선우는 매일 해와 달에게 절하고 자신이 거처하는 게르(천막집)의 문도 항상 동쪽을 향해 배치하였습니다. 이처럼 문을 동향으로 한 것은 동쪽을 중시하는 동이족의 관습과 일치합니다. 세계사에서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던 흉노의 기원에 대해서 유일무이하게 밝혀주는 사서가 바로 『환단고기』입니다.

甲辰六年(갑진육년)이라 命列陽褥薩索靖(명열양욕살삭정)하사 遷于弱水(천우약수)하시고 終身棘置(종신극치)러시니 後(후)에 赦之(사지)하사 仍封其地(잉봉기지)하시니 是爲凶奴之祖(시위흉노지조)라.
역주 재위 6년 갑진(단기 157, BCE 2177)년, 임금께서 열양列陽 욕살 삭정索靖을 약수弱水 지방에 유배시켜 종신토록 감옥에 가두셨다. 후에 용서하여 그 땅에 봉하시니, 흉노凶奴의 시조가 되었다.(「단군세기」 3세 오사구 단군)

丙辰五年(병진오년)이라 凶奴(흉노)가 入貢(입공)하니라.
역주 재위 5년 병진(단기 1429, BCE 905)년, 흉노匈奴가 공물을 바쳤다. (「단군세기」30세 내휴단군)

戊寅(무인)에 匈奴(흉노)가 遣使番韓(견사번한)하야 求見天王(구현천왕)하고 稱臣貢物而去(칭신공물이거)하니라.
역주 무인(단기 1691, BCE 643)년 흉노가 번한에(52세 엄루왕 때) 사신을 보내어 천왕을 뵙기를 구하고, 스스로 신하라 칭하고 공물을 바치고 돌아갔다. (『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흉노의 좌우현왕 제도

묵특선우는 흉노 제국을 신교 삼신문화의 고향인 고조선과 같이 셋으로 나누어다스렸습니다. 즉 자신은 중앙을 통치하고 동쪽은 좌현왕이, 서쪽은 우현왕이 통치하게 했던 것입니다. 좌현왕은 우현왕보다 우대되었는데 보통 선우의 아들을 좌현왕으로 삼았습니다. 좌현왕을 좌도기왕左屠耆王이라고도 하였는데, 항상 선우의 태자를 좌현왕으로 임명하였고, 선우의 유고有故 시 그 자리를 계승하였습니다. 흉노의 좌우현왕 제도는 사마천의 『사기』 「흉노열전」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기』 「흉노열전」에는 “좌우현왕, 좌우곡리왕, 좌우대장, 좌우대도위, 좌우대당호, 좌우골도후를 두었다. 흉노에서는 ‘현賢’을 일러 ‘도기屠耆’라 하기 때문에 항상 태자를 좌도기왕으로 삼았다[置左右賢王, 左右谷蠡王,左右大將, 左右大都尉, 左右大當戶, 左右骨都侯. 匈奴謂賢曰‘屠耆’, 故常以太子爲左屠耆王.]”라고 하였습니다.

역사를 바꾼 흉노족

흉노는 그 수가 계속 늘어나 진나라 때 와서는 이미 오르도스와 몽골고원, 천산산맥 일대를 주름잡고 있었습니다. 한나라 초기 묵특선우冒頓單于(BCE 209~BCE 174) 때 서쪽의 월지와 동쪽의 동호東胡(번조선)를 격파하고 아시아 최초로 유목 대제국을 세웠습니다. 그후 내분으로 남·북흉노로 분열하게 됩니다. 이 중 북흉노는 사라진 듯 했지만 4세기 중반에 갑자기 ‘훈Hun’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훈족은 370년경 흑해 북부에 나타남으로써 처음으로 유럽에 그 존재를 알렸습니다. 이들은 볼가 강을 건너 남러시아 초원지대에 거주하던 알란족을 공격했고, 이어 알란족과 함께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을 공격하여 유럽 대륙에 민족이동의 대물결을 야기하였습니다. 공포에 질려 도주한 게르만족이 밀물처럼 로마 국경 안으로 몰려들자 이를 제어하지 못한 서로마 제국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신라 김씨의 시조는 흉노의 태자

훈족의 이동으로 서쪽에서 새 역사의 물결이 일고 있었을 때 흉노의 또 다른 이동이 동쪽에도 있었습니다. 때는 한 무제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 무제가 흉노를 공략할 때 흉노 좌현왕의 아들이 자기 어머니와 함께 한나라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왕자는 궁궐의 말을 돌보는 일을 맡았는데, 품위 있는 거동과 성실함이 한 무제의 눈에 띄어 무제의 측근이 되었습니다. 이 흉노 왕자의 이름이 김일제金日磾입니다. 뒤에 무제는 망하라莽何羅의 반란을 막은 공을 치하하여 그를 ‘투후秺侯’로 봉하였습니다. 투후는 ‘오르도스의 제후’라는 뜻입니다. 김일제의 후손인 성星은 문무왕의 비문에 나오는 15대조 성한왕星漢王으로 추정합니다. 혹자는 성한왕을 경주에 들어온 김알지金閼智로 비정합니다. 김일제의 후손 중에서 왕후(전한 11세 원제元帝의 비 효원왕후)도 배출되었습니다. 전한을 무너뜨리고 신新을 건국한 왕망王莽은 김일제의 현손玄孫이라 합니다. 외척인 김일제 가문은 왕망이 정권을 잡으면서 최고의 권세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왕망이 몰락하자 위험한 처지에 몰렸습니다. 정확한 경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후에 이들은 한반도로 망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무왕비 비문과 중국 서안西安에서 발견된 당나라 시대의 묘비명에 김일제가 신라 김씨 왕가의 조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1세기 초 한나라에서 망명한 김일제의 후손이 신라와 가야에 들어와서 왕권을 잡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2. 유라시아를 아우러는 대제국 몽고


몽고의 기원

원래 몽고蒙古라는 이름은 중국 사람들이 몽골을 비하하기 위해 ‘우매할 몽(蒙)’과 ‘옛 고(古)’를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당나라 때 처음 몽와, 몽골이라는 명칭이 나타납니다. 현재 몽고의 공식 국가명칭이 몽골리아(MONGOLIA)이고 민족이나 민족어를 지칭할 때 몽골(MONGOL)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몽골(Mongol)은 원래 ‘용감한’이란 뜻을 지닌 부족어였으나, 칭기즈칸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전체 몽골인과 몽골어를 지칭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몽골의 기원에 대해 『환단고기』에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甲申元年(갑신원년)이라. 封皇弟烏斯達(봉황제오사달)하사 爲蒙古里汗(위몽고리한)하시니
或曰今蒙古族(혹왈금몽고족)이 爲其後云(위기후운)이라
역주 오사구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신(환기 5061, 신시개천 1761, 단기 197, BCE 2137)년이다. 임금께서 아우 오사달烏斯達을 몽고리한蒙古里汗으로 봉하셨다. 혹자는 지금의 몽골족이 그 후손이라 말한다. 「( 단군세기)」

乙酉二年(을유이년)이라 藍國君今達(남국군금달)이 與靑邱君(여청구군)과 句麗君(구려군)으로 會于周愷(회우주개)하고
合蒙古里之兵(합몽고리지병)하야 所到(소도)에 破殷城O(파은성책)하고 深入奧地(심입오지)하니라
역주 재위 2년 을유(단기 1098, BCE 1236)년, 남국 왕 금달今達이 청구국왕, 구려국 왕과 더불어 주개周愷에서 만나 몽고리의 군대와 합세하여 이르는 곳마다 은나라 성책을 부수고 오지奧地로 깊숙이 들어갔다. (「단군세기」 23세 솔나단군)

몽고의 풍습

흉노, 선비, 거란, 돌궐, 몽골은 본래 동북아 초원에 살던 다양한 유목족 가운데 일부였으나 인근 부족들을 통합하면서 각 시대별 초원 제국의 호칭이 되었습니다. 몽골은 흉노의 일부, 선비·돌궐·거란의 일부로 내려오다가 13세기에 마침내 유목 민족을 통일하여 몽골 제국[元]을 건설하였습니다. 최근 몽골 지역 답사 내용을 보면 몽골 문화가 동방고조선 민족의 신교 문화와 같은 뿌리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백색 숭상, 천제天祭 문화, 고수레·돌장승·깃털 장식·씨름·샤먼 의식 등의 풍속, 청동기·빗살무늬 토기 등의 유적 유물, 몽골 반점, 용모, 언어, 설화, 신앙 등이 우리 한민족과 혈통적 친연성과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한 동일문화권입니다. 예를 들어 몽골의 뿌리 깊은 민간 신앙인 ‘오보’는 우리의 서낭당과 같고, 오보 제祭는 소도 제천 풍속과 같습니다. 

몽골인은 산을 신성시하여 산에 제를 지냈는데 칭기즈칸도 부르칸칼둔 산에 피신하였을 때 매일 그 산에 제를 올리고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몽골인들은 또 술을 마시기 전에 손가락으로 술을 세 번 튕기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고조선의 고수레와 유래가 같은 것입니다. 돌탑 주위를 탑돌이 하면서 세 바퀴 돌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믿음도 있었는데, 이 또한 우리의 3수 신앙과 비슷합니다. 몽골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는 달구(달구지), 말루(마루), 정지(부엌), 인두(인두), 오루가(올가미) 등 우리말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또 왼쪽과 오른쪽을 우리말과 같이 왼쪽, 오른(바른)쪽이라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5부족인 소노부消奴部·계루부桂婁部·절노부絶奴部·관노부灌奴部·순노부順奴部가 몽골에서는 동·서·남·북·중앙을 지칭하는 말이라 합니다. 그 밖에 몽골 아이들의 놀이 가운데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굴렁쇠 놀이가 있고, 속담에 “처녀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문지방을 밟는 것을 금하는 것 역시 우리 풍속과 동일하며 오방신장五方神將의 관념까지 같습니다. 

몽고의 정복사업

12세기 몽고초원은 부족간에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206년 테무친(칭기즈칸)은 마침내 초원의 패자로 등극하였고 부족간의 싸움도 막을 내렸습니다. 1211년 금나라 원정을 시작하여 화친을 맺었고, 1218년 몽골제국의 첫 분권 왕조인 오고타이 한국을 세웁니다. 1220년에는 서역의 호라즘 제국과 여진족의 금나라를 멸망시킵니다. 1225년 이란, 이라크, 아르메니아, 러시아 지역까지 정복한 후 돌아와서 네 아들들에게 사한국四汗國으로 분할 통치하도록 하였습니다. 1227년 서하西夏 원정 도중 칭기즈칸은 질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이 뒤를 이어 1234년에 금을 멸망시킵니다. 1235년에 칭기즈칸의 손자인 바투가 유럽을 원정하였고, 1258년에는 바그다드를 정복하여 아바스 왕조를 멸망시켰으며, 1259년에는 서아시아를 침공하여 일한국을 건설합니다. 1259년에는 고려를 점령하여 속국으로 만듭니다. 1271년 드디어 쿠빌라이가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인 원 나라를 건설하였고, 1279년엔 남송南宋을 멸망시킵니다. 칭기즈칸 시대에 정복한 땅은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히틀러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더 넓었습니다. 칭기즈칸이야말로 세계 역사 최초로 지구촌경영의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3. 선비와 돌궐 그리고 거란, 여진족

중국 수·당의 뿌리, 선비족


『후한서』에는 선비와 오환을 모두 동호東胡(번조선)의 후예라 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선비는 고조선에 속한 족속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선비족의 발상지를 『위서魏書』에서 대선비산大鮮卑山으로 꼽았는데, 이 대선비산이라는 산 이름에서 선비족이라는 족명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북흉노가 1세기말 멀리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떠나 버리자 흉노의 본거지이던 몽골 고원은 일시적으로 공백지대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흉노의 지배를 받았던 여러 유목 집단이 초원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고, 결국 선비족鮮卑族이 패권을 잡고 북방 지역을 통일하였습니다. 선비족의 기원은 고조선에 속한 동북 지방이었습니다. 중원에서 위진魏晉 제국이 붕괴하여 혼란에 빠지자 선비족이 그 틈을 이용하여 대거 남하하였는데 이로써 5호胡 16국國 시대가 열립니다. 5호 16국의 분열을 통일한 수나라와 그를 무너뜨린 당나라 역시 그 기원이 선비족에 있습니다.

己未四十年(기미사십년)이라 封皇弟代心(봉황제대심)하사 爲南鮮卑大人(위남선비대인)하시니라.
역주 재위 40년 기미(단기 712, BCE 1622)년에 아우 대심代心을 남선비국南鮮卑國의 대인으로 봉하셨다. 「( 단군세기」16세 위나단군)

甲寅三年(갑인삼년)이라 鮮卑山酋長們古(선비산존장문고)가 入貢(입공)하니라.
역주 재위 3년 갑인(단기 1487, BCE 847)년에 선비산鮮卑山 추장 문고們古가 공물을 바쳤다. 「( 단군세기」32세 추밀단군)

돌궐의 후예 터키


단군세기에는 돌궐계인 ‘강거康居’에 대한 기록도 나옵니다. 3세 가륵 단군이 지백특支伯特에서 강거의 반란을 토벌하였다는 것입니다. 지백특은 티베트를 가리키는데, 18세 동엄 단군 때 지백특 사람이 공물을 바치러 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조선의 활동 영역이 티베트 인근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양 고대사와 서양 중세사에 큰 영향을 미친 민족인 ‘투르크Turk’족이 바로 돌궐突厥족입니다. 투르크족은 6세기 중반에 서쪽으로 카스피해에서, 동쪽으로 몽골과 만주에 이르는 광대한 유라시아 초원에 강력한 제국을 세웠습니다. 오늘날 터키Turkey라는 나라 이름도 바로 이 투르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돌궐족은 원래 몽골족 국가인 유연柔然에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이 돌궐족이 553년에 유연을 멸망시키고 돌궐 국가를 세웠습니다. 이후 돌궐의 후예들은 북방의 초원을 떠나 차츰 서진하여 이란 지역에 가즈나 왕조(975~1187)를 세우고, 11세기에는 동로마 제국으로 침투하여 셀주크 투르크 제국을 세워(1037)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지배하였습니다. 13세기의 마지막 해, 1299년에는 오스만 투르크 왕조를 세우고 14세기 말에는 발칸 반도까지 장악하였습니다.

요나라를 세운 거란

거란이 세운 요遼나라의 정사인 『요사遼史』 「세표世表」에 거란이 생겨난 유래에 대해 상세히 전합니다. “흉노 모돈(묵돌)에게 패한 동호東胡는 선비산에서 보전하고 있었는데 선비씨라 하였다. 그 후 모용씨의 연이 선비를 파하자 그 부部를 나누어 우문·고막해·거란이라 하였다. 거란의 이름이 이에 비로소 생겨났다[後爲冒頓可汗所襲, 保鮮卑山以居, 號鮮卑氏. 旣而慕容燕破之, 析其部曰宇文, 曰庫莫奚, 曰契丹.]”라고 하였습니다. 동호는 BCE 2백 년경, 한 고조 유방을 굴복시킨 흉노의 대영웅 묵돌선우(묵특선우)에게 멸망당하여 오환산과 선비에서 숨어 보전하며 오환·선비족이 되었습니다. 이 선비족에서 거란이 나왔습니다. 고막해·거란족은 후세에 몽골족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거란 부족의 시조에 대해 『요사遼史』 「지리지地理誌」 영주永州 조에서는 “전설에 따르면, 한 신인神人이 흰 말을 타고 마우산으로부터 토하(노합하)를 따라 동쪽으로 갔고, 한 천녀天女는 푸른 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평지송림으로부터 황하潢河(황수=서요하)를 따라 내려왔다. 목엽산木葉山에 이르러 두 강이 합류하니 서로 만나 배필이 되어 여덟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 뒤로 족속이 점차 번성해져 팔부로 나뉘었다[相傳有神人乘白馬, 自馬盂山浮土河而東, 有天女駕靑牛車由平地松林泛潢河而下. 至木葉山, 二水合流, 相遇爲配偶, 生八子. 其後族屬漸盛,分爲八部.]”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보면 거란족이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옛 고리국稾離國 일대를 근거로 하여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고리국은 북부여 시조 해모수와 후북부여(졸본부여)를 세운 동명왕 고두막한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진 때 오경五京의 하나인 서경압록부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요나라의 도읍인 상경임황부(지금의 요하 상류 임황)가 자리 잡았는데, 이곳은 바로 옛 고리국의 중심부였습니다. 거란 역시 분명히 조선족(한민족)의 한 갈래입니다.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훈족의 출현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서부에서 민족 대이동이 일어난 것과 거의 같은시기에 대륙의 동부에서는 또 다른 북방 민족에 의해 그에 못지않게 커다란 민족 이동이 발생하였다. 흉노와 선비족이 일으킨 이동의 파도는 유럽에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가져오고, 중국에 북방 민족이 중원을 장악한 5호16국 시대를 열었다. 또 한반도 남부와 일본에 기마민족의 정권을 성립시켰다. 한마디로 말해 동북아의 중심이었던 고조선의 문화적 자양분을 흡수하며 동북아의 북방에서 뻗어 나간 유목민의 대이동이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본문 321쪽)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


『환단고기』 「고려국본기」에서는 여진 사신의 말을 인용하여 여진의 선조가 고려 출신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금 나라의 정사인 『금사金史』 「세기世紀」를 보면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函普인데, 처음에 고려에서 왔다[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라고 하였습니다. 또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준 : 세상에서 전하기를, 옛날 평주의 승려 금준이 도망하여 여진으로 들어가 아지고촌에 살았는데 이 사람이 금나라의 선조라 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평주중 금행金幸의 아들 극수克守가 당초에 여진으로 들어가서 여진 여자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아 고을古乙이라 불렀는데, 금나라 시조 아골타가 그 후손이다’라고 한다[今俊: 世傳, 昔有平州僧今俊, 遁入女眞, 居阿之古村, 是爲金之先. 或曰‘平州僧金幸之子克守, 初入女眞, 娶女眞女, 生子曰古乙. 金祖阿骨打, 乃其後也.’]”는 기록이 있습니다.

睿宗文孝大王四年秋(예종문효대왕사년추)에 撤九城(철구성)하야 還女眞舊地(환여진구지)하니라. 
先是(선시)에 女眞(여진)이 使O弗史顯等(사요불사현등)하야 入朝奏曰(입조주왈) 昔(석)에
我太師盈歌(아태사영가)가 嘗言我祖宗(상언아조종)이 出自大邦(출자대방)하니 至于子孫(지우자손)하야 義當歸附(의당귀부)가 可也(가야)라 하더니 今太師烏雅束(금태사오아속)이
亦以大邦(역이대방)으로 爲父母之國(위부모지국)이러니 ......
역주예종 문효文孝대왕 4년(단기 3442, 1109) 가을에, 9성에서 철수하고 여진의 옛 땅을 돌려주었다. 이에 앞서 여진이 요불褭弗, 사현史顯 등을 보내 조정에 들어와 이렇게 상주하였다. “옛날에 저희 태사 영가盈歌께서 일찍이 말하기를, ‘우리 조종은 대국(고려)에서 출생하였으니 자손 대에 이르러서도 마땅히 귀부歸附함이 옳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태사 오아속烏雅束께서도 역시 대국(고려)을 부모의 나라로 삼고 있습니다. (「고려국본기」)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흉노, 선비, 돌궐 등의 북방 민족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신교 삼신문화의 천신天神사상이다. 흉노의 경우 선우는 천신의 아들로서 그 뜻을 지상에 펴는 제사장이며 대리자였다. 선우는 한나라 황제에게 보낸 문서에서 늘 자신을‘ 하늘이 세운 흉노 대선우’ 혹은‘ 천지가 낳고 일월이 세운 흉노 대선우’라칭하였다. 흉노인은 천신의 상을 만들어 받들었는데, 금으로 된 큰 신상을 모시고 하늘에 제사 지냈다는『 한서』「 흉노전」의 기록이 그것을 말해 준다. 또 흉노 사회에서는 주술과 의술을 겸한 무당이 있었다. 선비족이나 돌궐족도 이러한 흉노 사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323쪽)

고구려가 망한 후 만주 지방의 말갈인은 고구려 복국 운동에 협력하였고, 대진(발해)이 성립되자 다시 대진에 예속되었습니다. 흑룡강 하류 지역에 살던 흑수말갈은 당唐과 결탁하여 대진 세력을 배제하려 하다가, 마침내 대진 3세 무황제에게 토멸 당해 150여 년간 종족의 이름조차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10세기 초에 대진이 거란에게 망하자, 남북 만주와 연해주에 거주하던 조선족(대진 유민)과 퉁구스 만주족을 통틀어 여진女眞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금사金史』를 보면, 그 서두에 “여진과 발해는 본래 한가족이다. 다 같이 물길의 7부족에서 나왔다[女眞, 渤海本同一家. 蓋其初皆勿吉之七部也.]”라는 금나라 건국자[金太祖] 아골타阿骨打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고조선·부여·고구려의 후손인 발해 사람과 여진 모두 뿌리가 같은 동족입니다.

STEP3. 나오면서


세계를 뒤흔든 기마민족

3세기에서 6세기까지 세계 지도를 바꾼 주체 세력은 북방의 유목민들이었습니다. 13세기 지구촌 네트워크를 구축한 이들 역시 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BCE 2세기부터 세계적인 대제국을 잇따라 만들어 냈습니다. 지배층이 바뀌는 데 따라 제국의 이름은 흉노-선비-북위-돌궐-위구르-거란-금-몽골제국(중국에선 元)-청 등으로 바뀌었지만 몸통은 항상 여러 부족의 유목기마민족이었습니다. 유럽인들은 몽고군이 보여준 필사적인 결의, 허를 찌르는 기동력,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전술 등에 대해 ‘황색공포(Yellow Peril)’라고 표현하며 아직도 무의식중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는 이들 북방 민족의 기원이 배달과 고조선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 한민족이 움직일 때마다 세계사의 향방이 결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훈족의 이동은 로마를 멸망시켰고, 몽고인들은 세계를 단일경제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당시 몽고인들이 통일화폐로 사용한 지폐는 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었을 정도입니다. 칭기즈칸과 그 후손들이 대제국을 건설했을 때도 타민족을 제외한 실제 몽고기병은 4∼10만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인원으로 1∼2억 정도의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가들조차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995년 워싱턴 포스트 지는 지난 1천년간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유전학적 기원은 북방계와 남방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화적으로도 동動적인 북방 유목문화와 정靜적인 남방의 농경문화의 요소가 결합되었습니다. 그러나 광활한 대륙을 잃어버리고 한반도로 쫓겨들어오면서, 국가와 제도라는 편안한 울타리에 안주하면서부터 우리는 북방 문화와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이 좌절되자 우리의 북방 이야기는 전설 속으로 사그라들었습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시대는 스스로 주인임을 포기하고 대국大國의 신하임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이후 있었던 북진北進과 북벌北伐은 담론 차원에 그쳐버렸고 전 국가적인 정책으로 수렴되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주변국들에게 역사를 빼앗겨 버렸고 또한 우리 스스로도 힘써 역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역사와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 나라는 있으되 정신은 없는 국민들은 시대의 주인이 되기는커녕 자기 삶의 주인도 될 수 없습니다. 

새 역사를 개척하는 성웅으로 거듭나야

한문화의 중심에 신교가 있고 신교에서는 문과 무를 겸비한 인간상을 추구합니다. 문과 무는 일체양용一體兩用으로 작용할 때 서로가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유목문화의 동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와 농경문화의 정적이고 섬세한 기운이 합쳐져야 조직이 건강해집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속에 잠들어 있는 북방 DNA를 다시 일깨워야 합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는 붉은 악마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역동성과 신바람을 확인하였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디지털 노마드Nomad의 시대입니다. 안주하면 죽고 변화하면 사는 시대입니다. 지금까지 제도와 틀에 갇혀 온 정적인 정신으로는 온갖 정보들이 조화를 지어내고 시시각각 역사가 뒤집어지는 디지털 시대를 선도해나갈 수 없습니다. 창의와 혁신, 그리고 개척 정신으로 무장한 노마드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수성守成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대륙을 휘달리며 수많은 나라를 정복한 동방의 알렉산더 광개토태왕이 있고 대당 사대주의의 역사를 혁명하고 서토西土를 정복했던 연개소문과 같은 영웅이 있었습니다. 

정리 역주자가 전해주는 말씀
☞ 한민족의 원류의 하나는 역시 알타이, 천산, 몽골 고원을 무대로 역사를 펼친 북방계 민족이다. 한민족의 원류가 북방계 민족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증거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손민족’이라는 의식, 천신 즉 삼신상제를 숭배하는 종교문화, 난생설화, 가야 유물에서 나타나는 동복銅O및 마갑馬甲과 같은 북방 유목민 유물, 고구려 벽화에서 생생하게 나타나는 기마전사로서의 성격, 그리고 순장제와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풍습) 같은 관습 등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해제 329쪽)

이제 세월호 침몰에서 확인한 우리 사회의 낡은 관행과 묵은 정신을 『환단고기』가 전해주는 우리의 원형문화로 말끔히 씻어내야 합니다. 신교가 추구하는 진선미의 인간은 성웅 겸비의 영걸을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개벽’을 앞두고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의 진리로 세상을 개벽하고 새 역사를 개척하는 삼랑三郞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역사광복과 오만년 새로운 역사를 쓰는 역사혁명의 대장정에 다함께 참여합시다. (본 시리즈는 이번 달로 마감합니다)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초대 문교부 장관인 안호상(1902~1999)박사.

장관 재직시절 린위탕을 만났을 때 여담으로

"중국의 한자때문에 한국에서 골치가 아프다"고 말하자 린위탕은 "그게 무슨 말이냐?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한자인데 그걸 몰랐단 말이냐?"고 핀잔을 줬다고 보도했다.


보도에서는 또한 진태하 교수는

"한국인이 한자를 외국어 취급하는 것은 무지한 자폭행위다", "한자와 가장 과학적인 한글은 일심동체다. 한자는 한글의 양쪽 날개와 다름없으며, 이러한 이상적인 언어구조를 지닌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고 주장했다고 한다.


기타 세부적인 자료는 'coo2.net' , '역사복원신문' 사이트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지난해 말 교학사의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왜곡 논란이 뜨거웠죠. 

그런데 정부가 초등학생용으로 만든 국정역사교과서의 실험판에서도 오류가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일본에서 쓴 교과서인가 싶은 표현들도 많습니다.


http://tvpot.daum.net/v/v914fR4KCKzRXcCBRK4Vzqc


댓글이 볼만하네요.


오류가 아니겠지. 의도적으로 저렇게 썼겠지.. 교과서 쓰는 인간이 천치도 아니고.

친일을넘어 일본보다 더한자들이 준동하더니....
차라리 일본과 합치길원하는 자들이 우글거리는 이나라
순국선열들의 비명이 않둘리나...?

완성본이 아니라서 괜찮다는거냐 저런게 공무원 쳐하고 있으니 나라가 개꼴이지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고대 이란인, 이민자 친화적인 신라를 이상향으로 생각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2102118445&code=960201 

이란인들이 선택한 주요 동양 이민지들은 ‘중국’ ‘중화권’ ‘신라’라고 지칭되었던 지역”이었으며 

“이는 페르시아어와 아랍어 역사책들에 나오는 지역명으로 중국과 한국이 주요 이민지였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란 테헤란대학교 역사학과의 무하마드 배거 보수기 교수 )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세계환단학회 창립총회 학술대회
(박석재 전 천문연구원장 블로그)
http://dr_blackhole.blog.me/220199455999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본론 10 한민족의 정신문화

홍익인간, 제세이화, 광명개천

우리민족은 이렇게 역사만 위대했던 민족이 아니라 전 인류의 스승이 될만한, 지도자가 될만한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3대 건국 이념이라는 것은 홍익인간, 제세이화, 그리고 하나가 광명개천이에요. 광명한 세상을 만든다. 이 땅을 광명한 세상으로 만든다는 뜻이거든요.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한 것이 광명인데 광명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면요. 환국, 우리 삼성기에 보면 오환건국이 최고라. 여기에 환이 나와요. 오환건국이. 우리 환족에 나라세움이 가장 오래되었다. 그리고 삼국유사 고조선기에 보면 석유환국이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 그러면 환이라는 것이 밝을 환자거든요. 환이라는 것은 하늘에 실체도 광명이에요. 땅의 실체도 광명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실체도 광명이에요.

 

유불선의 광명문화

유가에서도 대학을 보면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명명덕. 내 마음에 본래 밝은 덕이 있는데 그 밝은 것을 회복해야 된다는거예요. 유가의 핵심이 그거예요. 불가에서는 마음 공부를 하잖아요. 마음 공부를 했더니 마음자리라는 것이 사무치게 밝은 자리더라. 깨달은 사람들이 얘기하는거거든요. 마음자리라는 것이 광명자리더라. 도가에서는 수행을 하면 빈 방이 아주 환하게 밝아온다. 그러니까 모든 종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가 광명자리인데. 인간의 궁극으로 추구해야 될 목표가 광명이에요. 그래서 환국 시대 사람들은 복잡한걸 몰라도 내 마음이 원래 밝은 자리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환이라고 불렀대요. 밝은 사람. 그래서 나라 이름도 광명의 나라고 민족도 환족이 되었고 통치자도 환인이라고 이야기했던 거예요. 우리민족은 이렇게 광명을 숭상했어요.

 

광명의 국호를 가진 우리 민족

그래서 우리나라는 국호가 9번 바뀌는데 전부 광명이에요. 환국, 환한 광명의 나라, 배달국, 밝은 빛이 비친 땅의 나라. 원래 백두산이 가장 먼저 광명이 비추어요. 백두산의 일출을 보려고 하면 한 3시쯤 일어나서 가야 되요. 거기를 여름에 광명을 보러 가면 워낙 해가 일찍 비치니까 아침에 태양빛을 가장 먼저 받는 곳이 백두산이거든요. 고조선, 조선이라는 것이 조일선명, 아침에 태양이 선명하게 빛난다는 뜻이고 부여라는 것은 아침에 광명이 부옇게 밝아온다. 광명이 어둠을 해치고서 부옇게 밝아온다. 고조선이라는 것은 고대광명 높고 크고 빛난다. 대진국이라는 것은 태양이 비춰오는 동방의 나라다. 발해라는 것도 발해도 원 어원이 불해에서 왔다는 거예요. 광명의 바다라는 뜻이에요. 고려는 고구려의 준말이고. 조선. 대한민국. 한이라는 것은 환단의 광명을 체득한 그 바탕 위에서 내 마음 속에 광명을 비추는 것을 한이라고 얘기하거든요.

 

한민족이 추구한 광명의 세상

우리 민족의 국호가 9번 바뀌고 전부 광명을 나타낸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광명한 세상을 땅 위에다 만들고자 했던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빛고을이 광주에요. 그래서 우리민족, 광명의 사상이 응축되어 있는 곳이 광주. 광주에는 무등상이 있어요. 무등산은 더 이상 높은 산이 없다는 거예요. 최고 높은 산이에요. 광명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보다 더 이상의 철학이 없거든요. 그래서 무등산이라고 한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도 해보면서 여기에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명이건 인명이건 전부 광명이에요. 국호만 그런게 아니에요. 해모수란 사람이 북부여의 시조로서 고구려의 원 뿌리가 되는데 해모수의 해가 광명에서 나온거예요. 그리고 저는 한의학을 하면서 한의학의 창시자인 복희의 유적을 조사하러 중국에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중국 책을 보면 복희라는 한자가 다 달라요. 한 열댓가지가 나와요. 복희가 다 글자가 달라요. 어느날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태호복희. 태라는 것은 클 태자, 호라는 것은 밝을 호자인데 복이라는 것은 밝다는 글자고 희라는 것이 해라는 뜻이구나. 복희가 밝은 태양이란 뜻이구나. 어느 순간에 머리에 들어오더라고요.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 모르지만 인류 문명의 아버지 아닙니까. 문명은 빛 아니에요? 인류문명은 빛에서 시작하니까 복희씨에서 시작한거예요. 실제로 복희씨는 실제로 인류문명의 아버지입니다. 인류문명은 태호복희씨가 그린 주역과 하도에서 나오거든요. 하도라는게 음양오행원리로 되어있거든요, 지금 사람들은 음양오행을 우습게 알지만 음양오행이라는 것이 원 인류문명의 뿌리에요. 지금에 컴퓨터문명, 디지털문명. 그것도 01이라는 이진법을 발전시켜 컴퓨터 문명이 나온 것입니다. 과정도 실제 그래요. 이것은 최초로 이진법 체계를 만든 사람이 파스칼이 처음 만들고 독일에 철학자가 만들었는데 그 사람이 동양에서 동양에 있는 선교사에게 팔괘와 64괘 도형을 받고서 자기가 이진법 체계를 만들어요. 라이프니츠가. 거기에서 컴퓨터문명이 나오기 때문에 실제로 지금의 문명 속에는 음양의 문명, 태호복희씨가 만든 음양의 철학이 깊이 들어가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중국 사람들이 우리를 예맥이라고 폄하를 해요. 예맥. 예라는 것을 사전을 찾아보면 회라고 읽는다는 거예요. 회라는거예요. 그리고 일자환이다. 어떤 책을 보면 환이라고 읽어야 된다. 맥이라는 것이 밝다란 뜻이에요. 밝에서 나간거예요. 은나라 수도를 박이라고 표현합니다. 밝다를 그냥 갔다 써놓은거예요. 밝다를 한자로 그렇게 써서 밝이라고 쓴거지 한자랑 별로 상관이 없어요. 이렇게해서 우리 민족은 광명을 숭상해서 저녁에 달이 뜰 때는 달맞이를 하고 아침에 해가 뜰 때는 해맞이를 하고 이처럼 우리민족은 광명을 숭상했던 민족입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본론 10 홍산문명

홍산문명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문헌 환단고기

이렇게 해서 참 우리민족에 역사가 진행이 되는데 지금 중국에서 홍산문화에 대한 얘기를 조금 말씀드리고 제 얘기를 서서히 매듭을 지어가야 되는데요. 1970년대 후반부터 8090년에 거쳐 만리장성 바깥인, 여기가 동요하 흘러가고 서요하 흘러가고 이렇게 빠지게 되는데요. 만리장성 여기있고 여기, 동북지방에서 엄청난 고고학적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해석할 수 있는 문헌은 아무데도 없어요. 오직 문헌은 환단고기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우리에 환국이 있었고 배달국이 있었고 그리고 거기에 고조선이 있었다. 그건 우리나라의 유물이었거든요. 중국은 만리장성 바깥은 자기네 땅이 아니에요.

 

만주가 중국 땅이 된 과정

왜 만주가 중국 땅이 되었느냐 하는 것은 청나라가 중국을 삼켜버렸어요. 만주족이죠. 고구려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청나라 사람들은 중국에 동화가 되버렸어요. 그래서 만주가 자연스럽게 중국 땅이 되어버린거지 만주가 중국 땅이 된 적이 없거든요. 거기서 중국이 왕조를 세웠던 적이 없어요. 우리가 그것부터 분명히 알고 지나가야 되요. 청나라는 백두산 족이에요. 자기들의 선조는 백두산에서 시작되었다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청나라가 중국을 먹은 것까진 좋았는데 역사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의 혼을 잃어버렸어요. 역사를 잃어버리고 혼을 잃어버리니까 민족을 잃어버리고 중국에 동화되버리고 만주가 다 중국 땅이 되버린거예요. 역사라는 것이 이게 참 기가막힌거다. 역사라는 것은 그 민족의 혼입니다. 역사가 있는 민족은 혼이 살아있는 민족이고. 그러니까 혼이 없는 역사는 혼이 없는 민족을 만들고 혼이 없는 민족은 혼이 없는 국가를 만드는 거예요.

 

인류 4대 문명보다 2천년 이상 빠른 홍산문명

그래서 거기에서 유적이 수없이 발굴이 되는데 이것은 인류역사를 새로 써야될 정도에요. 중국 사람들은 자기들에 4대문명, 황하문명이 앙소문화를 얘기하는 거거든요. 앙소문화가 서기전 4천년 전꺼거든요. 그런데 양자강 유역 절강성에서 하모도 문화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게 서기전 5천년 전 문명이에요. 그래서 중국에서 놀란거예요. 황하문명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어떻게 양자강 유역 남쪽에서 하모도문화,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된 문명이 나왔냐. 어쨌든 황하문명과 양자강 유역에 하모도문화 이런 것이 문명의 뿌리라고 생각했는데 동북지방에서 하모도 문화보다도 2천년이 앞선 문화가 또 나온거예요. 그러니까 이 문화는 인류 최고의 문화가 되는거예요. 그래서 소하서 문화는 지금으로부터 9천년 전 문화에요. 거기에 집터도 있고 사람 형상의 얼굴도 나오고. 거기성 흥륭하문화, 사해문화, 부하문화, 조보구문화, 그러면서 홍산문명으로 연결이 되면서. 조보구 문화까지가 신석기 문화고요. 그 다음 홍산문화, 병용기 문화시대고 하가점 문화 그때부터가 청동기 문화에요.

 

홍산문명이 한민족의 문명인 증거

비파형 동검이라던가. 성을 만들 때 치라던가. 이런게 나와서 중국 사람들은 비파형 동검, 성을 쌓을 때 치, 치라는건 성 앞에 방어를 하기 위해서 애워싸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런 것이 발굴이 되고. 그리고 홍산문화라는 것은 전부 적석총이에요. 돌을 쌓아가지고 만들어요. 우리나라 서울 석촌동 고분, 전부 돌을 쌓아 묻고. 이게 만주, 일본으로 건너가는거예요. 중국은 무덤을 만들 때 돌을 쌓아 만들지 않습니다. 지금 국내성이나 지반에 있는, 고구려의 수도가 지반 아닙니까. 그것은 집안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한글로 번역하면 국내. 순 우리말이에요. 중국에 저 장춘 있잖아요. 저 장춘은 원래 늘봄이라 불렀어요. 그래서 한문을 쓸 때는 원래 눌견으로 나와요. 눌견. 이게 늘봄이란 뜻이에요. 이걸 번역해서 장춘이 되었어요. 중국 만주에 있는 지명은 다 우리 말을 한자로 한거예요.

 

홍산문명에서 나온 옥문화

그런데 홍산문화에 특기라는 것이 우리 정교수님이 거기서 옥을 연구하잖아요. 그 문화의 특징은 옥문화에요. 그래서 두 번째 흥룽아에서부터 옥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대단한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옥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해야되요. 그래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석기시대, 신석기 구석기 청동기로 하는데 그 중간에 옥기시대를 넣어야 된다. 중국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옥기시대를 넣어야 된다. 옥이라는 것은 그 당시에 사람들이 삼신상제님을 신앙을 했거든요. 그래서 하느님이 계신 곳을 옥경이라 그랬어요. 구슬옥자라고 해서. 하느님을 옥황상제라 했어요. 그래서 내가 하느님 옆에 가고 싶다. 그래서 종교적인 이유로 옥을 숭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화를 우리도 더 많이 연구를 하고 이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환단고기가 없어서는 중국한테 다 뺏겨버리는 거예요. 중국 사람들은 벌써 그것이 자기들 문화라고 체계를 다 잡아놨어요. 동북지방에 나오는 모든 문명은 황제에 연결시켜요. 전부 황제의 후손들이다. 그래서 고조선이니 고구려니 전부 황제의 후손이라는 거예요. 황제가 유웅국의 임금이었거든요. 그래서 웅자를 써서 곰이 들어간다고 해서 황제하고 곰을 연결시켜서 자기네 문화로 둔갑을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9천년의 역사를 가졌던. 그럼 환국이 3301, 배달국이 1565, 단군조선이 2096, 그것만 따져도 7천년이에요. 우리는 7천년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강단사학자들은 고조선의 역사도 회복을 못하는데 어떻게 배달국과 환국의 역사를 회복할 수가 있겠어요. 그들에게는 사실 우리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본론 8 한민족사의 Missing link, 북부여

환단고기에서 밝혀주는 북부여

네 번째가 북부여시대인데요. 북부여시대라는 것은 고조선이 서기전 2333년부터 238년까지 209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라가 쇠약해지니까 그 한해 전에 서기전 239년에 해모수라는 분이 군사를 일으켜가지고 북부여를 건국하게 됩니다. 북부여라는 것이 나라이름이에요. 오는 627일 날 세계 환단학회가 창립이 되요. 그래서 저한테 논문을 하나 써달라고 해서 제가 환단고기란 책이 정말 참된 책이다. 환단고기 진서론이란 논문을 한편 썼어요. 환단고기가 얼마나 참된 책이냐. 그 논문에 아주 핵심되는 몇가지만 말씀드리면 광개토태왕 비문에 있는 내용하고 똑같아요. 광개토대왕 첫머리가 뭐냐면 우리 고주몽성제가 북부여로부터 나오셔가지고 나라를 건립하셨다. 북부여에서 나오셔서 나라를 건립했다. 그리고 묘지명해가지고 그 뒤에 우리 고구려는 북부여로부터 나왔다. 지금의 역사학자들은 북부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 부여라는 땅에 북쪽이라서 북부여라고 호칭을 했다. 지금 역사학자들은 다 그렇게 얘기해요. 이도학 교수의 책도 보고 북한에서 나온 책도 봤더니 그냥 고구려시대 사람들이 부여에 북쪽 땅이라고 해서 북부여라고 했다. 아니에요. 북부여가 국호에요. 여기 광주사람인 범세동이란 사람이 북부여기를 썼다고 했잖아요. 그 국호로 직접 나와요. 왜 그러냐면 여기 백악산 아사달에 도읍을 정했는데 장당경 아사달에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북부여라고 호칭을 했어요. 자기들이. 북부여라고 호칭을 했고 그래서 그런 문제가 금방 해결이 되는거예요. 환단고기를 보면 북부여에서 나오셨다. 북부여가 국호네. 금방 알 수가 있어요. 광개토태왕이 이구등조라고 있어요. 이구에 오르다. 오를 등자 복조자인데 임금의 자리 조자에요. 열여덟살에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하는 것이 광개토태왕 비능에 있어요. 그런데 환단고기에 보면 등극우광명전이라 열여덟살에 광명전에서 등극했다. 광명전이라고 쓴거 보세요. 우리나라 임금이 통치하는 금궐의 이름으로서는 최고죠.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그거보다 광명전. 이건 그 하나만 보더라도 고구려라는 것은 정말 환국 배달국 고조선의 정통을 계승한 광명을 추구하는 우리 민족에 나라였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충주시 노은면에서 발견된 불상

그 다음에 39세에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39세면 412년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1915년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석가모니 불상이 하나가 발견이 되었어요. 석가모니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그 뒷면에 글자가 쓰여져 있었어요. 건흥 5년 세제병진에 상부아암에 청신여 누구누구는 내가 이 불상을 조성하면서 아주 내가 대대세세로 태어나는 때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법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건흥오년 병진년이라고 되어 있으니까 지금 국사학계에서 연구를 해가지고서. 고구려에서 연호를 썼다는걸 모르거든요. 건흥이 고구려에 어느 임금 연호라는걸 모르거든요. 모르니까 이 사람들이 596년이 병진년이에요. 그래서 한국에 김원종이라던가 대표적인 학자들이 596년이다. 어떤 사람은 536년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건흥은 환단고기를 보면 장수 홍제 호태열제는 연호를 건흥이라고 썼다. 이렇게 했어요. 그러면 장수왕, 왕이란 표현을 제가 잘 안쓰는데, 장수열제, 열이라는 것은 위대한 공적을 세운 임금이란 뜻이에요. 장수열제 5년에 저 불상이 세워졌다는 거거든요. 건흥 5년에 만들어졌다면. 그러면 장수열제가 언제 등극하느냐. 312년에 광개토열제가 돌아가십니다. 고구려는 임금이 죽으면 그 아들이 그해 임금이 되잖아요. 그걸 그 해를 원년으로 따지는 것을 즉위년칭원법이라고 그래요. 그 다음해를 원년으로 쓰면 유년칭원법이라고 그래요. 고구려 사람들은 즉위년칭원법을 썼어요. 그럼 412년이 장수열제 1년이에요, 원년이에요. 413년이 2년이에요. 414년이 3년이고 415년이 4년이고 416년이 5년이에요. 그럼 416년인데 416년이 병진이냐. 연간이. 병진이에요. 416년이. 이거 환단고기에 기록이라는 것은 너무너무 기가막힌거예요. 환단고기에. 그거 하나만 보더라도 사학자들이 환단고기 위서 어쩌고. 그거 하나만 건흥이란 연호만 알아도 노은면에서 발견된 불상이 고구려에서. 또 문명대교수는 이거 아마 신라에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랬어요. 아니죠. 이건 고구려에서 만든거죠.

 

환단고기의 진실성을 밝히는 천남생 묘지

환단고기에 진실성에 대한 얘기는 말이에요. 1923년에 천남생 묘지명이, 묘지명이란건 사람이 죽으면 비석을 세우고 그 사람의 업적을 적어놓은 것을 묘지명이라고 얘기해요. 1923년에 천남생이란 분은 연개소문의 맏아들이에요. 맏아들인데 지방 시찰을 갔을 때 자기 두 동생이 남건과 남산이 반란을 일으켜서 자기 아들을 죽이거든요. 그래서 당나라에 투항을 해요. 당나라에 투항을 해서 당나라 군사를 이끌고 와서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장본인이 남생이에요. 연남생인데 당나라 고종의 이름이 이연이에요. 못연자를 쓰기 때문에 그 이름을 휘해가지고 천자로 이름을 바꿔요. 그래서 천남생 묘지명이 나오는데 거기에 이렇게 되어있어요. 나의 아버지는 연개소문이고 나의 할아버지는 연태조고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연자유다. 그러면 연개소문의 아버지가 연태조가 되고 연개소문의 할아버지가 연자유가 되는거겠죠. 연개소문의 아들 천남생의 입장에서는 자기 할아버지가 연태조고 증조할아버지가 연자유라고 했으면 연개소문 입장에서는 자기 아버지가 연태조고 할아버지가 연자유가 되잖아요. 이 기록은 아무대도 나오지 않습니다. 천남생 묘지명이 나오기 전까지는 연개소문의 아버지, 할아버지 이름이 나온 적이 없어요. 환단고기에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까지 나와요. 증조할아버지 이름이 넓을 광자 광이었다. 그래서 강단사학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해요. 환단고기는 1923년 천남생 묘지가 나온 이후에 조작된 위서다. 가관이죠. 얘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에 그것이 발굴되었을 때 한국 사람은 그걸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일본 사람들이 조금 알고 있었고 10, 20년 동안 알려지지를 않았어요. 1923년에 나왔는데 한국의 역사학자 누가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알 수가 없었거든요. 거기서 저는 전율을 느꼈어요. 환단고기란 책이 기가막힌 책이다.

 

태백일사의 고구려국본기

환단고기는 고구려국본기에 나오는데 고구려국본기란 책은 태백일사의 하나거든요. 태백일사는 중종 때 이맥이란 사람이 쓴 책이에요. 이맥이 1455년 생인데 과거에 1498년에 과거에 급제해가지고 장녹수, 연산군이 총애하던 여자가 장녹수 아니에요? 그 비리를 간해가지고 제 고향이 충북 괴산 땅인데 괴산으로 귀양을 갔어요. 괴산을 가가지고 자기가 옛날에 고서를 펼쳐놓고 메모를 해놨다. 그리고 1506년에 중종반정이 일어나잖아요. 중종반정 이후 복직이 되가지고 편수관이 돼서 모든 책을 보고 태백일사를 썻다. 그래서 1520년 정도에 태백일사를 지었어요. 그게 1520년에 쓰여진 거예요. 연개소문 아버지가 누구고 할아버지가 누구고 증조할아버지가 누구고. 그리고 그 앞에 조대기에 이르기를 연개소문은 봉성사람이고 그 아버지는 누구고. 조대기라는 책 이름이 나와요. 이 조대기라는 것은 1457년 수상서 목록에 있던 책이에요. 조대기는 대진국 사람들이 보는 책으로서 926년 대진국이 망하면서 고려로 올 때 가져온 책이에요. 그래서 고려시대 때 조대기를 봤어요. 봤다가 청평 이명이란 사람이 이 조대기를 보고서 지명유기라는 책을 써요. 지명유기를 보고서 조선 숙종 때, 숙종 원년 1675년에 북애노인이 규원사화를 쓰게됩니다. 그래서 연개소문에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 이름이 나온 것은 조대기에 있는 것을 보고 쓴거지 천남생 묘지명을 보고 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처럼 환단고기란 책은 정말 비서에요. 비서고 보서로서 우리 민족에 잃어버린 역사와 혼을 회복할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책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북부여의 맥을 이은 고구려

그래서 북부여라는 것이 239년에 건국이 되가지고서 BC 58년에 북부여에 6번째 임금이 고무서 단군인데 고무서 단군이 아들이 없었어요. 아들이 없어가지고 그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소서노에요. 그 소서노에 사위로, 남편으로 맞이를 해요. 그래서 고주몽 성제가 BC 58년에 북부여에 일곱 번째 단군으로 등극을 하면서 혈통적으로는 해모수에 현손자가 됩니다, 그래서 고구려가 58년에 건국이 되는데 삼국사기에 보면 BC 37년에 건국이 되었다고 해요. 그것은 틀린건 아닌데 37년에 평강이라 연호를 바꾸고 고구려라고 정식으로 연호를 선포해요. 이렇게해서 고구려 우리 민족에 찬란했던 역사 고구려가 나오는데 고구려란 원명은 자기 조상인 해모수의 원 고향이 고구려에요. 지금 내몽고자치구 하림 좌기가 있는 요나라에 수도였던 곳이에요. 거기가 고구려 땅이었기 때문에 고주몽성제가 고구려라고 국호를 했던겁니다. 환단고기에 보면 고구려의 국호가 어디서 나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본론 7 한민족의 문명이 완성된 단군조선

천부경의 天一, 地二, 人三

우리 민족에 가장 왕성한 시대라는 것은 고조선시대입니다. 고조선은 우리 민족의 문명이 완성이 되는 시대에요. 여러분들에게 약간 어려울지 모르지만 천부경이라는 책이 있어요. 천부경은 하느님께서, 우리민족은 하느님을 신앙했는데 그 하느님은 삼신상제님이라고 호칭했어요. 그래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이 제사문화의 원 고향이 우리민족이거든요. 그래서 삼신상제님께서 전수해주신 81자가 되는 천부경이 있는데 천부경은 일시무시일로 시작해서 일종무종일로 끝나는거예요. 모든 것은 하나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인류역사도 환국 하나에서 시작을 하는거예요. 그 다음에 이번에 인류역사도 하나로서 매듭을 짓는 겁니다. 그 하나로서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우리의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되요. 역사의식이 있어야 되요.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역사 속에 휘말려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은 그 역사와 더불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그런 말이 있어요.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하늘은 말이에요. 천일, 지일, 인일이라는 것은 천지인에 위격이 똑같다는거예요. 천지인의 위격이 하늘도 하나, 땅도 하나, 인간도 하나라는 것은 하늘이 하느님이면 땅도 하느님, 인간도 하느님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하늘은 하나를 위주로 하고 땅은 둘을 하나로 삼는거예요. 인간은 셋을 하나로 삼아요. 하늘과 땅, 12를 더하면 3이 나오죠. 인간이란 존재는 천지가 결합되서 나온 존재가 인간이에요. 따라서 인간은 하늘보다도 위대하고 땅보다도 위대한 존재가 인간이란 존재입니다. 3에 와서 완성이 되는거예요.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3이에요.

 

天一, 地二, 人三에 따라 변한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그래서 이 환국에 시대는 하나로 관통되어 있어요. 배달국에 시대라는 것은 둘로 나누어져요. 전기 배달국 시대는 신시시대에요. 초대환웅부터 13대 사하라 환웅 때 까지가 전기 환국시대고 14대 치우천왕은 우리의 무대를 초기 청구국은 대릉하 유역에 있었고 후기 청구국은 산동성에 있었어요. 우리가 청구라는 말을 쓰잖아요. 그건 치우천왕 때부터 쓰는거예요. 그래서 배달국은 지일이, 전기 배달국과 후기 배달국이 있었어요. 그리고 고조선은 비로소 3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고조선은 지금으로부터 서기전 2333년이 무진년이에요. 무진년이 198888올림픽이 무진년이거든요. 저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88올림픽, 무진년에 열리는 것은 우리 초대 단군할아버지가 나라를 건국한 건국 기념 페스티발이구나. 그때가 4321년이었어요. 그래서 1234를 거꾸로 하면 새로운 역사가 88올림픽과 더불어 시작하는구나. 저 혼자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그때는 제가 대학가에 강연회를 많이 다녔어요. 대학가 다니면서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우리 민족이 이제 88올림픽을 치르면서부터 우리 민족이 세계역사 속에 등장하게 되고 주역으로서 나아가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많이 했는데요.

 

참성단의 유래

초대단군 할아버지, 지금 단군을 신화니 전설이니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단군할아버지는 2370년생이에요. 신묘생이에요. 14살에 웅씨국에 비왕으로 봉해졌다가 38살에 고조선을 건국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130살에 돌아가세요. 93년 동안 임금의 자리에 있었어요. 88살에 저 강화도 마리산에 참성단을 쌓습니다. 환단고기에는 아주 정확하게 나와요. 그러니까 강화도 참성단. 우리나라 국보 1호로 만들어야 되요. 그거 초대 단군 할아버지가 천제를 지내기 위해서 쌓은 제천단이거든요. 그거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저 전국체전 때 체화하는 정도로 그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게 초대 단군할아버지에 유적입니다.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제

초대 단군할아버지부터 2대 부루단군 34547세 고열가 단군까지 2093년 동안에 고조선에 역사가 전개가 되는데요. 삼한관경제를 써요. 아주 유명한 것이 고조선은 삼한관경을 썼다는거예요. 삼한으로 나누어서 관경을 했다. 국토, 땅덩어리를 세 덩어리로 나누어서 다스렸다는거예요. 그래서 초대 단군 할아버지가 하얼빈에 도읍을 합니다. BC2333년에. 도읍을 해가지고 2096년동안 마흔 일곱분의 단군이 통치하면서 역사가 진행이 되는데 묘한 것은 이 부분을 자기가 진한이라 그러고 이 부분을 마한이라고 얘기하고요. 이 부분을 번한이라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이 마한은 천일의 뜻이에요. 번한은 지일의 뜻이에요. 한이라는건 하나란 뜻이거든요. 진한이라는 것은 인일이라는 뜻이에요. 진은 큰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면 여러분들도 옛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천지보다 더 크다는거예요. 여기에 진한의 단군이 마한 번한의 부단군을 한명씩 두면서 통치를 했어요. 이게 삼한관경제입니다.

 

삼신상제님을 신앙한 우리 민족

이것은 우리 민족의 국교가 신교였기 때문에 신교에서는 누구를 신앙했느냐? 삼신상제님을 신앙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삼신할머니 정도밖에 알고 있지 못한데요. 삼신이란 분은 한 분에 상제님이시지만 그분이 창조의 기력을 발휘할 때는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으로서 셋으로 작용한다는거예요. 조화라는 것은 아버지 역할을 하는 창조의 역할이고 교화라는 것은 스승의 역할로서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치화라는 것은 임금이 통치를 하는걸 의미해요. 군사부일체 사상이 조교치 삼신일체 사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역사에 뿌리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 뿌리국가가 우리민족인 것입니다. 유불선 기독교라는 것이 모두 우리 민족의 신교에서 나아가게 되는거예요. 기독교에 삼신일체사상이라던가 불교에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 일체 사상이라던가 도교에 삼청일체사상이 있어요. 상청 태청 옥청. 일체사상이라던가 유교에 군사부일체 사상이라던가. 인도에도 삼신일체 사상이 있어요. 우주의 창조신인 브라우마 유지신인 비슈노 파괴신인 시바가 비록 달리 있지만 한 몸이다. 하나다. 세 개의 모든 종교, 철학, 그 원 뿌리가 우리 민족에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단재 신채호의 전후삼한고

그래서 이 삼한관경제인데. 지금 사람들이 삼한을 역사에서 배워요. 삼한은 김해 땅에 변한이 있었고 여기 익산 주위에 마한이 있었고 경주에 진한이 있었어. 이거를 중삼한 연맹국이라고 합니다. 고조선이 망하면서 여기 살던 진한 마한 번한의 사람들이 남쪽에 와서 이주를 해요. 이주를 해서 여기 자리잡은 사람을 진한이라고 하고 김해에 자리 잡은 사람을 변한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익산에 자리잡은 사람을 마한이라 그래서요 이건 중삼한 연맹국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최초로 밝힌 사람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에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전후삼한고라는 논문을 써가지고 전삼한이라는 것이 단군조선이다. 전삼한이 단군조선이고 이건 중삼한 연맹체를 얘기하는 것이다. 1897년에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는데 이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할 때 이 삼한에서 따간 것이 아니라 이 고조선에 삼한관경제 한자를 따다가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의 의미

이 한이라는 것은 하늘의 광명을 환이라고 얘기하고 땅의 광명을 단이라고 얘기하고 천지의 광명을 체험하는 인간, 내 인간 속에서 나오는 인간의 광명을 한이라고 얘기하는거예요. 이제는 환단의 시대가 지나고 한의 시대가 열린다는거예요. 인간이 하늘과 땅의 시대가 지나고 인간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인류의 미래가 도래한다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런 비밀을 지금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번한과 마한의 수도

이렇게 여기서 天一, 地二, 人三이라고 얘기했잖아요. 이 마한이라는 것은 천일이기 때문에 평양이 수도인데 한번도 안바뀌어요. 마한은 초대단군 웅백다로부터 마지막 단군 맹랑까지 수도가 한번도 안바뀝니다. 하늘이라는 것은 안바뀌는거예요. 하늘이 변하냐 이거예요. 땅은 둘로 나뉘어져요. 하늘은 끝간대가 없이 하나잖아요. 땅이라는 것은 땅이라는 것은 육지와 바다로 있잖아요. 번한이라는 것은 수도가 두군데가 있습니다. 첫 번째 수도가 여기 하북성 장산시에 있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 수도가 바로 여기 위만조선이 도읍했던 하북성 창려현으로 두 번 옮기게 됩니다. 그래서 천일 지이. 땅은 두 번이기 때문에 수도가 두 번 바뀌어요.

 

진한의 수도변천과정

그러면 人三에 해당하는 진한은 수도가 당연히 몇 개겠어요? 세 개가 있었어요. 우리 민족은 우주의 원리대로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래서 여기 하얼빈에 살아온 민족을 송화강 아사달이다 그러고 그리고 22대 색불루 단군이 자기가 중병을 거느리고서 임금을 자기에게 달라고 해요. 우리나라에 소태나무라는게 있어요. 소태나무가 무지하게 쓰거든요. 21대 소태단군에서 나온게 아닐까. 제가 그런 생각도 많이 해봤어요. 근거가 없는데. 아니, 이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왕도정치를 하고 군주에 덕치가 이루어지는건데 그때는 벌써 세상이 많이 변해가지고 22세 색불루 단군이 자기가 중병을 거느리고서 임금자리를 자기에게 달라고 해요. 원래 우리나라는 전부 셋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단군 밑에 부단군 두명을 두고 있었지만 이 대단군 밑에도 보필자를 두명을 뒀어요. 그것을 좌현왕 우현왕이라고 얘기합니다. 좌현왕은 무조건 태자가 되는거예요. 그리고 우현왕을 맡고 있었거든요. 색불루란 사람이. 흉노에서도 좌현왕, 우현왕 제도가 있어요. 이게 전부 단군조선시대에 유풍이 내려간겁니다. 백제에도 있었어요. 그래가지고 자기가 울며겨자먹기로 그냥 임금자리를 넘겨줘요. 1286년에 말이에요. 그래서 고조선이 왕조가 세 번 바뀌게 되는데.

 

동국통감, 세종실록,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단군조선의 역년

1 왕조시대는 초대 단군부터 21대 소태단군까지. 서기전 2333년부터 서기전 1286년까지. 그때가 1408년이 됩니다. 1408년이란 기록이 조선시대 역사서에 많이 나와요. 서거정이 지은 동국통감에 단군에 수명이 1408세였다. 나라가 1408세라고 얘기했으면 똑 떨어지는데 수명이 1408세였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세종실록을 보게 되면 정확히 나와요. 세종실록 27년조에 보면 단군의 나라가 1408년 동안 지속이 되었다. 이것이 제 1 왕조시대. 하얼빈에 도읍을 했던 초대 단군할아버지부터 21대 소태단군 때 까지에요. 하얼빈에 도읍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에 강단사학자들은 어디로 얘기해요? 평양에 도읍을 하고 있었다. 왜곡을 하고 있는거예요. 22대 색불루 단군은 수도를 장춘 녹안, 이 지역으로 옮기고 그 자리를 백악산 아사달이라고 합니다. 백악산이라는 것은 밝뫼에요. 밝은 산이라는거예요. 백두산의 뜻이에요. 백악산이라는 것은 밝은 산이다. 거기다 수도를 옮겨가지고 43세 물리단군까지. 426년 동안, 820년 동안 지속을 합니다. 그것이 고조선에 제2왕조시대에요. 진한은 인삼에 해당하기 때문에 세 번 옮겨야 되거든요. 그래서 제1왕조시대 1408년에다가 제 2 왕조시대 820년을 더하면 1908년이란 숫자가 나오게 되는데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보면 단군의 수명이 1908세였다. 이렇게 되어있거든요. 기존에 역사서에서도 우리가 흔적을 잘 보면 우리에 단군의 역사를 복원시킬 수 있는 내용이 아주 많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3 왕조시대 여기에서 백악산 아사달에서 43세 물리단군 때 우화충이라는 욕살이 반란을 일으켜요. 그래서 구물단군은 도망가다 돌아가시고 백민성 욕살인 44세 구물단군이 이 우화충 목을 배고서 수도를 이 밑으로 다시 옮기게 됩니다. 여기가 요령성 개원시에요. 요령성 개원시. 전 신양에서 1년을 살았는데 거기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가면 개원시가 있어요. 거기가 장당경 아사달이에요. 그런데 지금의 역사학자들을 보면 저 황해도에 저 장현지방이다. 이렇게 왜곡되게 가르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BC 238년까지 역사가 진행이 되요.

 

강단사학자들이 말하는 고조선

이렇게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환국과 배달국에 역사를 종합을 해서 완성된 그 당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던 우리 민족에 영광스러운 과거에 역사시대인데 지금에 강단사학자들은 고조선을 가르치지 않아요. 역사책에 어떻게 나오느냐? 고조선이라는 단군이 BC 2333년에 나라를 건국하였다고 한다. 이런 정도. 그들은 왜 그렇게 얘기하고 있느냐 하면 아주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 때문에 우리 역사의 상한선을 올려 잡는 것이 무슨 난리가 일어나는걸로 생각을 해요. 그래가지고 그 사람들의 논리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청동기가 나오는 것은 서기전 10세기에 나오는데 청동기가 나와야만이 국가를 건립할 수 있는 조건이 구비가 된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BC10세기 이전으로만 넘어가면 난리가 나는줄 알고 있어요. 그런데요. 홍산문명이 나오면서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에 국가 조직에 틀을 완전히 갖춘 문명이 발견되었다. 중국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는거예요. 이게 배달국 시대거든요.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이거든요. 그래서 홍산문화에 대한 것은 조금 더 제가 우리 과거에 역사를 말씀드린 뒤에 말씀드리려고 해요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
728x90

본론 6 광명이 비치는 땅, 배달국

환웅천왕의 배달국 건국

두 번째 환국이 날씨가 추워지면서 그리고 인구가 증가하게 되니까 민족의 대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시베리아가 추워지고 인구는 증가하고. 그래서 그때 우리의 환웅천왕께서 풍백과 우사와 운사와 제세핵랑군 3천명을 거느리고서 백두산에 내려오시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배달국의 시작이에요. 배달이라는 것은 밝달이라는 뜻을 배달로 바꾼거예요. 밝달이라는 것은 하늘의 광명이 비친 밝은 땅이란 뜻이에요. 밝이라는 것은 밝다는 것을 뜻하고 달이라는 것은 땅을 뜻하는겁니다. 우리가 양지바른 곳을 양달이라그러고 그늘진 곳을 음달이라고 그러고 기울어진 곳을 비탈이라고 이야기해요. 달이라는게 딸이에요. 아사달이라는 것이 일본은 일본말로 아침이라 그런대요.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딸이에요. 아사달. 아침에 햇살이 비추는 장소. 그것이 아사달이거든요. 우리민족은 광명을 숭상한 민족입니다. 광주의 빛 광 자라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이 압축되어 있는 곳이다.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있어요. 9천년 한민족의 정신이 이 광주 땅에 응결되어 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웅족과 호족

그런데 거기에 원래 원주민이 있었어요. 원래 원주민이 웅족이었어요. 첫 번째가 환국이었고 두 번째가 배달국인데 웅족이 살고 있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 들어온 민족이, 첫 번째가 호족이었어요. 원래 원주민이 호족이었어요. 두 번째 곰 토탬을 가진 민족이 웅족이었거든요. 둘이 불화했어요. 웅족과 호족이. 이게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가 말이야. 이런 신화 얘기로 전락했는데 이것은 곰과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를 토탬으로 섬기는 남권을 주장하는 부족이었고 웅족은 여권을 주장하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이념이 달랐어요. 이념이 달라가지고 둘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어요. 그래서 환웅천왕이 백두산에 내려와서 그들을 교화합니다. 그래서 쑥과 마늘을 주면서 교화를 시키죠. 그래서 웅족은 미련해가지고 그런 시련 과정을 잘 거쳐서 우리 환족과 동화가 됩니다. 호족은 말을 듣지 않아요. 그래서 호족을 추방해버립니다. 그 호족이 내려간 것이 아마 지금 중국의 많은 소수민족이 있는데 그 많은 소수민족 중에소 요족같은 경우는 호랑이를 토탬으로 섬기고 있어요. 그래서 어디까지나 추측이에요. 호족의 후예들이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해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저쪽 베링해엽을 넘어가지고 북아메리카 쪽으로 넘어간 부족중에서도 호랑이를 토탬으로 하는 부족이 많다고 해요. 그때 추방된 호족들이 간 것이 아니냐 하는 추측을 해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배달국의 위대한 성웅들

이 배달국이란 나라는 18명의 환웅천왕이 통치를 하는데 1565년 동안 지속이 됩니다. 이때 우리 민족이 중국에 이주를 해요. 그래서 중국에 복희씨라는 분이 있어요. 복희라는 사람은 중국 사람들이 인문지조라고 추종합니다. 저야 한의학을 하니까 한의학의 창시자고 동양철학의 창시자에요. 주역팔괘를 만들고 그리고 태극기를 처음으로 그리신 분이에요. 역철학의 창시자가 복희씨에요. 그래서 중국에 있는 복희씨의 유적을 제가 전부 조사를 했거든요. 복희씨 같은 분이 중국에 가서 문명을 여는데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복희사람들을 인문시조라고 해요. 인문시조는 인류 문명의 조상이라는거예요. 신농씨라는 분이 있어요. 신농씨라는 분이 농업을 창시하고 시장, 의약을 창시하고 그리고 잉여농산물을 물물교환하게 하는 시장제도를 만들고. 이런 문명을 열거든요. 중국에가서. 중국을 문명화시키는 그런 분이 복희씨니 신농씨니 이런 분인데 중국 사람들이 이분들은 자기들이 동이족이라고 얘기해요. 우리 민족이 가서 중국 민족을 교화시켯던 것입니다. 이 배달국 시대라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것이 치우천왕이 있어요. 지금도 월드컵이 되면서 월드컵의 응원단인 붉은악마가 상징물로 쓰고 있거든요. 치우천왕이라는 분은 14번째 18분의 환웅이 있었는데 14번째 자오지환웅의 별병이 치우천왕이에요. 치우라는 뜻은 큰 비가 내려가지고 모든 강산을 한번 다 개벽을 시켜버린다. 이런 뜻이 치우의 뜻이라 그래요. 대단한 분이죠. 전쟁을 한번 일으켜가지고 황제와 전쟁을 해서 73번을 전쟁해서 7373승을 하거든요. 치우천왕이. 그래서 저 북경에서 서쪽으로 많이 가면 탁록시가 있어요. 탁록시에서 황제와 대전쟁을 치러가지고 황제를 무릎을 꿇리고 황제를 신하로 만듭니다. 그 뒤에 황제가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를 해요. 서진시대 때 간옹이라는 사람이 쓴 포박자라는 책이 있는데 포박자에 어떤 구절이 있냐면 옛날에 황제가 동방 청국에 가서 자부선생을 만나 뵙고 삼황뇌부를 전수받아갔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이 자부선생이 치우천왕의 왕사였습니다. 삼천궁이라는 궁을 지어놓고 치우천왕이 거기서 수행을 하고 제자들을 양성하게 했는데 지금의 우리가 대릉하 유역으로 보고 있는데 황제가 거기와서 공부를 배워갔어요. 우리 민족에 위대한 영걸지주 중에 한 분이 치우천왕이시죠.

Posted by 바람을본소년
,